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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여자, 그리고 영화 -<20場> 現實과 幻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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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여자, 그리고 영화 -<20場> 現實과 幻想

<김정환의 '읽는 영화' - 임옥상 그림> 전태일에 대한 명상

노동자1이 갑자기 창문으로 올라가 외쳤다. 물러가지 않으면 뛰어내릴거야, 씹새끼들!… 좆까네…. 경찰 쪽에서 그런 소리가 튀어나오던 순간, 노동자1이 정말로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다. 으악! 노조원들 비명소리. 어, 어, 당황한 형사의 외침이 뒤섞였다. 남자와 여자는 건너편 건물 다방에서 그쪽을 보고 있었다. 창문으로 노동자1이 떨어지는 것을 본 건 여자였다. 으아악, 그렇게 비명을 지르며 여자가 오들오들 떨었고 남자가 그런 여자의 입을 막으며 두 팔로 그녀를 감쌌다. 으흑, 엉엉엉…. 여자가 그렇게 공포에 질려 울었다. 다방 손님들이 대번에 동요했다. ‘뭐야, 뭐?’하고 물으면서도 그들은 뭔가를 직감했는지 우루루 창문쪽으로 몰켰다. 저기, 사람이 떨어졌다!… 손님 하나가 그렇게 외쳤고 여자는 새삼 확인을 받는 듯 남자 몸에서 진저리를 치며 울었다. 다방 레지와 마담이 어정쩡하게 목을 빼고 내다보려 했다. 남자와 여자 그 둘 말고는 모두 창문쪽에서 법석댔다. 여자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무서워요. 무서… 남자가 그렇게 떠는 여자를 꽈악 안으려다가 조금 풀었다. 여자는 풍선처럼 위태롭기도 했다. 청계피복 사무실은 아비규환이 계속되었다. 노동자 둘이 말했다. 씨팔. 우리도 뛰어내려…. 형사가 우물쭈물댔고, 기동경찰은 물러날 기색이 없었다. 아악, 오빠!… 여공의 절규가 피처럼 튀었고 노동자 두 명의 런닝셔츠가 금새 붉게 물들었다. 형사가 어쩔줄 몰라하며, 더듬거렸다. 저, 저 새끼, 자해를 했어. 야, 유리조각 뺏어!….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뺐으려 나서지 않았고 노동자 둘은 계속 유리조각으로 자기들의 팔과 배를 난자했다. 에이 씨, 다 같이 타죽자, 씨팔!…. 태일 친구2였다. 삽시간에 방안이 시커먼 연기로 가득 찼고 그 속에서 형사가 콜록대며 외쳤다. 아, 이, 개새끼들! 칵칵, 야, 철수, 철수!…. 다시 다방. 손님들 몇은 제자리로 가서 앉고 몇은 계속 사태를 구경중이었다. 여자는 아직 울음, 아니 오열의 경련을 멈추지 못했고 남자는 그녀를 껴안은 채 숨을 죽이고 초조하게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끝났나?… 재미없네… 손님 둘이 그렇게 건성대다가 자기들을 노려보는 남자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 건너편 건물 청계피복 사무실 유리창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여자가 그것을 먼저 보았다. 아, 저기… 저것 봐요. 으아악!… 구경꾼들이 다시 몰렸고 여자가 남자를 뿌리치고 뛰쳐나가려 했다. 남자가 여자를 만류했지만 여자는 몸부림과 절규 그 자체였다. 이상하게 남자는 여자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냥 무언의, 그래서 더 끔찍한 구멍의 절규 뿐. 남자가 여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빨을 꽈악 깨물고, 뜨거운 눈물도 터지고, 흐르는 눈물을 그냥 두며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여자의 몸부림이 잦아들었다. 여자가 무너지듯이 의자에 앉아 고개를 파묻고 흐느꼈다. 그러나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의 아비규환은 계속되었다. 소방호스를 든 경찰관들이 몰려와 불을 꺼서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노동자들은 모두 창문으로 몰려가 있는 상태였고 형사는 문을 열고 선 채였다. 노동자 한 명이 소리쳤다. 어머니를 모셔와라!…. 아, 알았어. 알았다니까. 곧 모셔오겠네. 어이, 모두 내려가, 해산!….
