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6일 새정부 출범 후 첫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사정 활동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주문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잘못한 것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그 과정은 아주 합리적이고 냉정하게 진행해야 한다"면서 "사정 활동의 속도조절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서 국민 불안감을 조성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송경희 대변인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정권이 출범하면 사정과 조사활동이 소나기 오듯 일제히 일어나는 경향이 있어 국민은 일상적인 것이 아닌 정권초기 현상으로 느낄 가능성이 있다"면서 "인신구속의 경우는 국민감정의 해소 차원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몰아치기 수사 관행은 좋지 않다는 뜻”**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SK그룹 계열사에 2천여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최태원 SK회장이 구속 수감된 데 이어 손길승 회장 소환설, 한화그룹에 대한 검찰의 수사 재개 등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송경희 대변인은 "대통령이 평소 원칙론을 말씀한 것"이라며 재벌 수사 등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추측을 부인했다. 송 대변인은 "법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되 미리 알아서 정권기류를 판단해 그간 미뤄왔거나 손대지 않았던 것 등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재벌수사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특정사안을 놓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면서 "정권교체기마다 몰아치기 수사를 해왔던 관행은 좋지 않다는 뜻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정치권 안도하는 분위기**
이같은 사정속도 조절론에 가장 안도하는 집단은 재계다.
재계는 노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이 검찰의 최태원 SK회장 구속이후 삼성, LG, 두산, 한화 등으로 전방위 확대 조짐을 보여온 재벌개혁에 일정 부분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특히 노 대통령이 "인신구속의 경우 국민감정의 해소 차원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한 대목은 향후 문제가 있더라도 재벌총수 구속은 삼가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하며 자못 안도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그룹의 구조본 관계자는 "재계는 지금 누구보다 재계를 잘 이해하는 관료인 김진표씨가 경제부총리에 내정된 데 이어 노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나온 대목을 중시하고 있다"며 "현재 어려운 경제를 감안해 대화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자는 노 대통령의 친화적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고 큰 기대감을 피력했다.
정치권도 민주당 이윤수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보도되는 등 사정 가능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에 나온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특히 한나라당은 지난 10일 이양희 의원이 수뢰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데 이어 민주당의 이윤수 의원까지 조사를 받게 되자, 최근 일련의 정치권 사정이 ‘인위적 정계개편’을 전제로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던지기도 했다. 이양희 의원은 안양 ㄷ상호신용금고 실소유주 김영준(42·구속)씨로부터 불법대출 조사무마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노대통령 지지자 일각에서는 최근 '개혁형'에서 '안정형'으로 급선회한 노 대통령의 조각 움직임과 이번 발언 등이 자칫 개혁 드라이브의 주춤거림으로 내비칠 가능성을 우려하며 반발 움직임도 보이고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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