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째 거듭되던 화물연대의 파업이 노정 협상을 통해 타협점을 찾게 됨에 따라 파업이 일단 중단됐다. 이로써 심각한 국가적 위기로까지 번질 뻔한 물류대란이 해소될 돌파구를 마련하게 됐다.
<사진1>환한 표정의 화물연대 조합원(사진 업로드 순서가 빠뀌었습니다.)
화물연대 부산지부의 파업 농성장에서 철야농성을 끝내고 운행에 복귀하게 된 화물 지입차주 손동광(36)씨는 "협상결과에 전적으로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적 물류체계의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내 욕심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한 걸음 물러날 시기라고 생각했고, 정부도 한 걸음 물러섰기 때문에 운행을 하면서 앞으로의 구체적 협상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손씨는 지도부에서 오늘(15일)부터 운행에 들어가라는 지침이 내려졌지만, 거의 3일간에 걸쳐 철야농성을 했기 때문에 일단 집에 가서 좀 쉰 다음에 운행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힘들었지만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된 손씨의 목소리에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당초 손동광씨는 노정협상이 타결되기 전 부산대에서 있었던 화물연대 농성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 당시는 파업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그와의 인터뷰에서 화물 지입차주들의 고충을 느낄 수 있어 소개한다.
***파업 시간 길어질수록 욕하는 사람들 늘어, 그러나 그 처지를 조금만 이해해줬으면**
"파업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화물연대 조합원들에게) 저 놈들 수출길 막아 나라 막아먹을 놈들 아이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 지금은 80%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업 내팽겨치고 투쟁에 나선 사람들 조금만 관심 있게 보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아이겠나 싶슴더"
축제가 한창인 부산대학교에 경찰이 사방을 통제하고 있었다. 아직 긴장감이 높은 것은 아니나 화물연대 조합원의 진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자와 똑같이 비를 맞으며 학생들에게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농성중인 학생회관 가는 길을 묻는 사람이 있었다. 겉 옷 안에 화물연대 회색 조끼를 숨기고 들어온 그와 함께 학생회관 가는 가파른 언덕길을 동행하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올해로 10년째 화물차 운전을 하고 있다는 손동광(36)씨는 17일째 화물차 운전대에서 손을 놨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언제까지 운전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밀리면 결국 망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에 '생계를 걸고'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화물운전자 경제생활은 공황상태"**
손씨는 원래 D운수업체에서 월급을 받고 운전하는 직영 운전자였다. 그러나 3년 하다가 그만뒀다고 한다. 손씨는 "그 시절에 화물차 운전자는 '운전사'가 아니라 '운전소(牛)'였다"라고 말했다. 죽어라고 일을 해도 제 몫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씨는 아직 젊으니까 일한만큼 벌겠노라고 할부로 화물차를 구입해 지입차주가 됐다고 한다.
손씨는 컨테이너를 싣고 부산과 의왕 사이를 주로 운행한다고 했다. 부산에서 의왕까지는 35만원을 받는데, 의왕에서 부산 올 때는 28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반대로 경기 소속 화물차는 의왕에서 부산 오는데 35만원을 받고 부산에서 의왕 갈 때 28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같은 거리를 같은 화물을 싣고 다니는데도 차고지에 따라 운송료가 다른 것이다.
***같은 거리, 같은 화물 싣고 다녀도 차고지에 따라 운송료 달라**
이는 화물운송체계가 얼마나 전근대적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화물 공급원이 안정적이지 못한 지입차주들의 약점을 노린 것이다. 화물지입차주들은 공차로 내려가게 되면 그 손해를 전부 자기가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 억울해도 참을 수밖에 없다.
손씨는 "의왕에서 25만원짜리 짐을 주기도 하는데, 그 경우에는 그냥 싣는다. 공차로 가면 본전도 안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터무니없이 20만원짜리 짐을 주기도 한다. 난 젊은 혈기에 그런 짐은 안 받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너무 힘들다"라고 말했다. 그것도 다단계 다 거쳐 내려와 떨어지는 돈이기 때문에 억울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자기는 아직 젊지만, 중.고등학교, 대학교 다니는 자식 두서넛 둔 40~50대 가장들은 그런 굴욕에도 꾹 차고 짐을 실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손씨는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40~50대가 가장 많다고 덧붙였다.
***부산-의왕 왕복 운송료 65만원, 그 중 경유값이 32만원**
손씨는 하루 왕복하면 65만원 정도 받는다. 그런데 기름값으로 벌써 32만원 정도 나가고, 왕복 도로비 8만원, 세끼 식사랑 운행 경비 합치면 15만원 정도가 지출된다고 했다. 결국 하루 서너시간 자면서 1천km 운전해봐야 10만원 정도 밖에 안 떨어진다는 것이다.
차량 감가상각비, 보험료 등은 아예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 거 다 따지면 정말 남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나마 펑크라도 한 번 나면 그날 운행은 적자다. 1년에 타이어 값으로만 5백만원정도 나간다고 한다.
그래도 손씨는 야간운전은 피한다고 한다. 현재 밤12시부터 새벽6시까지는 도로비의 50%가 할인되는데, 야간운전이 너무 위험해 가급적이면 피한다고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빠듯한 상황에서 야간운전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불규칙한 생활을 하는 운전자들에게 야간운전은 사고위험을 높이는 요인중의 하나다.
