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조기 회부하려던 미국의 계획이 한국, 중국, 일본 등 한반도 주변국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라크 공격에 대한 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 등의 반대와 국제적인 반전여론으로 곤혹스러운 미국의 외교 입지가 동아시아에서도 흔들리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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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당초 북핵문제의 안보리 상정을 결정하기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이사회가 지난 24일 열리기를 희망했었다. 미 국무부의 존 볼튼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이 지난 20일부터 중국, 한국, 일본을 차례로 순방했던 것도 북핵문제의 안보리 회부에 이들 국가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볼튼 차관, 북-중 관계 곤란케 말라”**
그러나 미국측의 이같은 계획은 첫 방문국인 중국에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볼튼 차관은 지난 20일 중국측과의 회담 후 중국측이 북핵문제의 안보리 상정에 동의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으나 중국측은 그의 이같은 발언에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 24일자는 중국의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장치웨(章啓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중국은 또 NPT 탈퇴와 핵 시설 재가동을 이유로 북한을 유엔안보리에 상정하자는 미국 요구에 동의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중국은 대화를 통한 해결 기도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도 있는 조치”에 반대한다고 외교부 대변인은 말했다.
존 볼튼 국무차관이 20일 베이징에서 중국 관리들을 만난 후 취재진에게 한 발언이 중국의 불쾌감을 유발했다. 볼튼은 중국이 북한 문제의 안보리 상정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외교부의 한 관리는 23일 유럽과 캐나다 외교관들을 위한 브리핑에서 왕광야 외교부 부부장은 20일 중국은 안보리 역할을 공식 인정하고 있다고 볼튼에게 말해준 바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중국 관리는 볼턴 차관이 이 말을 공개하여 “놀랐다”고 말하고 이로 인해 외교가 더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북한에서 중국의 다리를 잘라 놓았다”고 한 외교관은 말하고 “볼튼처럼 (외교) 파트너를 공개적으로 곤경에 처하게 하는 법은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안보리 상정에 원칙적으로는 찬성하지만 지금 당장 상정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한국 통일부“타이밍이 나빴다”**
한국에서도 볼튼 차관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는 한국방문 도중인 지난 22일 북핵문제의 안보리 상정 필요성에 대해 한국측과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으나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 등 외신들은 한국 관리들의 말을 빌어 그의 말이 사실과 다르다고 보도했다. 24일자 IHT 기사는 한국측 반응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북한 핵 위기를 유엔안보리에서 논의하게 하려는 미국의 노력이 서울과 빈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에서 다같이 부인된 가운데 가까운 장래 추진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부인은 안보리가 금주중 이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말한 존 볼튼 미 국무부 군축담당차관의 예측과 어긋나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 대책에 대한 지역적 합의를 구축하려는 미국노력에 장애가 되는 것 같다.
한국 외교통상부의 천영우 국제기구 정책기획관은 23일 미국은 이 문제의 안보리 상정 필요성에 대해 한국과 합의에 도달했다는 볼튼 차관의 22일 발언과 합치되지 않는 말을 했다.
천 기획관은 전화인터뷰에서 “우리는 IAEA이사회의 합의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고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합의가 없는 한 가능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우리는 이 문제를 안보리에 상정하는 원칙에는 반대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원칙은 살아있다. IAEA가 법적인 의무를 지고 있다. 우리는 단지 원칙을 인정했을 뿐이다. 아무도 그 원칙에는 반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오해는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대응보다는 안보리에 의한 행동이 필요함을 중국, 한국 및 일본에 설득하기 위한 볼튼 차관의 아시아방문 목적달성을 어렵게 할지 모른다."
IHT는 이어 "통일부의 한 관리는 “타이밍이 나빴다”고 말하고 “우리는 아직 (북한측과 일련의) 회담 중에 있다. 어떻게 우리가 회담 중에 그러한 제의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고 반문했다."고 전했다.
***일본 외상과의 면담은 아예 취소**
마지막 방문국인 일본에서 볼튼 차관은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일본 외상 및 다케우치 유키오(竹內行夫) 외무성 사무차관과의 면담약속을 취소했다.
주일 미국대사관의 대변인은 볼튼 차관이 “몸이 아파 일정을 변경해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 한국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북핵문제의 조기 안보리 상정을 포기한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 IAEA 이사회 연기 요청**
한편 연합뉴스 25일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임동원(林東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가 오는 27일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함에 따라 북핵문제의 안보리 회부 여부를 결정할 특별이사회 개최를 늦춰줄 것을 IAEA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IAEA 이사국들은 현재 북핵문제의 안보리 회부를 결정할 특별이사회를 내달 3일 개최하는 방안을 집중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IAEA에 회의 연기를 요청한 것은 임 특사의 방북이 북핵사태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특사방북도 결정됐고 국제적인 노력도 있는 상황에서 IAEA 특별이사회를 빨리 할 이유가 없다"면서 "그같은 우리 정부의 입장을 IAEA에 전달했다"고 말한 것으로 연합뉴스는 전했다.
다른 당국자도 "임 특사가 29일 또는 30일 돌아온 뒤 방북 결과를 평가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임 특사 방북이라는 새로운 상황이 발생한 만큼 내달 3일 IAEA 특별이사회 개최는 촉박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내달 3일 개최하자는 나라가 많지만 모든 나라가 동의해서 컨센서스가 형성된 것은 아니다"면서 "임 특사의 방북결과를 지켜본 뒤 안보리로 바로 가야 할지, 좀 더 지켜봐야 할지 상황을 평가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멜리사 플레밍 IAEA 부대변인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사국들이 북핵문제를 다룰 특별이사회 개최시기에 대해 긴밀히 논의하고 있으나 아직 개최일이 결정되지 않았다면서 내주 초에는 개최일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동원 특사 이번 방북서 성과 이끌어내야**
북한측이 북핵 문제의 안보리 회부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 등의 노력으로 안보리 회부가 일단 지연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은 국제사회의 중대관심사인 만큼 언제까지 안보리 회부를 지연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주 방북하는 임동원 특사가 과연 어떤 성과를 가지고 돌아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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