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자민련총재(JP)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절체절명의 '왕따' 위기를 맞고 있다. 시쳇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셈이다.
김총재는 20일 오전 마포당사에서 긴급의원총회를 소집했다.
그는 이날 모두 발언에서 비장한 어조로 "우리 당이 위축된 원인은 우리가 국가를 위해 어떻게 한 것과 관계없이 민주당과의 공동정권을 수립한 데 대해 국민이 좋지 못한 평가를 내렸기 때문"이라며 "다른 당에 의지하거나 연합하는 자세를 버리고 독자적으로 최선을 다해 뛴다면 우리 당의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JP의 이날 발언은 '당의 위축'을 처음으로 공식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아울러 '마이 웨이(my way)'를 걷자고 했다. 아무도 자민련을 거들떠보지 않고 있음을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무너지는 자민련**
자민련은 지금 '붕괴'중이다.
이원종 충북지사가 19일 자민련을 탈당,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이 지사는 이날 오후 남상우 정무부지사를 통해 자민련 충북도지부에 탈당계를 낸 데 이어 한나라당 충북도지부에 입당서를 제출했다.
하순봉 부총재 등 한나라당 부총재단이 지난 14일 이 지사를 전격 방문, 입당을 공개 권유한지 닷새만에 내린 결정이다.
자민련은 한나라당 부총재 등이 이 지사에게 한나라당 입당을 권유한 것에 대해 지난 15일"정당 사상 유례없는 조직적인 당적 강탈 기도사건으로 명백한 정치테러"라며 크게 반발하고 나서 두 야당간에 대립이 극대화됐다.
자민련은 급기야 실력행사도 서슴지 않았다. 자민련 지구당 위원장과 중앙위원, 여성위원 등 6백여명은 18일 마포당사에서 한나라당 규탄대회를 가졌다. 규탄대회 직후 여성위원 1백50여명은 이회창 총재의 가회동 자택을 항의 방문했고 지구당위원장 및 중앙위원들은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김종필 총재도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총재에 대한 대통령 낙선운동을 얼마든지 벌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원종 지사는 결국 한나라당을 택했다. 이 지사는 19일 오후 한나라당 입당 사실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갖고 "지역 현안 문제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면서 도민들의 마음이 자민련을 떠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며 "소외된 충북 발전을 위해 당력을 쏟겠다고 약속한 한나라당과 뜻을 같이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자민련은 이에 반발해 '이회창 총재 정치권 퇴출운동'을 본격 전개하겠다는 맞불작전에 나섰지만 한나라당은 '이원종 지사의 입당은 부패하고 무능한 DJ정권 하에서 실의에 빠져 있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산뜻한 결단'이라며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다.
충청권에 대한 자민련과 한나라당의 정면충돌이 시작되고 있지만, 일단 한나라당이 초반 우세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JP의 '텃밭'이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후보되면 정책 중심 정계개편, 자민련은 다음"**
JP는 민주당으로부터도 배척당하고 있다.
지난 1월말 각종 게이트로 민주당의 지지도가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중도개혁포럼(회장 정균환) 등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자민련, 민국당 등과의 '신3당 합당'을 추진한 바 있다. 신3당합당은 JP가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를 강령으로 채택한다면 어떤 정치세력과도 손잡겠다"며 동의하면서 현실화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정치적 야합'이라는 여론의 비판과 대선경선 후보를 비롯한 민주당내 반대 의견으로 신3당합당이 물건너 가고 JP가 정계개편을 매개로 민주당에 끼어들 여지가 사라졌다.
최근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여론조사에서 잇따라 이회창 총재를 앞서고 있는 노무현 고문은 지난 17일 "대선후보가 되면 민주당을 확대개편하는 정계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 고문은 "정책이 정계개편의 1차 기준이고 자민련은 그 다음"이라고 말해 정계개편 대상에서 자민련은 '관심 밖'임을 분명히 했다.
민주세력과 개혁세력을 통합하는 정계개편을 통해 현재의 영호남 지역대결구도를 정책대결 구도로 바꾸겠다는 노 고문의 정개개편 구상에서 JP는 오히려 잘라 내야할 대상이다.
***박근혜, YS와 단독 회동, JP와는 거리두기**
또하나 정계개편의 핵인 박근혜 의원도 JP를 멀리하고 있다. JP는 박 의원이 탈당한 직후인 지난 4일 "박근혜 의원과 상의할 일 있으면 얼마든지 상의하고 힘이 되줄 일 있으면 그렇게 하겠다"며 누구보다도 박 의원의 탈당을 반겼다. 김윤환 민국당 대표 등과 구상한 정계개편론의 요체인 '영남후보론'이 실현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신당창당에 나선 박근혜 의원은 8일 이수성 전 총리와, 19일 김영삼 전 대통령과 단독 회동을 가졌고, 정몽준 의원과도 조만간 만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의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에 나와 신당창당과 관련해 "JP와 만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기존 정당과는 상의하지 않는다는 게 나의 방침"이라며 "그런 곳에 몸 담고 계신 분들을 만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해 신당창당 구상에서 자민련을 배제할 것임을 시사했다.
박의원이 JP를 멀리하게 된 것은 JP가 박 의원이 보수신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뜻을 강력하게 시사했기 때문이다. JP는 지난 11일 "박근혜 의원이 '개혁세력과 함께 할 것'이라고 했는데 발상은 좋지만 개혁세력이 박 의원을 개혁대상으로 보고 있는데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며 "정신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아무 내용도 모르면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반박했다.
한편 YS는 지난 1월 7일 JP와의 단독회동에서 JP의 내각제에 기반한 연대제의를 거절해 3김연대를 통한 정계개편론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JP, 마지막 재기를 꿈꾸지만...**
JP는 지난 1월 15일 자민련 신년교례회에서 "내각제 관철을 위해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정계개편을 통해 보수신당을 창당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JP의 구상은 뭔가 큰 틀의 변화를 도모하지 않고서는 활로 모색이 어려운 자민련의 절박한 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각제를 책임지고 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확실히 밀어주겠다"는 카드로 급변하는 선거정국 속에서 최대한 몸값을 높여 마지막 재기를 노렸던 JP의 바람은 실현되기 힘들 것 같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이원종 지사의 영입을 계기로 "양대선거를 앞두고 지역감정이 고조돼 있는 상황에서 충청권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하다"며 자민련 공략을 본격화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다시 대두하고 있다.
민주당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노무현, 신당 추진의 핵으로 떠오른 박근혜, 심지어 YS까지 JP와는 함께 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한편에서는 한나라당의 공세에 시달리고, 다른 한편 정계개편을 추진하는 모두에게서 외면당한 JP. 그의 앞날이 험난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