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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가이아의 복수가 시작됐다"

수해를 바라보는 한 환경운동가의 긴급제언

전국을 헤집고 지나간 태풍에 한숨과 울음소리가 한반도를 울리고 있다.

지난달초 수마가 남긴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닥친 일이라 태풍 '루사'가 새기고 간 골은 더욱 깊기만 하다. 전국에서 2백10여명이 사망 또는 실종하고 재산피해 규모만 5조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는 이번 태풍은 피해에 있어 사상 최대 규모다. 또 태풍의 위력을 가늠하는 최저 중심기압의 경우는 59년 태풍 '사라'의 9백70헥토파스칼(hPa) 이후 두 번째인 9백52hPa을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태풍 '루사' 외에도 2000년의 폭설, 2001년 극심한 가뭄, 2002년 사상 초유의 폭우와 태풍 등 최근 몇 년 사이 기상이변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 여름 만해도 8월 한국의 일조시간은 평년의 절반도 안 되며 한달 동안 서울에 비가 온 날의 수가 무려 26일에 달했다. 또 봄철 밖에 나와 있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황사현상도 있었다.

가이아(Gaia)의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생태학의 창시자인 제임스 러블록이 지구를 가리키며 사용한 가이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 여신은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는 이에게는 도움을 주나 이를 어기는 사람에게는 가혹한 보복을 한다.)

***지구온난화로 폭우, 가뭄 등 기상이변 속출**

이렇게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겪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중국은 지난 6월 하루에 5백mm의 폭우가 산시성에 쏟아지는 등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컸다. 동유럽에도 1백년만의 폭우가 쏟아져 체코의 수도 프라하와 오스트리아 음악도시 잘츠부르크가 침수되고 독일의 엘베강도 범람하면서 통독 이후 10년간 동독 경제회생을 위해 쌓아올린 공든 탑이 허물어진 상태다.

러시아는 8월 중순 10년만에 대홍수가 발생해 93명이 숨지고 수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멕시코 역시 폭우로 두개의 댐이 무너져 11명이 죽었다. 이외에도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시아가 집중호우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반면 미국은 1732년 이후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캐롤라이나주는 8월 한달 동안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등 5년을 연이어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다.

최근 홍수, 폭우. 폭설, 가뭄 등과 같은 악(惡)기상이 대규모로 자주 찾아오는 것은 기후변화와 관계가 깊다. 전지구 평균기온이 올라가면 더 많은 수증기가 대기 중으로 유입되면서 더욱 강력하고 집중적인 악기상을 초래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이러한 수증기 유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미국과 유럽의 자료에 의하면 현재 대기 중 수증기 농도는 약 10~20%정도 증가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많은 기상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구상 곳곳에 극심한 가뭄과 폭설, 폭우가 찾아오는 기상이변이 계속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지역에 따라 건조한 지역은 더욱 건조해지고 상습적인 수해지역은 물난리가 더욱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기후 양극화 현상 고착화 가능성 커**

이러한 기상이변이 새로운 기후형태로 고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의 경우 최근 봄철 가뭄은 심해지고 여름철에는 폭우가 이어지는 등 기후의 양극화 현상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상이변의 적신호들은 우리가 기후변화의 현실을 인식하고 기후변화를 막는 좀더 실질적인 행동을 해야 함을 경고하는 중요한 조짐이다. 기후변화의 책임은 근본적으로 화석연료의 과도한 이용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급격히 증가시키고 무분별하게 열대 우림을 파괴한 산업화된 나라들에 있다. 우리가 지금 당장 화석연료의 이용을 적극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가 산업문명을 통해 이룩하려 했던 부와 삶의 질이 오히려 한참 퇴보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후변화는 기상이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작 환경의 변화로 인한 식량난, 물부족, 전염병, 식생변화, 생물종 다양성의 침해, 해안 지역 문명의 파괴 등 지구 생태계를 뒤흔드는 광범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 신호들을 감지해야 하는 사람들의 생태적 감수성은 산업문명과 자본의 논리 속에 둔감해져 버린 것 같다. 미국은 지난해 자국의 경제성장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이산화탄소가스 배출량 감축을 강제하는 교토의정서를 탈퇴했다. 이후 캐나다, 호주, 러시아 등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눈치를 보며 교토의정서에서 발을 빼려 한다. 이들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의정서 자체에도 많은 흠집을 내고 있다.

