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으로 이라크 전쟁을 몰고가려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반발해 사표를 낸 미 외교관들의 사직서가 잇따라 공개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두 외교관의 편지는 현재 미국이 전 세계와 미국 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9.11 테러의 본질적인 문제를 '힘의 논리'로만 풀려고 하는 데에 대해 강력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윌슨 대통령이후 갖고 있던 미국의 국제적 정통성이 깨졌다"**
전 그리스 주재 미국 대사관의 정치자문이었던 존 브래디 키슬링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뉴욕 타임스에 게재한 사직서를 통해 "미국에 대한 나의 신념과 그 가치는 내가 외교활동을 하는데 최고의 무기였지만, 최근 미국의 정책은 미국의 가치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익과도 모순되는 것이다"라고 부시의 일방주의 외교를 질타했다.
키슬링은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는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이래 지켜온 미국의 국제적 정통성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강렬한 추구때문에 위기를 맞고 있다"고 언급했다.
키슬링은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방법이 엄청난 군사력의 사용뿐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지난 2년간 미국은 전 세계 우방들에게 고귀한 가치대신 편협하고 돈을 좇는 미국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키슬링은 미국 정부에게 "전 세계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호소하면서 "유럽연합과 미국간의 돈독한 파트너십을 원하고 있는 그리스 사람들에게 과연 누가 미국이 전 세계를 위한 자유와 정의의 파수꾼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키슬링은 편지 마지막 부분에 "나는 우리들의 민주적인 절차는 궁극적으로 이런 문제를 자가수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며 작은 힘이지만 나는 미국과 세계인들의 번영을 위해 봉사하겠다"며 퇴임의 변(辯)을 마쳤다.
***"반미의 세기가 도래했다"**
키슬링에 이어 사표를 던지 존 H. 브라운이라는 미국 외교관의 사직서는 12일(이하 현지시간) 커먼드림스 뉴스를 통해 발표됐다.
최근까지 조지타운 대학의 외교연구원에서 준회원으로 있었으며 1997년 이래 외교관으로 재직해온 존 H 브라운의 사직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계획에 양심상 동조할 수 없어서 나의 동료인 존 브래디 키슬링과 같이 사직서를 제출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실패했습니다.
1.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의 용기있는 군인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희생해야 하는 지에 대한 당위성을 명백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2.무고한 시민들의 대량참사를 포함해 이번 전쟁의 파급효과에 대한 다각적 조망을 하지 못했습니다.
3.일반 미국인들에게 전쟁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조목조목 명기하지 못했습니다.
4.이번 전쟁이 테러세계를 제거하는 데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지 밝히지 못했습니다.
5.반전을 지지하는 국제여론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를 통해 미국은 적법하지 않는 무력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부시가 다른 국가를 경시해 보는 것은 그가 민간외교를 무시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곧 반미주의의 세기를 낳게 할 것입니다.
저는 애국심의 발로로 외교업무에 투신했습니다. 존경하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님, 끝으로 저는 실망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지만 내가 품고 있던 애국심 때문에 이 사직서를 제출합니다."
과거 존 F 케네디는 히틀러 나치즘의 성장을 수수방관했던 유럽국가들을 빗대 <영국은 왜 잠자고 있었나? (Why England slept?)>라는 논문을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 두 명의 미 외교관이 고발하고 있는 미국의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이라크 전쟁시도는 언젠가 다른 사람을 통해 <미국은 왜 잠자고 있었나?>라는 책으로 출판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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