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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ㆍ분단이 양심적 병역거부의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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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ㆍ분단이 양심적 병역거부의 걸림돌"

박노자 교수, "대표팀 병역면제는 국가주의 논리"

지난 17일 저녁 동국대학교 학술문화관 덕암세미나실에서 열린 초청 강연회에서 지켜본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한국학)는 참 겸손한 사람이었다. 주최 측에서 참석한 보광스님(동국대 불교대학장), 효림스님(불교연대 상임대표)를 보자 연신 합장하고 인사를 한다. 청중들에게도 깊숙이 허리 숙여 인사한다.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러시아 이름을 버리고 '러시아의 아들(露子)'이라는 한국 이름을 선택, 귀화한 박노자 교수. 그는 이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을 위한 불교연대'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한국의 징병제를 비판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지지 소신을 밝혔다.

다른 사회적 배경에서 성장한 박 교수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판한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타자(他者)'의 시선이 내포하기 쉬운 오만함이나 무책임함과는 거리가 멀다. 10대 후반에 불교의 비폭력 사상에서 삶의 진리를 깨닫고 입적했다는 박 교수의 발언은 '성찰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일회적 비판에 그치지 않는 깊은 울림을 갖는다.

***"군복무는 합법화된 폭력"**

박 교수는 자신이 처음 폭력에 대해 반성하게 된 매개체로 중·고등학교 역사책을 꼽았다.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공식적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교과서를 볼 때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면서 "왜 과거 군주들이 사람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를 공부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구 소련에서 청년기를 보냈던 박 교수는 더욱 폭력에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수많은 러시아 젊은이들은 정신질환에 시달리거나 마약중독자가 됐다. 그는 국가적 폭력이 한 인간을 파괴하는 광경을 생생히 목격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박 교수는 "군복무는 합법화된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불살생계(不殺生戒)'를 불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라고 생각하는 그는 "모든 인간이 살생을 거부할, 폭력 행사의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박 교수는 특히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많은 비판들이 '제도화된 폭력'과 '일상적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나 집총 거부자에 대한 군사재판에서 판사들은 흔히 "당신은 강도가 당신의 아내나 여동생을 강간하려는 데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이런 질문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흔히 던져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과 상관없이 모든(아니 일부) 남성들이 군대에 가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동참해야 한다는 제도화된 폭력을 거부하겠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강연회에 참석했던 한 변호사는 "실제 강간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강도에 맞서 자신의 가족을 보호했다는 남성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 폭력에 굴복한다"며 이런 논리의 허구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대표팀 병역면제는 국가에 공을 세우면 병역을 면제해 준다는 전형적 국가주의 논리"**

박 교수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노르웨이는 노동당과 공산당의 끈질긴 노력으로 1922년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법안을 채택했다. 상대적으로 늦었던 프랑스(1963년), 벨기에(1964년), 스위스(1996년)를 제외한 대부분 유럽 민주국가에서 1920-30년대에 병역거부권이 보편화됐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이들 국가에서 약 10%의 젊은이들이 정상 병역기간의 2배의 기간을 복무해야 하는 대체복무제를 선택한다.

박 교수는 한국에 아직 대체복무제가 없는, 더 나아가 이에 대한 논란조차 생기지 못하는 원인을 일제말 '국민총동원' 시기에 한국에 뿌리내린 '국가주의'에서 찾았다. 게다가 분단상황은 국가와 군대를 일본 천황과 같이 '신성불가침'한 존재로 만들어 놓았다.

유럽국가들에서 반(反)군복무 운동을 이끌어 왔던 단체는 예수의 살생 금지를 실천하려는 일부 기독교인과 계급 국가에 불복종하려는 일부 좌파들이었다. 박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극우반공체제에서 좌파 운동이 상상을 초월하는 탄압을 받았고 대부분의 주류 종교 집단들은 일제시대의 전례대로 국가와 전면적인 타협을 하거나, 혹 국가와 충돌한다 해도 신성불가침한 안보·병역의 영역은 건드리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박 교수의 강연이 있던 17일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축구 국가대표팀 10명의 병역을 면제해준다는 발표가 있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 결정에 동의한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국가에 공을 세우면 병역을 면제해 준다는 전형적인 국가주의적 논리"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가주의에서 개인의 인권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양심적 병역 거부 논란을 통해 확인되는 한국사회의 현실은 비단 '병역'과 관련된 문제만은 아닌 듯싶다.

PS. 이날 강연에서 박 교수는 초기 불교에서의 비폭력 사상을 강조하면서 호국불교 등 한국 불교에 내재한 '살생'의 전통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박 교수는 통일신라와 고려 등 고대 국가에서 사찰의 재산의 지키고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권력에 굴복하는 과정에서 '호국불교'가 싹텄다고 지적했다.

불교와 관련된 논의는 기자의 역량이 부족해 전달하지 못했다.

좀더 자세한 설명은 '불교문화연구 17집'에 실린 박노자 교수의 <사명대사 의거의 의의와 인간적·종교적 비극성-한·중에서의 승단과 국가적 폭력의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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