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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출신 의원' 전용학의 경이로운 정치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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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언론인출신 의원' 전용학의 경이로운 정치행보

자민련ㆍ민주ㆍ한나라 섭렵, 이인제ㆍ권노갑 줄서기도

"배신은 배신을 부르고 야합은 또다른 야합을 낳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해 10월19일 자민련 소속 김용환·강창희 의원이 한나라당에 입당하자, 전용학 당시 민주당 대변인(50)은 '추악한 배신과 야합'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난했다.

그로부터 채 1년도 안돼 전용학 의원은 지난 14일 자민련 이완구 의원과 함께 민주당을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는 해명서를 통해 "혼돈과 분열의 정치를 뒤로 하고 희망의 정치시대를 향해 새 출발을 결심했다"고 했다. 또 "껍질을 깨는 아픔을 감내하며 정치안정의 큰 뜻에 동참하겠다"며 "이회창 후보의 집권을 통한 정치안정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대세"라고도 했다.

그러나 전 의원의 지금까지 행적을 보면 '대의'를 위해 '껍질을 깨는 아픔을 감내'하면서까지 탈당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정계 입문부터 철새 행보**

전 의원은 원래 언론인 출신이다.

그는 본인의 표현을 빌면 '찢어지게 가난한 충청도 농투산이' 집안에서 태어나 독하게 마음먹고 공부해 서울대 법대를 나온 뒤 뜻한 바 있어 사법고시 대신에 언론고시에 도전, MBC에 입사해 정치부에서 재직했다. 그후 80년대말 세계일보가 창간되자 직장을 옮겨 정치부차장까지 하다가, SBS가 출범하자 또다시 직장을 옮겨 여기서 정치부장, 국제부장을 거쳐 '보도국의 꽃'이라는 8시뉴스 앵커까지 지냈다.

언론계에서는 전 의원의 언론계 입문 자체가 '정치입문 코스'를 상정한 것이었으며, 그가 언론계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여러 차례 직장을 옮긴 것도 빠른 승진과 정치입문 조기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그가 사표를 던진 것은 국제부장으로 재직하던 2000년 1월의 일. 자민련 공천으로 16대 4.13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해 1월 자민련에 입당했다. 그러나 믿었던 자민련이 자신 대신 정일영 의원에게 공천을 주자, 미련없이 자민련을 탈당해 그대신 자신에게 공천을 약속한 민주당으로 당을 옮겼다. 당시 그는 입당의 변을 통해 "변화와 개혁을 지지해 왔기 때문에 민주당에 들어왔다"고 해명했다.

***한때는 권노갑의 총애 받기도**

그는 치열한 경합끝에 4.13 총선에서 당선돼(천안갑) 의원뱃지를 달았다.

민주당에서 그는 여러 계파중 이인제 계보를 택했다. 이인제 최고위원이 당시만 해도 차기 대선후보로 가장 유력시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이 최고위원의 원내 계보모임인 '화요포럼'에 가입, 이인제 계보로서 공식활동을 전개했다.

전용학 의원은 지난해 3월 초선의원으로는 대단히 파격적으로 민주당 대변인이 됐다. 방송 앵커 출신이라는 점이 높게 작용한 탓도 있다. 그러나 그의 보스인 이인제 최고위원의 지원사격과, 당시까지만 해도 이인제 최고위원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민주당 최대실세 권노갑 고문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결정적 작용을 했다는 게 정가의 중론이었다.

이같은 권노갑 고문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인지 전용학 대변인은 그해 3월말 마포에 개인사무실을 차린 뒤 정계에 본격개입한 권 고문의 사무실을 매일같이 찾아, 권 고문이 기자들과 만날 때마다 배석했다. 이에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전 대변인을 놓고 "민주당 대변인이냐, 권노갑 대변인이냐"는 비아냥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회창 공격수 전용학, "한나라당은 대통령병 환자병동"**

전용학 의원은 2001년 11월까지 8개월간 당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당대변인으로 그는 DJ 정부의 언론정책 및 햇볕정책의 전도사이자 한나라당을 수구부패 정당으로 몰아붙이는 정면 공격수였다. 특히 그는 이회창 총재에 대해 독설을 서슴지 않았다.

당시 전 의원이 이회창 후보에게 쏟아낸 말들을 돌이켜 보면 어떻게 지금 와서 "이회창 후보 대선 승리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내년에 이회창 총재가 왕이 될 것이라는 한나라당 조정무 의원의 발언은 한나라당이라는 '대통령병 환자병동'에서 흘러나온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지난 97년 이회창 부인에게 '영부인' 운운하며 아부를 한 황낙주 전 국회의장의 발언이 떠오른다."(2001. 4. 5)

"내 편은 죄가 있어도 감싸고, 내 편이 아닌 사람은 죽여놓겠다는 이회창 총재식의 탄핵정치는 상생(相生)의 정치가 아니라 상살(相殺)의 정치이다."(2001. 4. 30)

"과거 총리까지 지낸 바 있는 이회창 총재가 국무위원 죽이기 정치로 일관하는 것은 '정치 보복할 사람'이라는 일반의 우려를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속좁은 야당총재의 전형이다. 이 총재는 스스로 총재직에서 사퇴해야 한다."(2001. 5. 4)

