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정계개편과 신당창당을 공론화하며 ‘DJ 색깔 지우기’를 서두르고 있다. 김 대통령의 탈당에도 불구, 꼬리를 무는 세 아들 비리 의혹에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 하락세가 뚜렷해지자 등장한 위기의식의 일면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당명 개편, 지도부 재선출 등 기득권의 전면 포기를 전제로 한 정계개편 주장까지 대두된 상태이며, 김홍일 의원의 의원직 사퇴도 공론화됐다.
그러나 정계개편의 내용과 시점을 놓고 노 후보, 당 지도부, 중진 의원, 쇄신파, 동교동계 등 당내 각 분파들의 이견 조율이 난항을 겪는 등 논의가 현실화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백가쟁명 식으로 대처방안들이 모색되고는 있으나 중심 없이 흔들거리는 모습이다.
또한 문제의 한 당사자인 김홍일 의원이 의원직 사퇴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고 동교동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사퇴주장에 반감을 표하고 있어 자칫 동교동계와 쇄신파간의 당내 갈등이 재연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당초 17일로 예정됐던 의원워크숍이 노 후보의 방송기자클럽 토론회 참석을 이유로 연기된 점이 주목된다. 노 후보의 토론회 참석이 예정된 상태에서 17일 의원워크숍 일정이 잡혔던 점을 고려할 때, 전격적인 의원워크숍 일정 연기는 당의 대처방안에 대한 갈등양상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홍일 거취 놓고 쇄신파-동교동계 대립**
쇄신파가 세 아들 문제에 대해 강도 높은 ‘처방’을 들고 나선 것은 ‘탈 DJ화’를 통해 민주당에 노무현 색채를 부여, 지지율을 회복하려는 자구책으로 해석된다. 쇄신파 중진인 조순형 의원은 “아들 문제에 대해서는 아버지인 대통령에게 최종 책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검찰출두 전에 대통령이 김홍일 의원의 공직 사퇴를 포함한 수습방안에 대해 입장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초선의원은 “이희호 여사에게까지 비리 의혹이 퍼져가는 상황에서 형제 가운데 장남이 국민에게 사과하는 성명을 내고 공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지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진 의원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한 대표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의원직은 본인이 결정할 문제이며 지역구민의 결정이 중요하다”고 못박았다. 김태랑 최고위원도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사퇴하라는 것은 시기상, 명분상 맞지 않다”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쇄신연대 소속 장영달 의원은 이와 관련 “홍업, 홍걸씨의 비리 의혹은 명명백백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김홍일 의원 문제는 김 의원 자신이 선택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민이 선택한 국회의원의 거취 문제를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는 게 만나본 의원들 대부분의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쇄신파, '개혁세력 결집 정계개편 통해 신당 창당'**
한편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 의원들은 노 후보의 지지율 급락 추세와 관련해 정계개편 및 당명 변경 등의 특단의 대처 방안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탈당 카드가 효력을 발휘 못하고 ‘민주당=DJ당’이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영남권 지역연대를 골자로 했던 노 후보의 ‘신민주연합론’이 결과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제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쇄신파는 특히 노 후보의 정계개편 구상이 김 전 대통령의 호응도 끌어내지 못하고 본래의 취지마저 크게 훼손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 신기남 최고위원은 13일 기자들과 만나 “김 대통령의 아들 문제에다가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주장한 정계개편론이 지지부진해 당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정계개편을 통해 새로운 개혁세력을 규합하되, 이 과정에서 당명 변경과 기존 지도부를 새로 선출하는 등의 모든 기득권 포기를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YS와 제휴하는 방식의 정계개편이 아니라 '노풍'의 핵심인 '개혁'을 전면에 내건 정계개편을 강조한 것이며, '신당 창당'적 방식을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초·재선 의원들의 연구모임인 바른정치모임도 15일 정계개편 관련 세미나를 열 계획이며, 쇄신연대 소속 의원들은 16일 대통령 두 아들 문제와 함께 정치개혁 차원에서 정계개편 논의를 진행시킬 방침이다.
