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북한 붕괴보다는 북핵을 용인하는 편이 낫다'는 한국측 특사단의 발언에 부시행정부가 경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의 한 아시아전문가가 이같은 한국측의 입장을 옹호하는 칼럼을 실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 윌리엄스대 아시아학과장 샘 크레인 교수는 지난 16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기고한 칼럼 '북한 체제 붕괴는 혼란 초래할 수 있어(A Regime Collapse Could Bring Chaos)'를 통해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등 북한의 이웃국가들도 북한의 핵무기 보유보다는 북한정권의 갑작스런 붕괴가 몰고 올 혼란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부시 대통령이 이들 동아시아국가들과 건설적으로 협력하고자 한다면 아무리 싫더라도 김정일정권을 유지시키는 데 보다 더 큰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한중일 3국이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김정일과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 단독의 북한에 대한 협박은 먹히지 않을 것이라면서 당분간 부시행정부는 북한과 협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탈북자>
크레인 교수는 북핵 위험은 불확실한 반면 북한 붕괴로 오는 위험은 확실하다는 이유로 이같은 분석을 내놨다.
그는 한중일 3국이 북한 붕괴로 야기될 경제적 혼란과 북한 주민들의 대규모 이민사태를 가장 두려워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면적인 북한의 붕괴가 있을 경우 한국은 2천 2백만에 달하는 북한 주민의 급식과 건강을 책임져야 할 상황에 처할 것이고 그 비용은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의 5배에 달하는 2조-3조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이미 탈북자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 북동부 국경지대가 경제적·사회적으로 더욱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크레인 교수는 전망했다.
일본도 일부 난민을 떠맡아야 할 뿐만 아니라, 주요 교역 상대인 한국과 중국이 난민 사태로 혼란에 빠질 경우 장기침체 상태에 있는 밀본의 경제회복은 더욱 늦어질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다음은 크레인 교수의 칼럼 전문.
***북한 체제 붕괴는 혼란 초래할 수 있어/LAT, 16일**
북한이 주변국들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핵무기가 아니다. 한·중·일이 당장 두려워하는 것은 평양 정권의 급작스런 붕괴다. 부시 대통령이 동아시아 국가들과 건설적으로 협력을 하고자 한다면 아무리 싫더라도 김정일의 집권을 유지시키는 데에 보다 더 큰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한국이 가장 실감하고 있다. 만약 북한에서 동독식 당-국가 체제의 붕괴가 일어나면 한국에 인적, 경제적 재앙이 닥칠 것이다.
북한 경제는 오랜 동맹이었던 구소련이 사라진 이후 10년 이상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북한이 교역할 것은 공포감 밖에 없고 핵·미사일 능력 제한 약속과 현금, 식량 등을 교환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8년 반 동안 기근은 2백만~3백만명이 목숨을 앗아갔다.
북한 정부가 돌연 붕괴하고 배고픈 북한과 배부른 남한 사이에 군대가 없어질 경우 수백만명이 먹을 것을 찾아 서울로 밀려들 것이 분명하다. 한국이 주민 유입을 막을 수 있다고 해도 2천2백만 북한 주민의 급식과 건강 관리를 당장 책임져야 할 것이다.
북한의 급작스런 정치적 붕괴로 한국에 가해지는 경제적 부담을 확실히 가늠키는 어렵다. 수백억 달러에서 수조달러까지 추정된다. 세계은행은 대략 한국 GDP의 5배인 2조-3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도 평가한다. 수천억 달러에 그친다 해도 이런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한국 경제를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북한과의 무역과 투자를 개방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현명한 선택이다. 이는 북한 경제의 지속적인 개선이 통일 비용을 줄여줄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한 것이다. 노무현 신임 대통령은 경제적 대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최근 취임사에서 본질적으로 김 전 대통령이 추진하던 것과 같은 대북“평화번영 정책”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했다.