"이회창 총재는 스스로 공정하고 따뜻한 보수라 지칭했는데, 재벌 등 특권 기득권층을 편드는 지극히 수구적이고 편파적인 입장에 서 있을 뿐, 서민과 힘없는 사람에게는 냉정하고 차가운 본질을 감추기는 어려울 것이다."(2001. 5. 23)

"자신들의 가족들은 국민 모두가 이행하는 병역의 의무에서 특혜를 얻어야 하고 자신에게 우호적인 언론기업들은 납세의 의무에서 예외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발상이 과연 법대로, 원칙대로를 내세워온 이 총재의 논리인지 참으로 궁금하다."(2001. 6. 23)

"세계 유일의 포용정책 반대자가 되어 대북정책 실패를 외치는 이 총재는 고독한 선지자의 모습이 아니라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현정부의 실패만을 고대하는 심술난 놀부의 모습으로 전 세계에 비춰지고 있다."(2001.6.14)

***언론 세무조사때는 '언론개혁 전도사'**

그는 지난해 언론 세무조사가 논란을 빚자, '조중동'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 언론개혁은 시대적 소명인 만큼 언론개혁에 반발하는 조중동과 이를 비호하는 한나라당은 반성하라는 주장이었다.

"언론 종사자와 국민의 80% 이상이 환영하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유독 야당만 반대하는 이유가 뭐냐. 취재·보도·편집의 자유는 언론인과 언론기업의 튼튼한 도덕성 기반 위에서만 확보될 수 있다."(2001. 2. 9)

"세계최대 언론인단체 IFJ 회장이 한국의 언론개혁에 대해 평가한 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며, 전세계 언론인들이 한국의 언론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2001. 6. 11)

"한나라당은 과거 집권당 시절 언론사 세무조사를 정략적으로 이용해 놓고 이제는 언론자유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친일파가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는 격이다."(2001. 6. 22)

"국세청의 공정한 조사를 통해 언론사의 위법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언론사의 비리혐의에 개탄을 금할 길 없다."(2001. 6. 29)

***이인제 대변인 하다가 노풍 불자 노무현 언론특보로 변신**

전용학 의원은 지난해 11월 대변인직을 그만 뒀다. 자신의 보스인 이인제 최고위원의 대선후보 경선운동을 돕기 위해서였다.

전 의원은 대변인직을 그만 두며 주위 지인들에게 자신의 대변인 생활은 '손해보는 장사'였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변인을 맡고 있는 기간에 언론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조중동 등 기존언론들과 사이가 크게 벌어진 데 이어, 이용호 게이트 등 연이어 터져나온 권력형 비리때문에 '당의 입'인 내 자신의 이미지도 함께 나빠졌다"는 게 그의 불만이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하지만 그는 그후에도 스스로 이미지 훼손을 자초했다. 전 의원은 올해 민주당내 대선후보 경선때 이인제 최고위원의 대변인을 맡아 '음모론'과 '색깔론'등 네가티브 공세를 펼치면서 노무현 후보를 맹공격했다. 당시 그는 "노풍은 청와대 측근 작품"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 이인제 최고위원과 함께 전용학 대변인의 이미지도 함께 나빠졌다.

그러다 노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되자 지난 5월말 "이제는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 만들 때"라며 노 후보 언론특보로 참여했다. 당시만 해도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하늘 찌를 듯 높던 시절이었다. 발빠른 변신이었다.

그러나 그후 노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전 의원은 다시 진로를 틀었다. 전 의원은 지난 4일 반노 진영이 주축이 된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발족에 참여한 34명 의원 중 하나다.

전 의원은 또 지난 7일 이한동 의원 대선출마 선언식에 참석해 이 의원을 "은인자중하던 호랑이" "숨겨진 다이아몬드"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선택한 전 의원**

급기야 전 의원은 후단협이 회장인 김영배 고문의 "국민경선 사기극" 발언으로 내분에 빠져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14일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전 의원 지역구인 충남 천안갑 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이 '공석'이라는 점을 감안해 결단을 내린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과정에 지난 11일 김용환 한나라당 고문 등을 만나 2004년 17대 총선에서의 공천을 약속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용학 의원은 그러나 이에 앞서 천안의 함석재 자민련 의원이 지난 5월말 한나라당에 입당하자 "함 선배가 철새처럼 의리를 버리고 그런 짓을 해서야 하냐"며 공·사석에서 함의원의 '철새' 근성을 맹성토하기도 했다.

전 의원은 이처럼 정치입문 불과 2년만에 자민련, 민주당, 한나라당 등 한국의 제도정당 세 곳을 모두 섭렵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무협지 명언처럼, 선배 의원들조차 혀를 내저을 정도의, 초선의원답지 않은 눈부신 행보(?)다. 과연 앞으로 전 의원이 보여줄 다음 행보가 궁금할 정도다.

전용학 의원은 민주당 대변인 시절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는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지난해 10월 추석 직후 험악한 민심을 확인한 뒤 민주당의 대오각성을 다짐하며 인용한, 류시화 시인의 '길 위에서의 생각'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정계입문후 끝없이 방황해온 전 의원은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선택"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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