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숱한 민간인이 쓰러져가고 있는 가운데 이라크 시인 5인의 반전시를 포함한 한국 대표 문학인 1백22명이 참여한 반전평화 문학집 <전쟁은 신을 생각하게 한다>(화남 출판사)가 출판돼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사진1>책표지
고은, 신경림, 김지하, 이해인, 도종환, 박노해, 안도현 등의 시인과 남정현, 윤정모, 방현석, 오수연, 김지우 등 소설가. 그리고 평론가 염무웅, 도정일씨 등이 참여한 이 책은 ‘반전 · 평화’라는 하나의 주제로 엮인 작품집이다.
1부는 ‘이라크 대표시인 5인선’으로 구성돼, 전쟁 당사국은 이라크 시인들의 상심과 고뇌를 읽을 수 있게 돼 있다.
<사진2> 압둘 와합 알 바야티
***우리는 왜 유랑지에 있나?(압둘 와합 알 바야티)**
우리는 왜 침묵을 지키고 있나.
우리는 죽는다.
나에겐 집이 있었다.
나에겐 있었다.
바로 너
심장이 없이, 소리도 없이
통곡한다, 바로 너.
왜 우리는 유랑지에 있나.
우리는 죽어간다.
우리는 침묵 속에 죽어간다.
왜 우리는 울지 못하나.
불 위를
가시덤불 위를
걸어갔다.
우리 백성들이 걸어갔다.
우리가 왜, 주여!
조국도 없이, 사랑도 없이,
죽어간다.
두려움속에서 죽어간다.
왜 우리는 유랑지에 있나.
우리가 왜, 주여?
2부는 고은, 도종환, 김정환, 이도윤 시인 등 한국시인 63명의 ‘반전평화시’ 81편과 신경림, 김지하 시인 등 58명이 미군장갑차에 의해 숨진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시’ 69편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3>가두시위하는 문인들
***나의 편지(고은)**
반대하라.
지금 사막은 잠들지 못한다.
지금 메소포타미아의 아이와 어머니는
외진 울음도 나누지 못하고 죽어간다.
기원전 유적은 동트면 또 잿더미
지금 지구는 야만의 행성이 되어버렸다.
오직 토마호크만이
스텔스
무도의 세습침략만이 있고
다른 것은 없다
반대하라.
반대하라.
우리들이 세운 기둥마다 새겼던 말
정의와 자유
해방
세계 평화
기어이 찾아야 할 그 말들을 도둑맞았다.
아 오늘의 이라크는 내일의 어디인가.
3부는 ‘이라크 · 미국으로부터의 현장통신’에서는 요르단 암만에 머물고 있는 박노해 시인과 9.11테러 1주년을 맞아 뉴욕 현지 표정을 전한 공광규 시인의 르포가 실려있고, 4부는 ‘반전 평화 동시 동화’로 구성돼 있으며, 5부는 ‘미국을 다시 본다’라는 주제로 소설가 남정현, 윤정모 등과 문학평론가 도정일 교수 등이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와 한국군 파병에 따른 국가 이미지 실추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사진4> 이라크소녀
***파병은 ‘오, 피스 코리아’의 치욕(박노해)**
살람 알레이꿈!
‘당신에게 평화를’이라는 아랍인들의 인사입니다.
밤새 미사일 폭격이 가해지고 있는 이라크에서 400km 떨어진 이곳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도 전쟁의 긴장과 공포가 가득합니다.
시내 모스크나 광장에서 마주친 이라크인들과 팔레스타인, 요르단인들은 낯선 동양인인 저와 눈이 마주치면 따뜻한 얼굴로 다가와 ‘살람 알레이꿈!’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당신에게 평화를’이라는 인사말이 이렇게 사무치게 느껴진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몇 마디 인사가 오간 다음, 이들은 부드럽지만 묵직하게 물어옵니다.
“왜 코리아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고 파병까지 하겠다는거냐?”
“당신들도 전쟁을 겪은 걸로 아는데 왜 이라크인들을 죽이는데 앞장서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코리아를 좋아했다. 전자제품도 최고이고, 자동차도 최고다. 월드컵 때도 최고였고, 인정 많고 겸손하고 똑똑하다. 그런데 왜 미국의 석유침략 전쟁에 나서는가?”
어느새 수십명으로 늘어나 겹겹으로 에워싼 그들은 점점 격앙된 질문을 던지면서도 이방인에 대한 정중한 배려를 잊지 않습니다. (박노해 시인의 '현장통신' 중에서)
책의 말미에는 소설가 김지우가 원정출산 문화를 진단한 단편소설 ‘해피 버쓰데이 투 유’와 문학평론가 고영직의 ‘한국 반미문학사 서설’이 실려있다.
책의 편집을 맡은 홍일선 시인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화를 옹호하는 우리 문학인들은 그 어떤 이름의 전쟁도 반대한다”며 “그 ‘어떤 나쁜 평화’라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항상 옳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홍 시인은 또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강행되는 현정권의 파병에 대해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노무현 대통령은 세계평화와 한반도의 전쟁방지라는 진정한 국익을 위해 파병결정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하며 “이 전쟁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전면적인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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