부시 행정부는 노무현 정부가 북한 핵무기보다는 성급한 북한 정권 교체를 더 두려워한다는 사실에 대해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놀라지 말았어야 했다. 핵 보유국 북한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 위협이 되는 것이 확실하지만 아시아 지도자들 눈에는 붕괴가 몰고 올 경제위기와 이민 사태만큼 긴급하지는 않은 것이다.
중국과 일본도 한국과 같은 입장이다. 굶주린 북한 주민들은 수년전부터 중국 동북부 지역에 유입되고 있다. 그들은 망명을 위해 베이징에 있는 외국 대사관에 필사적으로 뛰어들어갔다.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북한 사람들의 불법 이민이 범죄율을 높이고, 동북부 지역을 황폐하게 만드는 만성적 실업과 연관된 사회적 병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북한의 전면적 붕괴는 인도주의적 위기를 야기할 것인데 이는 중국 국경지대로 퍼져 그렇잖아도 이미 심각한 이 지역의 경제 사정을 악화시킬 것이다.
일본도 북한 붕괴의 영향을 걱정한다. 중국이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문제에 일본이 직면하지는 않고 있지만, 일본 정치지도자들은 북한의 위기로 발생한 난민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것이고 한반도의 통일비용 일부를 떠맡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지역적 불안정의 증대는 중국과 한국에 있는 주요 파트너들과의 무역·투자 관계를 어렵게 할 것이고, 만성적으로 부진한 일본 경제의 회복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그래서 일본과 중국은 (북 붕괴로 인한) 통일이 가져올 혼란을 완화시킬 정도의 기간 동안만이라도 북한을 살려두고자 한다. 이들 양국은 또 공개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장기적인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분단된 한반도가 통일된 한반도보다 더 안전하다. 통일된 한반도는 10~20년 후 아마 핵무기를 가진 매우 강력한 국가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한·중 동맹이 역내 경제 및 군사 이해관계에 도전이 될 수 있다. 이는 중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현재로서는 가능해 보이지 않지만 만약 한·일 동맹이 형성된다면 중국의 국력과 옵션을 제약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처럼 핵 보유국 북한은 통일된 한반도보다 중국과 일본에 덜 위협적이기 때문에 북한이 붕괴될 정도로 압박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한중일 모두 북한의 핵 능력을 실제로 걱정하고 있다. 아마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일본 영토를 가로지르는 탄도미사일을 98년 시험발사했다. 북한이 일본에 있는 어떤 목표물에도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북핵을 저지할 독자적인 핵무기가 없는 일본의 전략 수립가들은 독자적인 핵무기 프로그램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을 자극해 핵 비축량을 늘리게 하고, 한국이 자체 핵 프로그램 검토에 나서게 할 것이며, 대만의 경계심까지 자극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대만의 핵무장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사태는 이런 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하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북한 붕괴의 여파를 더 걱정한다. 김정일은 자신이 만든 핵폭탄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94년처럼 핵 위협을 중단하는 대가로 무엇인가를 받는 새로운 거래를 시도할 것이다. 혹은 그가 정권의 존립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그 경우 핵무기는 남의 공격을 저지하는 용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소련과 미국이 상대방의 핵사용을 막기 위해 핵무기를 보유했던 냉전시대의 역설적인 상황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군사적 분석을 어렵게 하는 이같은 해석 속에서, 한중일 수뇌부는 불확실한 북핵 위험과 확실한 붕괴 위험을 저울질해야 한다.
한중일은 (북한 주민들의) 기아와 억압에 대한 김정일의 책임에도 불구, 그와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북한과의 협력을 모색하기 위해 작년 가을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노력은 부시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무시와 큰 대조를 보였다.
대북 위협은 먹히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한국을 황폐화시킬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면 대북 선제 군사 공격은 일본에 대한 핵 보복을 유발할지 모른다. 부시 정부가 여러 가지 북한 위협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즉 멀지 않은 장래에 김정일을 유쾌하지 않은 추억으로 떨쳐버릴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해 당분간은 이 혐오스런 독재자와 악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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