***노 후보 '두 마리 토끼 잡기', 쇄신파 생각과 같은가?**
소장파 의원들의 이같은 문제제기는 한화갑 대표가 ‘기득권 포기’도 불사하며 노 후보의 정계개편 찬성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여지가 넓어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아직은 문제제기 수준일 뿐 당내 논의가 모아지기에는 여러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당 개혁파들의 주장이 노 후보의 생각과 일치하는지도 미지수다.
신기남 최고위원이 밝힌 '개혁적 정계개편과 신당 창당 방식'은 노 후보가 '신민주연합'이란 용어를 폐기하겠다고 한 것과 일맥상통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노 후보는 14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깜짝쇼 하듯이 당명을 바꿀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한 "합당은 반대하지만 민주세력이 중심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연대는 문제될 게 없다"며 지방선거에서 JP와 연대할 뜻을 피력했고, YS에 대해서도 "앞으로도 계속 도움을 받으려 할 것"이라며 제휴 추진의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여기까지만 보면 당내 개혁파의 주장과 노 후보의 생각이 다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노 후보는 이날 또 "비전을 제시하고 실질적인 개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노 후보는 현재 '비전'과 '개혁'적 논리에 따른 정계개편 추진과 YS 및 JP와의 연대라는 현실정치적 측면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마리 토끼 잡기'다.
이러한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대해 당내 쇄신파들의 동의하는 것인지, 아니면 YS와의 연대 등에는 반대하며 개혁적 정계개편으로의 방향선회를 주장하는 것인지는 아직까지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최고위원들 사이에서도 의견 분분**
또한 새롭게 구성된 민주당 지도부가 쇄신파의 정계개편 논의와 신당 창당 발걸음에 힘을 실어줄 지도 아직 미지수다. 정계개편 내용과 시점에 대해 최고위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적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태랑 최고위원은 “정계개편에 대해 개념정의 등이 분명하게 정리돼야 할 것 같다”며 “이런 것들에 대해 궁금해 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박상천 최고위원은 “지방선거전에 정계개편이 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명확히 할 필요가 있으며 그래야 지방선거를 앞두고 혼선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 정계개편 논의에 제동을 걸었다.
이 외에도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정계개편에 대한 당내 공감대 부족에 대한 불만, 당의 기득권 포기 주장에 따른 불안감도 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기남 최고위원 측은 이에 대해 “최고위원회의에서 여러 갈래의 말들이 나왔지만 정계개편에 대한 조율상의 문제이지 절대 반대는 아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한 “지방선거 전 정계개편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느냐”며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계개편 시기와 관련해 장영달 의원도 “지방선거 이전은 정계개편의 ‘잉태시기’이며 7, 8월이 돼야 구체적 현상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급한 민주당, 중심 잡지 못하고 논의 시작단계**
이처럼 민주당은 아직 명확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통령 아들 비리와 노 후보의 YS 제휴 시도 실패라는 악재 속에 지지도가 급락하여 뭔가 시급한 대책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대책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 노 후보, 한 대표 및 최고위원들, 쇄신파, 동교동계 등등이 아직 제각각의 구상을 피력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논의들이 구체화되고 하나로 모아지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금주중 예정된 바른정치모임, 쇄신연대 회동, 그리고 당초 17일에서 연기된 의원워크숍 등을 거치면서 조기에 의견이 취합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홍일 의원직 사퇴 여부, 정계개편의 방향과 방법, 신당창당의 시기와 방법 등등 견해차가 뚜렷한 쟁점들이 산적해 조기 의견통일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대책은 시급히 나와야 하는데, 논의는 여러 갈래에서 이제 막 시작했다. 지방선거는 다가온다. 다급한 민주당의 앞날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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