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 사건을 수사중인 송두환 특검팀은 9일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을 불러 송금과정에서 청와대나 국정원이 개입했는지 등을 조사했다. 김씨는 특검 조사에서 청와대와 국정원이 대출과 송금과정에 적극 개입했고, 현대상선은 소극적 역할만 했다는 당초 주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ㆍ국정원이 송금 주도”**
9일 오전 10시께 특검에 출두한 김씨는 10일 새벽 3시까지의 마라톤 조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고만 짤막히 밝혔다.
특검팀은 김씨를 상대로 ▲2000년 6월 당시 산업은행의 4천억원 대출이 누구의 지시로 이뤄졌는지 ▲대출금이 북한에 송금된 경위 ▲대출 신청서에 김씨의 서명이 빠진 이유 등 대출과 송금 과정의 외압 의혹을 집중 조사했다.
김씨는 조사 내용에 대해선 일절 함구했으나, 정치권 외압설과 관련한 자신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특검 조사에서 “청와대 관계자 등이 북한에 송금할 돈이라며 현대상선측 계좌를 빌려달라고 요구해 어쩔 수 없었다”면서 “현대상선은 이번 사건에 관여한 바 없으며 국가정보원이 모든 과정을 주도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가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4천억원과 관련해 ‘우리가 쓴 돈이 아니니 정부가 대신 갚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 증언도 이날 김씨에 대한 조사에서 사실로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또 김씨가 지난 2000년 6월초 산업은행을 방문, 4천억원의 운영자금 대출을 요청한 것을 확인했다.
김씨는 그러나 이날 조사에서 처음부터 대출신청을 반대했으며 그룹 수뇌부 회의에서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을 비롯한 가신그룹들이 강압적으로 밀어붙여 어쩔 수 없이 대출을 신청했던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김씨는 또 2천2백35억원의 대북송금용 산업은행 수표를 외환은행에서 환전하는 과정에서 국가정보원과 협의가 있었다고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ㆍ국정원 수뇌부 본격 조사 예정**
지난주 조사에서 국정원이 송금을 주도한 사실을 밝혀낸데 이어 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됐던 김씨에 대한 조사가 일단락됨에 따라 앞으로 특검 수사는 현대 수뇌부와 국정원 쪽을 본격적으로 겨눌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다음주부터 송금에 관여한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과 김재수 현대 경영전략팀 사장,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최규백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 등을 잇따라 소환할 것으로 보인다.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임동원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소환 조사는 그 이후가 될 전망이다.
한편 특검팀은 국정원에 대북 송금의혹 사건과 관련한 국정원 차원의 진상조사 또는 내부 감찰이 있었는지 여부와 관련자료가 있을 경우 이를 특검팀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7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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