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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밀란과 베를루스코니의 ‘풋볼크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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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밀란과 베를루스코니의 ‘풋볼크라시’

[프레시안 스포츠] 스포츠, 미디어 통해 권력장악

28일(현지시간) 맨체스터시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에서 펼쳐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AC 밀란이 유벤투스를 승부차기 끝에 3대2로 따돌리고 통산 6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최근 뇌물수수혐의로 고소됐으며 국민대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전쟁을 지지해 비판을 받고 있던 이탈리아 수상이자 AC 밀란의 구단주 베를루스코니는 이번 짜릿한 우승으로 오랜만에 활짝 웃을 수 있었다.

***베를루스코니 '풋볼크라시'**

유럽굴지의 미디어업체 피닌베스트를 보유하면서 이탈리아 수상에 올라 권력과 언론을 주무르고 있는 베를루스코니의 정치를 가리켜 '비디오크라시'라고 표현한다. 미디어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베를루스코니가 정권을 장악하는데 있어 피닌베스트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 AC 밀란이었다.

1994년 베를루스코니가 축구문화를 그대로 접목시켜 명명한 포르자 이탈리아당(전진 이탈리아당)은 AC 밀란의 팬들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준만 교수의 저서 <유럽의 대중매체 3, 유럽,북미,호주> 가운데 '베를루스코니의 비디오 크라시'를 살펴보면 '베를루스코니는 94년초 신생정당 '포르자 이탈리아'를 만든 후 총선 승리로 이탈리아의 수상이 되었는데 그의 선거운동에는 전국적으로 1만 2천여개나 되는 AC 밀란의 팬 클럽이 조직적으로 주도해 총선 승리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내용만 봐도 베를루스코니의 정치행보에 AC 밀란이 전위부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미 이탈리아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미디어재벌 베를루스코니가 정계입문의 포석으로 왜 축구팀 AC 밀란을 선택했을까?

일각에서는 베를루스코니가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AC 밀란을 샀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탈리아 국민으로서 축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분석은 설득력이 약하다. 유럽언론에서는 "베를루스코니의 AC 밀란 매입이 이탈리아의 고질적인 남북문제로 발생한 북부 분리주의 움직임과 그 궤를 같이 하는 패권주의의 소산이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부상하는 방송과 스포츠의 관계를 노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벤투스의 벽을 넘어라**

밀라노 교외의 주택개발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피닌베스트를 생각했을 때 베를루스코니의 AC 밀란 매입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북부산업부르주와의 일원인 베를루스코니는 유럽에서도 부유한 곳으로 정평이 나있는 밀라노, 토리노가 중심이된 이탈리아 북부지방의 일인자가 되기를 원했다.

베를루스코니와 AC밀란의 최대 걸림돌은 1980년대 중반 미쉘 플라티니를 내세워 유럽무대를 평정했던 유벤투스와 모기업 피아트였다. 베를루스코니는 유벤투스의 벽을 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해 선수들을 사 모았고 AC 밀란은 1987~88 시즌 9년만에 이탈리아 정상에 설 수 있었다.

AC 밀란은 '오렌지 3총사' 루트 훌리트, 레이카라트, 반 바스텐과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수비수 프랑코 바레시, 파올로 말디니를 축으로 1989,90년 2년 연속으로 챔피언스리그를 정복했다.

토리노의 유벤투스를 압도한 AC 밀란의 성적은 베를루스코니에겐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자신이 축구에서도 이탈리아 북부의 맹주로서 자리잡았기 때문이었다. 호성적으로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 AC 밀란의 팬들의 환호성을 듣게 된 베를루스코니는 정치가로서의 변신에도 자신감을 갖게됐다.

***뿌리깊은 이탈리아 남북문제, 축구에도 영향**

이탈리아의 남북간 지역문제의 기원은 1860년 통일왕국 건설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일전까지 농업과 가공업이 발달한 남부는 북부보다 부유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통일주도세력인 북부 산업자본가 계급이 북부 위주의 산업화를 시도하였으며 낙후된 남부는 대토지 소유제에 의한 소작업이 주종을 이루는 경제활동에 머물렀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이탈리아 북부와 가난한 남부간의 고질적인 지역감정은 축구에서도 나타났다. 2002년 월드컵 한국과의 16강전에서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퇴장당한 토티는 "이탈리아언론이 나를 한국전 패배의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으며, 내게만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내가 남부의 로마출신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해 남북간 지역감정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남북간 경제력의 차이는 이탈리아축구의 북부 빅 3로 불리는 AC 밀란, 유벤투스, 인터밀란의 독점현상을 가져왔다. 북부의 빅3는 스쿠데토에서 (이탈리아 리그 우승) '남부'팀들을 압도했으며 이탈리아 대표팀을 이끌었던 선수들도 대부분 '북부'팀들에게 속해있었다. 또한 해외 축구 스타들을 어마어마한 액수로 모셔오는 경우도 '북부'팀들이 훨씬 적극적이어서 자본력이 약한 대부분의 남부팀에게 위화감을 조성했다.

참고로 '북부'의 빅3 클럽은 모두 합쳐 56회의 이탈리아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이적료 세계신기록을 세운 것은 모두 11번이나 되었다. 또한 '북부'의 빅 3 클럽이 배출한 '올해의 유럽 축구 선수'는 모두 10명이나 될 정도였다.

반면 이탈리아 남부에는 명문팀 라치오나 AS로마가 있긴 하지만 북부 빅3 클럽에 비하면 다소 초라해 보였다.

1986~87시즌 디에고 마라도나와 국가대표 안토니오 카르네발레의 활약으로 나폴리가 우승을 차지했을 때 남부인들은 희망을 얻었다. 나폴리의 우승은 진정한 남부팀의 우승이었으며 대부분의 가난한 이탈리아 남부인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나폴리의 영웅이 된 마라도나를 자신들의 마음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전도사로 생각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축구의 부활을 기다리는 베를루스코니**

2002년 월드컵에서 부진한 성적을 낸 이후 이탈리아 축구는 총체적 위기를 맞는 듯 했다. 심각한 재정위기 속에 TV 중계권확보가 어려워 이탈리아 축구리그(세리에 A)가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해외언론은 한국전 패배를 놓고 심판 탓만을 하는 이탈리아 축구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영국의 축구전문지 월드사커는 2002년 8월호에서 이탈리아가 한국과의 게임에서 먼저 1골을 득점한 뒤 창조적인 공격수 델 피에로를 빼고 몸싸움을 잘하는 가투조를 투입해 수비위주의 전략을 쓴 것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했다.

유럽축구 최고의 무대인 챔피언스리그 4강에 이탈리아의 인터밀란, AC 밀란, 유벤투스가 오르면서 이탈리아 축구의 부활가능성이 수면위로 부상했다.

라이벌 팀 유벤투스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물리친 AC 밀란을 지켜보며 흐뭇해 하고 있을 베를루스코니는 욕심으로만 치면 연일 세계언론을 집어삼키고 있는 호주의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에 뒤지지 않는다. 구단주 베를루스코니가 아니라 이탈리아 총리로서 그는 2004년 유럽축구선수권과 나아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아주리군단의 우승을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현재 위기에 몰리고 있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하는 한 길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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