***빚이 7천만원, 가족들은 사고위험 안고 불규칙적인 생활하는 것이 더 불만**
손씨는 처음 지입차주를 시작하며 구입한 국산 트레일러를 처분하고 외제 트레일러를 몬다고 했다. 지금은 국산 트레일러도 많이 좋아졌지만, 좀 비싸도 외제가 유지비나 기름값이 덜 들기 때문에 장래를 보고 구입했다고 한다.
그럴 법도 한 것이 화물 지입차주 운전자들에게 차량은 자신의 작업장이자 목숨을 걸어야 하는 한 몸과도 같은 것이다. 좀 욕심을 내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초등학교 6학년짜리 딸이 있다는 손씨는 "가족들이 정상적으로 출퇴근하지도 못하고, 매일 사고 위험을 갖고 운전하는 자신의 직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지금은 이해하는 편이지만, "차량 할부금까지 빚이 7천만원 정도 되는데, 요즘 같아서는 좀 버티기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손씨는 화물차 운전자들이 난폭운전을 한다고 많이 욕하는데, 좀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40톤이 넘는 컨테이너를 싣고 달리는 화물차는 가속에 의한 탄력이 대단하기 때문에 운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격무에 시달려 마음에 여유가 없다보니 운전이 자칫 거칠어질 수 있다고 한다.
***"정부에서 성의 있게 화물 지입차주들의 요구를 들어줬으면..."**
손씨는 이렇게 "항상 사고의 위험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화물차 운전자들의 요구를 정부에서 한 번 심사숙고해 돌아봐줬으면 싶다"고 했다. 언론에 대해서도 "집단이기주의자라느니, 국가의 경제위기의 나락으로 몰아넣는다고 몰아세우지만 말고 생계까지 중단하고 운전대를 놓을 수밖에 없는 화물차 운전자들의 삶에 대해서도 제발 귀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며 "국가 경제위기에 앞서, 화물 지입차주들의 가정은 이미 공황상태"라고 말했다.
손씨는 "언론은 정부 편인 것 같다. 기자들이 뭘 물어볼 때는 항상 윽박지르듯이 물어본다"며 "기자들에게는 우리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 기사거리 밖에 안되는 것 같더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농성중인 부산대 학생회관에서의 보도 통제도 일사분란한 것에서 이들이 얼마나 언론에 불만이 많으며 의식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손씨가 화물연대에 조합원으로 가입한 것은 7개월 정도 됐다고 한다. 화물연대의 조직 성립이 1년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초창기부터 활동한 셈이다. 손씨는 "처음에는 정부가 고속도로 갓길 막아 화물 운전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지고, 휴게소에서도 화물차를 달갑게 여기지 않아 불만이 쌓여 뜻있는 사람들이 고속도로 준법운행 투쟁을 하면서 모이게 됐다"고 했다.
또한 IMF이후 지입차주들이 늘어나게 되고 운송료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 경유가가 치솟고, 수입이 점점 줄어들어 생계의 위기를 느끼게 되자 전체 화물 운전자들의 공통의 불만이 한 목소리로 모이게 됐다는 것이다.
***화물 운전자들 단결의 일등 공신은 무선주파수공유통신**
화물 운전자들은 무선주파수공유통신을 통해서, 휴게소에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단결된 조직으로 거듭나게 됐다. 화물연대 조합원 2만여명 중 1만5천여명은 최근 3개월 사이에 가입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이번 화물파업이 엄청난 파괴력을 갖게 된 것은 전체 화물연대에 가입하지 않은 지입차주들도 화물연대의 파업에 공감하고 운행에 나서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에 대한 원망이 대단했다. 손씨는 "화물연대가 6개월 동안 포항, 부산, 의왕, 과천, 서울 등지에서 5번이 넘게 집회를 하고 교섭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그러다 말겠지'라며 항상 그렇듯이 안일하게 대응해 온 것이 아니겠냐"고 불만을 털어놨다.
게다가 파업에 돌입했을 때도 정부는 대화를 통한 해결 노력보다는 매번 '강경대응'과 '단호대처' 등 엄포성 발언만 늘어놓고 제도 개선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조합원들의 감정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안일한 대응, 탁상행정이 사태 악화시켜**
손씨는 "지금 정부가 파업을 먼저 풀고 대화를 하자고 하는데, 지금까지 우리의 줄기찬 요구에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던 정부를 믿을 수 없다. 공권력을 투입하겠다고 하는데, 이또한 탁상행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식한 노동자일 뿐이지만, 견고한 의지를 갖고 끝장을 보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다. 공권력 투입해 우리의 의지를 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사태만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사진2>집회중인 화물연대 조합원들
인터뷰 도중에도 학생회관 강당에서는 1천여명의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라고 일사불란하게 외치며 총회를 진행중이었다. 출입이 통제되던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총회장에 진입하자 조합원들의 목소리에 더욱 우렁차지고, 율동은 한 층 더 박력있어졌다. 마치 기자들에게 화물연대 부산지부의 파업 결의를 과시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손씨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학생회관을 나서니 부경총련이라는 깃발을 든 대학생 1백여명이 노란색 우비를 맞춰 입고서 "화물 노동자 형님들의 파업을 지지합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파업지지집회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해결이 돼서 파업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라는 손씨의 말이 밤 사이에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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