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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크라시'와 '데모크레이지' 갈림길에 선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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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크라시'와 '데모크레이지' 갈림길에 선 지식인

[시민정치시평] 국정원 사건 시국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

국정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촛불의 위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심지어 어린 학생들까지 '도난당한 민주주의'를 되찾겠다고 거리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대학교수들의 참여율이 그리 높지 않은 현실을 보면서, 대학이 전문적 기능인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전락하고 있고 대학인들은 자기검열을 통해 '비정치적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를 자처하고 있다고 비판한 장 폴 사르트르를 떠올리게 된다.

고전이 된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자신과 무관한 일에 참견하는 존재'라고 정의 내렸다. 우리는 사르트르가 그의 조국 프랑스가 문명의 이름으로 알제리와 베트남에서 행한 추악한 식민화 전쟁을 통렬하게 비난했음을 기억한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한다.

"완벽한 핵무기 제조를 위해 핵분열을 연구하는 그들을 우리는 '지식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학자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힘을 빌려 만들어진 핵무기의 파괴적 능력에 전율을 느낀 나머지 핵폭탄 사용을 억제하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회합을 갖고 선언문에 서명할 때 그들은 비로소 '지식인'이 된다."

2006년 9월 19일 태국에서 탁신 친나왓 수상을 몰아내려는 쿠데타가 일어났다. 쿠데타를 일으킨 집단은 '국왕폐하를 원수로 하는 민주주의통치체제 개혁평의회'라는 긴 이름을 내걸었다. 탁신을 민주주의와 왕실에 위해를 가하는 위험한 대중영합주의자로 간주하고 있던 지식인들은 침묵으로 쿠데타를 지지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좋은 쿠데타(good coup)'라는 말로 화답했다. 그리고 이를 '태국식 민주주의'로 합리화했다. 물론 이는 철권통치를 '태국식 민주주의'로 포장했던 1960년대 군사독재 시대로의 회귀나 다를 바 없었다.

2006년 쿠데타로, 국민헌법으로 불리던 1997년 헌법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물론 2006년 쿠데타는 역대 어떤 쿠데타보다도 부드러웠다. 탁신의 독선적 국정운영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던 일부 시민들은 쿠데타를 반겼다. 대부분의 대학교수들은 쿠데타에 침묵했다. 심지어 1992년 반군부 시위를 이끌었던 일부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군정이 주도하는 신헌법 제정위원회에 참여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 탁신 지지세력인 레드셔츠의 집회 모습 ⓒ로이터=뉴시스

이후 태국에서는 친탁신세력에 속하는 레드 셔츠와 반탁신세력에 속하는 옐로 셔츠가 번갈아 가며 대규모 시위와 점거를 반복하는 최악의 정쟁상황이 벌어졌다. 태국사회가 민주주의 규칙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가 실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으로 빠져든 것이다.

결과적으로 태국의 '지식인들'은 태국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데 일조하였다. 당시까지 탁신을 비판해온 왕립 쭐라롱껀 대학교의 짜이 응파껀 교수는 쿠데타에 대해 소극적 침묵과 적극적 참여로 대응한 '지식인들'을 '탱크 리버럴'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그들을 사이비 자유주의자라고 비난하기 위해 풍자적 표현을 쓴 것이다. 또 다른 이는 '탱크 리버럴'을 두고 그들이 어떻게 강단에서 학생들과 민주주의를 논할 수 있겠느냐고 한탄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이 반(反)헌정 행위임은 분명하지만 포복형 양상을 띠었기 때문에 쿠데타만큼 체감되지 않는 점도 있다. 그렇지만 국정원 대선개입과 같은 은밀한 반헌정적 행위가 묘한 위력을 과시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차적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사안이 분노하기에는 너무나 지엽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선거불복의 핑계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국정원 대선개입 운운하지만 고작 댓글이 아닌가? 그 댓글을 본 유권자가 과연 몇 명일까? 그리고 그들 중 영향을 받은 유권자는 또 얼마나 될까? 이들은 박빙의 승부를 겨룬 지난 대선국면에서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관련된 '해프닝'이 대선후보 토론회의 설전 거리가 되었고, 곧이어 야권이 '침소봉대', '호들갑'으로 이미지화돼 다시 주요 매체에 '가십거리'가 됐다는 사실을 그리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기에 지난 대선국면에서 여권이 국정원의 선거개입 논란거리로 '나비효과'의 덕을 봤을 수도 있음을 상상해본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문제가 양적 판단의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반칙을 함으로써 공정한 경기 규칙을 어긴 선수는 당연히 처벌을 받는다. 이때 그 반칙이 경기 결과에 미친 영향력의 정도가 아닌 반칙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처벌 사유가 된다. 요컨대 국정원의 대선개입 문제는 개입 그 자체가 문제다. 양적 판단의 사안이 아니라 질적 판단의 사안이다. 반칙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없을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는 반칙 행위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지금의 여권은 집권세력의 프리미엄을 언제까지나 누릴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자처하는 여권이 공정한 선거경쟁이야말로 선거결과에 승복케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최소 요건임을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연합뉴스

필리핀 아로요 대통령 집권 초기의 사회를 두고 어느 필리핀 시민사회 활동가는 '데모크레이지'(democrazy)라는 자조적 표현을 썼다. 전직 대통령 딸이자 대학교수 출신이라는 배경을 갖고 신선한 정치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아로요 대통령 치하에서, 여러 인권침해 사례가 발생하고 대통령의 선거개입 의혹이 제기됐지만 필리핀 사회가 그다지 분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이 먼저 국정원의 대선개입 문제를 규탄하고 나서면서 대학교수들도 이 대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이들 지식인의 시국선언 참여는 사르트르가 우려했던 쁘띠 부르주아에 불과한 자신을 노동자, 농민과 일치시키려는 지식인들의 허위의식과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들의 참여는 사르트르가 기대한 지식인상에 부합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에 동참하는 것은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중차대한 민주주의 절차에 국가기관이 아무 거리낌 없이 개입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린 불법행위에 대한 분노이고 바로잡음을 요구하는 정당한 주권행사이다. 민주주의가 기로에 서 있는 지금의 시국에 더 많은 지식인들이 참여할 때 '데모크레이지'로 추락할 수 있는 이 위기국면이 오히려 '데모크라시'의 내실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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