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고문의 '경선 완주' 선언이 있던 27일 오후 여의도에 마련된 2곳의 이인제 경선대책본부는 전열 재정비가 채 끝나지 않은 분위기였다. 경선본부 해체와 사무실 중 하나를 폐쇄하겠다는 계획도 예정 사항일 뿐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었다.
각종 회의와 방문객들로 들썩이던 이전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캠프 풍경이었다. 4년간 힘겹게 다져온 우위를 일순간에 빼앗긴 허탈함이 사무실 공기에 묻어났다. 이틀간의 초긴장 탓에 누적된 피로의 기색도 역력했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참모들은 남은 경선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과 관련해서는 "아직 특별한 것 없다", "논의 중이다"며 말을 아꼈다. 경선 자체의 승패에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이 고문의 '와신상담'을 믿고 따르는 우직함은 짙게 배어있었다.
반면 이 고문은 이날 충남 논산의 선영을 찾은 후 곧바로 이번 일요일 경선지인 전북 전주와 익산지역 순회에 나서 모처럼 활력을 보였다.
***'노풍' 잠재울 무기는 '색깔론'**
캠프의 우동주 보좌관은 "정상적이고 객관적인 상태에서 냉정하게 후보 개인의 자질을 평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국민경선제가 성공한다는 것이 이 고문의 주장"이라며 "이 고문이 단기필마의 자세로 돌아간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에 경선 끝까지 국민의 냉정한 판단을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고문이 다른 계산을 가지고 경선 완주를 선언한 것은 아니다"면서 "현 시점에서 (경선 전략과 관련한) '특단의 대책'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새롭게 준비된 '특단의 대책' 없이 이미 이 고문이 기자회견에서 비판한 노 고문의 이념적 '색깔'과 '성향' 공격을 '노풍' 잠재우기의 최대 무기로 계속 활용한다는 태세다.
우 보좌관은 "노 고문이 지금까지 보여준 정치 경력이나 내용, 행태를 볼 때 다분히 급진적이고 충동적인 부분이 있다"며 "노사문제, 대북관, 사회정책 등에서 그런 면이 드러난다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모두 똑같은 성향을 가질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는 급진적인 정책으로 국민들을 끌고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라며 "노 고문의 '색깔'이 공당의 대통령 후보로써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경선을 통해 갑작스럽게 일어난 '노풍'은 "노 고문의 집요한 네거티브 캠페인과 주변의 배후에서 일으킨 바람 때문에 발생했다"며 "경선과정은 물론 그 이후에도 노 고문은 자질과 성향을 지속적으로 검증받게 될 것"이라고 말해 '색깔론'을 공세적으로 제기할 것을 예고했다.
***"정계개편론 뒤에는 배후세력이 있다"**
그는 또 "정책과 비전 중심이 아니라 국민경선제의 취지에 어긋나는 불공정한 경선이 지금까지 진행돼 왔다"며 "이 고문이 감정적으로 격앙됐던 것도 그 이유"라고 말했다. 이 고문측이 주장하는 '불공정한 경선'은 곧 '외부의 힘'이 노 고문의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
이 고문의 측근인 김운환씨의 갑작스런 구속, 광주 경선당시 한화갑 고문 조직표가 노 고문 쪽으로 이동한 사실, 유종근 지사 측에서 제기한 외압설, 김중권 고문의 돌연 사퇴 등이 '정황 증거'라는 얘기다.
그와 관련해 확보된 증거 공개는 꺼렸으나 "구체적인 증거도 상당부분 가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그보다 확실한 것은 상식적으로 발생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진 일련의 정황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덧붙여 "이런 일들을 이 고문이 직접 입에 담은 적은 없을 뿐더러 외부에서 먼저 제기된 문제"라며 이 고문에게 돌아올 '역풍'을 경계했다.
노 고문의 배후세력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거명을 거부했다. 다만 "최근 노 고문 중심의 정계개편론이라는 것도 정계개편에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당 내외 세력의 작품"이라며 "정계개편을 기획하는 세력이 노 고문 배후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설령 노 고문의 정계개편론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노 고문의 의지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노 고문은 배후 세력의 구도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에 대한 승복은 '공정경선' 전제돼야…**
이 고문은 기자회견을 통해 경선 완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공정경선'과 '결과에 대한 승복' 의사를 밝혔다. 역으로 풀이하자면 공정한 경선이 전제돼야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비쳐진다.
97년 경선 불복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고문이 정치적 생명을 담보로 경선 불복을 다시 재현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그에 합당한 명분만 축적된다면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이 고문이 '최후의 반전'을 꾀할 수도 있다는 관측 역시 한편에서 대두되고 있다.
우 보좌관은 "(경선 결과도 나오지 않은) 현 시점에서 열심히 경선에 임하는 것 외에 그런 노림수는 있을 수 없다"고 잘랐으나 "어떤 돌출적인 사태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때 상황은 그때 대처할 일"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아무튼 이 고문의 경선 참여로 민주당 경선이 파행은 면하게 됐으나 색깔론과 정계개편론을 둘러싼 음모론은 오히려 전면화될 조짐이다. 이 공방 속에서 누가 더 선거인단의 표심을 잡느냐, 향후 경선의 승부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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