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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FA 개정되는 그날까지..."

촛불시위 8일째 2만여 참가-14일 시청앞 10만 예상

"80년 서울역, 87년 이순신 동상, 2002년 드디어 미대사관 앞까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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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만에 광화문이 뚫렸다. 2만개의 촛불 행렬을 그 무엇도 막을 수가 없었다.

미군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해 고인의 넋을 기리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직접사과와 살인 미군처벌, SOFA개정을 요구하는 촛불추모제가 2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7일 저녁 광화문에서 열렸다.

수만개의 촛불이 켜진 광화문 네거리는 해가 져도 어두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날 종묘의 '미군장갑차 고 신효순·심미선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가 개최한 '자주적인 나라 만들기 촛불 인간띠 잇기 대회' 행렬이 광화문으로 이어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네티즌들과 광화문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이 합류하자 저녁 6시경 광화문은 거대한 촛불바다가 됐다.

그러나 그 촛불바다는 한 곳에 고여 있지 않았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추모제를 진행하던 2만여 명의 시민들은 8시가 되자 부근 열린시민광장에서 6일째 단식농성중인 신부님들을 만나러 가겠다며 경찰에게 길을 내주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경찰이 길을 내주지 않자, 추모제 참가자들이 다칠 것을 염려해 서대문과 종로 방향으로 우회해 갈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이 충돌로 인한 부상자를 염려해서인지 광화문쪽 미 대사관 앞길을 열어주었고, 순식간에 인파는 세종로로 쏟아져 나와 미 대사관 앞에서 정리집회를 했다.

자신이 79학번이라고 밝힌 두 딸의 아버지는 "80년 서울의 봄, 87년 민주화 항쟁 당시 항상 거리에 있었지만, 내 생전에 미대사관 앞까지 나와서 집회를 하게 될 줄은 꿈도 못꿨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인 것 같다"며 울먹였다.

한 여고생은 "지난 6월 광화문에 나와 응원을 하던 기억이 난다"며 "이 자리에 다시 선다는 것이 그 당시 숨진 미선이 효순이에게 부끄럽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여기에 나와서 미선이 효순이에게 사죄해야한다"고 했다.

한 대학생은 "지난 월드컵에서 우리는 광화문에 구름 같이 모여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4강이라는 기적을 이룩했는데, 지금 다시 이자리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보니 4강이 결코 기적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위력"이라면서 흥분했다.

한 네티즌의 발의로 지난 달 30일 시작돼 8일째 계속되고 있는 이날 광화문 촛불추모제에는 고 신효순·심미선양의 부모님도 모두 참석했다. 고 신효순양의 어머니는 "온국민이 이렇게 나서주니까 너무나 고맙다"며 눈물을 참지 못했고, 이에 시민들은 "어머니 힘내세요!"라며 "우리가 끝까지 싸워서 이길 것입니다"고 격려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이수호 위원장도 촛불추모제에 참석해서 "우리가 미국에게 이런 대접을 받고 살게 된 데에는 교단에서 교사들이 잘못한 것이 많은 때문인 것 같다"며 "그러나 지금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니 자랑스러운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많은 일반 시민들이 연사로 참가해 뜨거운 울분을 토해냈다.

인터넷에 처음 광화문 촛불추모제를 제안한 아이디 '앙마'의 김기보씨(30, 학원강사)가 참석했다. 그는 "MBC 'PD수첩'('그들만의 재판, 미군은 무죄인가' 11월 26일 방영)을 보고 너무 화가나 밤새 잠을 자지 못하다가 새벽 6시에 세 군데 글을 올린 것"이라며 "우리가 들고 있는 촛불은 촛불이 아니라 미선이 효순이의 영혼이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문동 아줌마' 이예진(30, 회사원)씨는 "단식농성중인 신부님들의 이름을 찾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비로소 미선이 효순이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됐다"며 "그동안 이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지난 11월 30일 첫 촛불추모제보다 훨씬 많은 네티즌들과 가족, 청소년을 볼 수 있었다.

