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현대상선 대북송금 의혹사건의 수사를 유보키로 최종 결론을 내린데 대해 정치권의 반응이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4일 “정치논리에 휘말린 결정”이라며 반발하며 조만간 특검제 법안을 제출키로 했으며, 현대상선 외에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현대 계열사들을 통해 또 다른 대북 송금이 이뤄졌다는 이른바 '플러스 알파' 의혹을 제기했다.
반면 민주당은 “국익차원의 신중한 판단”이라며 검찰의 수사유보 방침을 환영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 한나라당의 요구시 "현대상선 문제에 한해 특검을 수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등 내부혼선 양상을 보였다.
여야는 5일 총무회담을 갖고 이번 사건에 대한 국회차원의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양당간 입장치이가 커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나라, “정치논리에 휘말린 결정”**
한나라당은 4일 “반국가적이고 반역사적인 국민배신 행위”라며 검찰의 수사유보 결정을 비판하고, “국회에서 판단하라”는 노무현 당선자의 발언에 대해서도 “대북 뒷거래 과정과 액수, 전달 경위 등 사건 실체와 배경을 덮으려는 거대한 음모”라고 비난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조만간 특검제 법안을 국회에 제출키로 했으며, 현대상선의 대북지원 외에도 현대 주요 계열사들을 통해 또 다른 대북 송금이 이뤄졌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박희태 대표권한대항은 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노무현 당선자가 우리 당을 방문했을 때 정치적 고려없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했는데 메아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말바꾸기 명수답게 말을 바꿨다”고 비판했다.
이규택 총무도 “검찰이 국민의 검찰로 거듭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 실망스럽다”며 “검찰의 수사 유보 방침은 대북 지원 사건을 은폐하려는 현 정권과 노무현 당선자측의 사전 각본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종희 대변인은 논평에서 "대북 뒷거래 사건에 대해 수사유보 결론을 내린 검찰의 결정은 직무유기이자 월권"이라며 "권력에 아부하는 전형적인 정치검찰의 구태가 아닐 수 없다"고 비난했다.
박 대변인은 "‘대북 뇌물’이라는 국기문란 범죄를 낱낱이 파헤쳐 국민적 의혹을 풀지 않으면 우리 당이 추진하는 특검제 도입으로 검찰 조직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며 "정치검찰 수뇌부에 대해 탄핵소추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즉각적인 수사를 관철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대북 송금액 10억달러 추정”**
한나라당은 또 현대상선뿐 아니라 현대아산, 현대전자 등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 차원에서 대북 송금이 이뤄졌으며 송금액은 총 10억달러에 이른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규택 총무는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특검법안은 2000년 6월7일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대출한 4천억원이 정상회담을 위해 대북 뒷거래 자금으로 송금된 사실외에 같은 해 5월 현대건설이 싱가포르 지사를 통해 1억5천만달러를 송금한 의혹과 같은해 7~10월 현대전자 영국 스코틀랜드 반도체 공장 매각대금 등 1억5천만달러 송금 의혹 등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뒷거래된 자금 전반을 대상으로 할 것"이라며 “뒷거래 자금 규모는 10억달러 정도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이 총무는 이어 "특검의 구체적인 조사대상은 현대는 물론 청와대와 국정원, 감사원, 산업은행, 검찰 등 대북 뒷거래 사건과 관련된 기관이 모두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대북 뒷거래 진상조사특위 위원인 엄호성 의원도 이날 “현대상선의 대북지원 사건 외에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다른 현대 계열사의 불법 송금 의혹도 함께 조사할 것”이라며 ‘플러스 알파’ 의혹을 제기했다.
이는 이주영 의원이 지난해 10월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밝힌 “하이닉스 반도체의 전신인 현대전자가 2000년 5월 스코틀랜드 현지 반도체 공장을 모토롤러에 매각하고 받은 1억6천2백만 달러 중 1억달러(1천2백59억원)가 현대건설 자회사로 송금된 뒤 증발했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이와 관련 채권단의 한 고위 관계자는 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1년 5월 해외 주식예탁증서(DR) 발행을 위해 현대전자의 재무제표를 살펴보니 2000년 5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현대건설의 페이퍼 컴퍼니에 1억달러를 빌려주고 7개월만에 손실 처리한 사실을 알았다”며 “당시 직감적으로 이 돈이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민주, “국익차원의 신중한 판단”**
반면 민주당은 대북송금 사건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인 해법을 두고 계파간에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화갑 대표는 4일 오전 KBS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 “대북 송금사건은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면서 국가이익에 부합되는지를 따져 처리돼야 한다”면서 “검찰 수사나 국정조사는 정치적 공방으로 흐를 뿐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문석호 대변인도 "검찰이 정치권의 눈치보기를 했다는 차원이 아니라 국가이익과 남북 교류협력의 미래가 걸린 문제임을 감안해 신중한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정치권이 당리당략을 떠나 국익 우선의 사고를 갖고 지혜롭게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 의원은 "검찰이 현명한 판단을 한 것"이라며 "현대 사건은 민족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정부가 좀더 국민에게 진상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야 할 사안이지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거나 국정조사 등으로 정치적 쟁점화 대상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대북지원은 남북교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 한민족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민족적 사업인데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행 남북교류 관련법으로 이를 재단하려 해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또 조순형 신기남 의원 등 다른 개혁파 의원들의 `철저한 수사' 주장에 대해 "잠깐 인기는 얻을지 모르지만, DJ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차별성을 거기서 찾으려 한다면 사려깊지 못한 처사"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상수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MBC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 “국회에서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되 야당이 끝내 거부하면 현대상선 문제에 한해 특검제라도 받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에 대해서는 "청문회 등의 과정에 국가기밀이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총장은 이어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고도의 정치적 사안인 만큼 일반 검찰이 수사하기보다는 특검이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특검은 이같은 고도의 정치적 사안을 수사하라고 도입한 것이고, 또 수사대상을 특정할 수 있는 만큼 국익과 국민의 알 권리 차원의 수사만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검찰의 수사유보 결정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도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풀어보라고 한 만큼 검찰의 수사유보에는 별 문제가 없다"며 "이런 정치적 사안을 검찰이 수사할 경우 자칫 중립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민주당의 내부혼선은 대북송금이 현대상선외에 다른 현대 계열사들을 통해서도 이뤄졌을 수 있다는 '플러스 알파' 가능성을 의식한 것으로 보여, 앞으로 대북송금설을 둘러싼 여야 갈등은 쉽게 진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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