지난 11월 모로코 마라케쉬에서는 EU와 G77의 많은 양보로 교토의정서를 발효시키기 위한 최소의 이행안에 겨우 합의를 이루어내며 이번 9월초에 열렸던 세계 지구 정상회의(WSSD) 이전에 발효시킬 것을 목표로 했지만 실제 주요 의무 감축 국가들이 비준을 지연시킴으로써 아직 발효되지 못했다.

***화려한 말잔치로 끝난 세계 정상회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이번 세계 정상회의 역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에너지부문의 미국 대통령 부시의 폭주를 좇아 실효성 없는 말잔치에 그쳤을 뿐이다.

EU는 당초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으로써 2010년까지 대형수력발전 및 원자력, 폐기물 에너지 등을 제외한 신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율을 전세계 1차 에너지 공급량 중 15%까지 달성하고 연간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화석연료나 원자력에 대한 에너지 보조금을 점진적으로 없앨 것을 합의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회의 기간 내내 참가국들간에 공방만 지속되다가 최종합의문에서는 구체적인 목표나 비율, 달성 시기 등은 관철되지 못했다.

또 기후변화의 피해가 특히 도시보다는 농촌, 선진국보다는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 등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집중된다는 데에 관한 대책에도 아무런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기업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세계 유수의 석유기업의 이익만 보호됐을 뿐이다.

아마 지구정상회의를 전후로 평가될 수 있는 단 한 가지 성과는 교토의정서에 대해 러시아가 기존의 입장을 바꿔 비준의사를 밝힘으로써 의정서의 발효 가능성이 크게 증가한 정도가 될 것이다.

***한국정부 기후변화 문제 인식조차 못해**

한편 비난할 것은 지구 전체를 생각하지 못하고 자국의 경제적 이익에만 열을 올리는 세계 정상회의의 근시안적 태도만은 아니다.

똑같이 대홍수의 피해를 입은 EU와 우리 정부의 태도는 너무 대조적이다. 독일은 이번 대홍수에 대해 미국발(發) 인재라는 비난을 제기하며 기후변화에 대한 전지구적인 대응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교토의정서를 비준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또 각 정당들 역시 기후변화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에너지 이용 전환에 대한 정책적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독일의 사민당과 녹색당은 2010년까지 열병합 발전의 이용을 늘리고 에너지 효율을 높일 것에 동의하고 있다. 사민당의 경우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의 이용을 2배로 높여야 하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재화 및 서비스 제공을 위한 에너지 및 자원의 소비를 현재의 3/4로 줄이고 2005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990년에 비해 25% 줄일 것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내놓았다. 녹색당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0년까지 1990년에 비해 40%까지 줄이는 것을 정책 목표로 삼고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없앰으로써 달성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수해 대책과 복구에도 급급한 상황이며 중장기적으로 대응해야할 기후변화의 근본적인 문제는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미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9위에 이르는 지구온난화 오염국이고 이런 저런 종합대책에도 불구하고 2010년이 되면 온실가스 배출량 면에서 세계 7위가 될 것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늘 기후변화협약의 의무감축 부담을 최대한 피하려고만 할 뿐이다.

지난 3월 정부가 내놓은 「기후변화협약 대응 제2차 종합대책」도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현행 에너지다소비 구조에 대한 개혁의 청사진 없이 관련부처들이 온실가스 감축과 상관없이 추진하던 기존 정책을 재배열한 데 그쳤다.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을 부추길 수 있는 '4차선 국도 확충, 우회도로 건설' 같은 개발 정책마저 포함되어 있다.

***이번 수해를 계기로 에너지 소비 체제 바꿔야**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근본적인 대책은 화석연료에 기반한 에너지다소비형 체제를 재생가능에너지 위주의 에너지 저소비형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2010년까지 전세계 1차 에너지 공급량의 10%를 신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하는 정도의 구체적인 목표를 두고 우리가 쓰는 에너지원에 대해 혁신적인 개선을 이뤄야 한다.

현재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주장은 매우 요원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화석연료와 원자력 산업을 지지하고 있는 엄청난 에너지 보조금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재생가능에너지가 확산되는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수해를 계기로 우리도 이제 지구적인 사고로 삶의 터전인 지구의 살림을 지속가능하게 꾸려나가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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