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인제 후보의 노무현 후보에 대한 공격이 자질검증이 아닌 흠집내기식 의혹제기에 치우쳐 비난을 사고 있다.
이인제 후보는 "후보에 대한 노선 검증이 필요하다"면서 노 후보의 과거발언 등을 근거로 노 후보의 정책 노선이 '급진적'이라고 주장해왔다. 노 후보를 비롯한 당 안팎에서 자제를 요구해도 이 후보는 "이를 색깔론이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이인제 후보 측의 공세는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각종 의혹을 제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실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일단 터뜨리고 보자'는 식의 태도는 스스로 제기한 '후보 자질 검증'이란 정당성을 훼손시키고 있다.
무차별 의혹 제기는 오히려 이 후보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또 당내 의원들의 '국민경선 자체의 의미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비난도 회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인제 측 '아니면 말고'...**
이인제 후보의 노무현 후보 공격은 두가지 종류로 대별된다. 하나는 이념 및 노선검증 차원의 공세이고, 두번째는 각종 의혹제기이다.
이 가운데 이념 및 노선검증 문제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도 3일 대통령후보 경선참여 선언에서 '급진세력의 좌파적 정권 연장 기도'라는 표현을 구사하며 본격 가세, 이번 대선국면 최대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따라서 이 노선검증 공세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어떻게 흐를지 섣불리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인제 후보의 노무현 후보 공격에 사용되는 두번째 카드, 즉 각종 의혹제기가 무차별 흠집내기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인제 후보의 김윤수 공보특보는 2일 노무현 후보에 대한 자질검증이라면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
김 특보는 "안양에 있는 노사모 경기 중부지역 사무실은 안양월드 701호, 702호, 703호 등 3개 사무실을 통합한 것으로 50명이 동시 작업할 수 있는 규모"라며 "이는 당내 경선규정(유사 사무소 설치 금지)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사모 회장인 명계남씨는 "여의도 중앙사무실을 제외하고 지역별 사무실은 없다"며 "김 특보가 예로 든 안양의 경우 임대를 검토했으나 악용될 소지가 있어 검토 단계에서 폐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명씨는 사무실 운영비용에 대해 "중앙사무실 보증금 6백82만원과 월세 68만원이 든다"며 "임대료는 나와 회원 3명이 빌려준 것이며 월세는 회비로 운영된다"고 밝혔다.
김윤수 특보는 지난달 21일에도 '노사모' 관련 의혹을 제기했으나 사실무근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 특보는 "노사모 회원 2백70여명이 대전 경선 때 고급호텔에서 묵었다"고 주장했으나 노사모 측은 "25명만 여관에서 묵었다"며 영수증 등 근거자료를 제시한 바 있다.
***위장전입ㆍ호화빌라 공세, 노 후보측 해명하면 재론 없어**
또 김 특보는 2일 "노 후보가 자녀 개명을 위해 위장전입했다"며 지난 1979년 34일간 경남 밀양으로 주소지를 옮긴 사실을 공격했다. 이에 대해 노 후보 측이 "개명은 전국민의 자유"라며 "당시 부산법원에 관련 업무가 밀려 있어 부득이 밀양지원에서 개명허가를 받은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자, 이후 재론하지 않고 있다.
또 김 특보는 1일 "노 후보가 부인에게 사준 5억원 상당의 호화 빌라에 대한 의혹을 밝히라"고 공세를 가했다.
그러나 노 후보 측은 "노 후보 가족이 살고 있고 44평의 빌라를 호화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반론하자 '호화빌라'에 대한 공격을 그쳤다.
한편 이인제 후보 자신도 지난달 22일 TV토론에서 "2월 19일과 27일 박지원 청와대 정책특보를 만난 적 있으냐"고 노 후보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노 후보가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을 제시하면 우리도 알리바이를 대겠다"고 역공을 취하자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이인제 후보 측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최소한의 구체적인 사실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무차별 의혹을 제기하는 행태에 대해 비판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전형적인 마타도어, '흠집내기' 전술이라는 지적이다.
이 후보가 계속 주장하는 노 후보에 대한 '자질검증' 차원을 벗어나 "무엇이든 꼬투리를 잡고 보자"는 식의 '공격을 위한 공격'일 뿐이라는 것이다.
***'생산적 정책논쟁' 아쉬워**
이러한 이인제 후보 측의 파상공세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래지향적 정책대결이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인제 후보 측의 계속된 이념공세, 무차별 흠집내기로 인해 정책 대결의 장이 되어야할 경선과정이 소모적인 공방에 그치고 만다는 점이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임성호 교수는 "후보가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검증하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임에 틀림없다"면서 "그러나 문제는 이인제 후보가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긍정적 측면, 부정적 측면을 따지기 이전에 '좌파니까 안된다'는 식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한 개인의 이념을 특정 발언을 문제 삼아 일차원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 경제문제에는 진보적인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며 "일반인의 인식도 이처럼 이분법적으로 판단하기 힘든데 대선 후보로 나온 정치인들이라면 좀더 입체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손혁재 박사(정치학. 참여연대 운영위원장)는 "건강한 정책 논쟁이라면 특정정책에 대한 찬반 입장, 정책간의 우선 순위, 재원 마련 방안 등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놓고 논쟁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이인제 후보 측의 노 후보에 대한 의혹 제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이 후보가 주장하듯 후보에 대한 자질검증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질검증의 내용과 방법이라는 지적이다. 후보간의 정책과 비전에 대한 생산적인 논쟁이라고 보기 힘든 특정 후보 '흠집내기'를 계속한다면 득보다는 실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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