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으로 다가온 6·13 지방선거가 각 당의 가열된 대선경쟁 분위기에 휘말려 ‘지방자치’라는 본래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 더욱이 온 국민의 시선이 월드컵에 집중되면서 지방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국민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는 분위기다.
각 당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후보 재신임 문제를 고려하겠다’, ‘지방선거를 통해 부패정권을 심판하겠다’며 중앙정치의 입김을 지방선거에 불어넣어 왔다. 특히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면서 중앙당 차원의 상호비방전 속에 ‘생활’과 ‘자치’는 더욱 뒷전으로 내몰리는 양상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도부는 연일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지방선거 지원에 나서고 있으나 이회창, 노무현 후보에 대한 원색적인 인신공격만 주고받을 뿐, 지역 이슈나 정책대결의 면모는 찾아볼 수 없다.
***지방선거에 '지방자치'가 없다**
민주당은 노-창 대결구도를 선언하고, 한나라당은 '오히려 유리하다'며 정면대결을 선언한다. 그리곤 연일 '양아치' '시정잡배' 등 양당 대통령후보를 직접 겨냥한 공방에 주력하고 있다. '깽판' '빠순이' 등 '막말논쟁'도 점입가경이다.
접전양상을 보이는 수도권 광역단체장 선거에선 중앙당이 먼저 나서 상대후보를 겨냥한 흠집내기 공방에만 매달리고 있다.
지방선거에 대권경쟁과 막말싸움만 있을 뿐, 정작 그 알맹이라 할 지방자치는 빠져 있는 셈이다. 그 결과 현재 선거판세는 극심한 지역구도를 드러내고 있다.
전국을 동서로 갈라 동쪽은 한나라당, 서쪽은 민주당이 차지하는 동서분할의 양상이다. 심지어 열세지역엔 양당 모두 후보 조차 내지 못한 경우가 많을 정도다. 지역주의가 덜한 수도권, 그리고 자민련의 위축으로 소위 '맹주'를 잃은 충청권만이 관심을 모은다.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울산과 광주 지역 역시 지방자치 본연의 쟁점 때문이라기 보다는 진보정당 실험의 성공 여부, 민주당 텃밭 민심의 동요 여부가 주요 관심대상이다.
이러한 지역주의 현상, 대권 전초전으로서의 선거판세가 상대적으로 중앙정치의 영향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광역단체장 선거 뿐만 아니라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등 정당공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선거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더욱 심각해 진다.
또한 월드컵 열기와 함께 구체적인 선거쟁점이 부각되지 못하고, 최근 잇따른 비리게이트 때문에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이 극심하다는 점도 지방자치 본연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투표율도 낮아질 뿐아니라 투표장에 가는 국민도 지방현안과 후보 자질을 꼼꼼히 뜯어보기 보다는 거의 '습관적'으로 선택을 내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 10년 역사가 무색”**
지방선거가 이처럼 중앙당 차원의 이전투구 양상으로 흘러가는 경향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방자치 10년의 역사가 무색하다”며 개탄했다.
전북대 신기현(정외과) 교수는 “광역단체장 선거 등은 중앙당과의 연결고리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중앙정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하고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지역 발전이나 주민들의 생활이라는 측면이 상대적으로 도외시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대 조중빈(정외과) 교수도 “각 정당들이 지나치게 대선을 의식해서 지방자치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다”며 “과거 민주/반민주라는 차원에서라면 모를까 탈권위적 체제로 가자는 지방선거에도 구태의연한 대중호소 방식을 동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감정적 유대’라는 지역감정이 선거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방선거에서 정책이나 지역 이슈가 부각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또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은 곧 지방선거에 대한 냉소로 이어진다”며 “지방선거가 유권자들에게 자기 삶과 직결된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는 중앙정치와 언론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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