건너편 건물 입구가 다방에서 보인다. 구경꾼과 장사치들이 한데 섞여 웅성댄다. 형사와 경찰들이 나오고, 자진해산한 노동자들 그 뒤를 따라 나온다. 모두 나오자,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여, 노동자들을 모두 연행해가는 형사와 경찰들. 남자는 창쪽에서 떨어진 자리에 여자를 앉히고 진정시키느라 창 밖을 볼 겨를이 없었다. 바깥을 구경하던 손님 하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엉? 잡아가네?… 남자가 놀라서 ‘에?’하고 미처 반문하기도 전에 여자가 남자를 박차고 창문으로 내달았다. 남자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용수철처럼 튀어 여자 뒤를 쫓았다. 여자는 곧바로 창문 위에 발을 걸치며 외치기 시작했다. 야, 이 개새끼들아! 나도 뛰어내릴 거야!…. 남자가 다리 하나를 잡지 않았더라면 여자는 떨어졌을 거였다. 여자는 발을 뽑으려 기를 쓰면서 창밖에 대고 계속 소리치고, 남자가 또 엉겁결에 여자 입을 막았다. 삽시간에 다방이 부산해지고,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여자의 고함 소리를 듣고 저 아래 형사도 사태를, 그리고 둘이 누구인지를 금방 알아챘다. 형사가 서둘러 뭐라 뭐라 지시하고 경찰들이 다방 있는 건물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자, 가자 어서? 자, 빨리…. 남자가 허겁지겁 여자를 독촉했지만 여자는 완강히 창턱을 붙잡고 늘어졌다. 놔, 난, 도저히 못 참아. 죽겠어, 나도…. 쓸데없는 짓. 빨리!…. 쓸데없는 짓? 그럼 우린 쓸데없는 짓 말고 뭘 할 수 있어, 개새끼야!…. 그렇게 발악을 했지만 그 말이 여자의 힘을 빼기는 했다… 무엇이든! 빨리!…. 스스로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르고 남자가 그렇게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러나 여자는 바닥에 주질러 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 엉엉, 개새끼, 병신같은 새끼야!…. 여자를 질질 끌다시피 다방을 빠져나오는 남자. 온 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구르는 여자. 천지사방 골목길, 아무도 없는. 그러는 동안 남자 음성.
--여보. 가자, 우린 더 가야 해…….
암흑. 헉, 헉, 다급하게 뛰어가는 호흡. 호흡이 계속 이어진다. 평화시장 앞, 실갱이하는 노동자들과 사장--형사들. 흑백으로, 슬그머니 사라지는 태일. 계단. 줄어들면 평화시장 건물 계단을 오르는 태일. 평화시장 옥상. 석유를 몸에 붓는 태일. 그 옆에 플래카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청계피복 노조 사무실.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남여 노동자들. 창문에 매달려 뛰어내리겠다고 위협하는 노동자. 경찰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남자. 떨어지는 것을 말리려는 남자. 벽면에 붙은 전태일 원래 사진, 클로즈업. 호흡소리 말고는 장면이 모두 묵음이고 그런 동안, 남자 음성.
--그러나 그날 이후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 그냥 남의 고통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 그것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나는 다른 장면을 상상하곤 했다.
경악하며 뭐라 외치는 시장 사람 얼굴. 평화시장건물. 창문에서 뛰어 내리는 노동자. 떨어진 곳으로 몰려들어 웅성대는 시장 사람들. 다시 경악하며 손으로 어디를 가르키는 사람들. 평화시장 건물 청계피복 노조 창문에서 시커멓게 새 나오는 연기. 백차 싸이렌 소리. 달려오는 백차. 그러는 동안 형사 둘의 대화 음성. 대어 낚았어. 저잔 빨갱이야. 증거가 완벽하지. 어이, 1계급 승진이구만!…. 어, 그래, 그래. 고마워. 앓던 이 빠졌군…. 평화시장 건물 입구, 수갑을 차고 끌려나오는 남자. 백차에 실리는 남자의 놀란 얼굴, 클로즈업, 정지. 구경꾼들 틈에 섞여 있는 여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타라고 다그치는 경찰. 백차에 실리는 남자. 떠나는 백차, 남아있는 남녀 노동자들. 여자. 사람들. 그동안 남자 음성.
--아냐, 이건. 이렇게 화약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이 전태일은 아냐. 그래, 지금부터야, 삶도, 죽음도….
암흑, 백차소리, 잦아들면, 다시 남자 음성.
--그의 죽음이 내게, 살아야 할 삶으로 온다면….
우울한 베토벤 음악 흐르고, 암흑이 변하여 철문. 어둠을 조각한 듯한, 기분 나쁜 빛을 내는 철문. 그 위로 깔리는 태일 음성.
--오늘은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 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 때에 한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덜컹, 덜컹, 드륵, 드륵, 대며 열리는 거대한 철문. 백차 차창 전면으로 철문이 열리며 드러나는, 아슴푸레한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형사 둘의 음성. 자, 고생 좀 하시게…. 그래. 이제 고생 임무 교댄가, 하하…. 철문 안으로 들어가는 백차. 다시 덜컹, 덜컹, 드륵, 드륵, 닫히는 철문. 다 닫히면, 남자 음성.
--그래. 더 가야 해. 우린, 더 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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