바람에 자꾸 꺼지는 딸의 초에 불을 옮겨주던 한 어머니는 "처음에 뉴스를 보고 알았는데, 자꾸 딸이 가자고 졸라서 인터넷에서 확인하고 나왔다"며 "나오길 잘 한 것 같고, 너무 감격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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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수험생이라고 밝힌 공영진(18, 학생)군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느라 무슨 일이 일어난지 몰랐다"며 "지금의 교육제도는 학생들이 사회에 관심이 없도록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윤태곤씨(28, 회사원)는 "이 사건을 대통령 후보들에게 전가하지 말고, 현 정권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DJ정권은 역사 속에서 '무능한 사대정권'으로 영원히 낙인찍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와 민주당의 김근태, 심재권 의원도 추모제 인파 속에 섞여 있었다.

김 의원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 조용히 함께 마음을 나누기 위해 추모제에 참석했다"며 "추모제에서 느낀 부끄럽고 슬픈 마음을 모아 정치인으로서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이 선다"고 했다. 심 의원도 "정치권이 나서서 부시 미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내고 SOFA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고 했다.

김 의원은 또한 "지금 이들은 과격한 반미주의자들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부당한 현실과 불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다"며 현재의 사태를 한·미 정부가 '반미주의'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나타냈다.

대통령 후보로는 유일하게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권영길 민노당 후보는 "민노당은 6월 13일부터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을 촉구해 왔다"며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대해 "그들이 지금까지 무엇을 해 왔나 심각하게 반성해야 된다"고 했다. 또한 권 후보는 "부시 미 대통령의 사과를 반드시 받아내고, 주한미군이 주둔군이 아닌 점령군 행세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단계적으로 주한미군이 철수돼야 한다"고 했다.

사회자가 권 후보에게 연단에서 발언해 주기를 강력하게 권유했으나, 권 후보는 이를 한사코 거절하고 시민들 속에서 촛불추모제를 함께 했다.

추모제는 밤 9시30분경 자진해산하면서 마무리됐다. 그러나 시민들은 아쉬운 듯, 12월 14일 시청 앞에서 열리는 '10만 범국민시국대회'에는 1백명씩 더 데리고 나와 만나기로 약속하며 헤어졌다. 시민들이 빠져나간 광화문 거리는 촛농가루로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4시에는 범대위의 주최로 종묘에서 '자주적인 나라 만들기 촛불 인간띠 잇기 대회'가 2천여 명의 학생·시민·사회단체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자리에는 오종렬 전국민족민주주의연합 상임의장이 참석해 "망국노란 나라 잃어버린 백성을 두고 하는 말인데, 우리는 일제에서 해방됐지만 여전히 망국노인 것 같다"며 "꽃다운 나이의 우리 여중생 두 명이 죽었는데, 이 땅을 지켜야할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면서 정부를 비판했다.

오 의장은 또한, 사건 당시 "미군 지휘차량이 두 대나 있었음을 지적하며 이들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오후 5시경 대회를 끝내고 광화문 촛불 추모제에 참가하기 위해 종로 거리 행진을 했다.

한편, 미국 백악관 앞에서 시위중이던 방미투쟁단은 7일 오후(현지시각) 다시 백악관에 모여 시위에 들어갔으나 미국 경찰의 제지 과정에서 재미동포 교사 홍석정씨(24, 뉴욕)가 중죄에 해당하는 경찰 폭행 혐의로 체포됐다.

뉴욕에서 온 풍물패와 범대위 후원회원 등 30여명이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하며 부시 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경비원들은 "요구사항이 있으면 메일로 하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에 흥분한 범대위 공동대표 한상렬 목사가 백악관 철제문을 흔들며 "부시 사과하라"고 외치자 경비 경찰들이 시위대를 도로쪽으로 몰아냈고, 시위대와 경찰이 밀고 밀리는 과정에서 홍씨가 체포됐다. 홍씨는 오는 9일 보석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범대위 관계자는 당시 "홍씨가 손에 전단지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고 상황을 전했다.

한 목사 등 시위대는 백악관 뒤 엘립스 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고 신효순·심미선 양의 위령제를 지내고 삭발식을 했다. 삭발에는 국제행동센터(IAC)의 더스틴 랭리씨를 비롯해 재미동포 황용순, 정유미씨 등이 참여했다.

삭발식 후 한 목사는 "우리 국민은 민족 자존심을 찾고자 대동단결했다"면서 "만일 범죄를 저지른 미군들에 대한 재판권의 한국 이양이 이뤄지지 않으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결국 우리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해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월드컵처럼 온 민족이 대동단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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