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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보통' 관객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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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보통' 관객이 되라

보좌진ㆍ기자 대동에 극장 관객들 눈살

언제부턴가 정치인들에게 영화 관람은 중요한 홍보활동이 됐다. 다소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벗어나는데 영화 관람 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기 때문. 그러나 수하의 의원들과 보좌진들, 거기에 취재기자들까지 대동한 정치인들의 영화관람은 오히려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만든다.

영화 관람 자체보다는 관람 전후의 홍보행사에 더 관심을 갖는 듯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러 온 건지, 사진 찍으러 온 건지 헷깔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

영화제작사 측에서는 정치인들의 영화 관람이 TV나 신문지면을 통해 보도됨으로써 수십번의 광고보다 훨씬 나은 홍보 효과를 가지니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특정 정치인들을 선정, 초청하는 추세다.

***영화와 정치인의 홍보 상승효과**

정치인의 관람 덕을 톡톡히 봤던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서편제'. 지난 93년 청와대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고, 당시 야당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도 직접 개봉관을 찾아 관람하는 등 정치권의 전폭적인 지지는 '서편제'가 공전의 흥행기록을 세우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최근엔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등 한국영화의 흥행열풍이 계속되면서 정치인들이 영화 관람을 자청하고 나서는 편이다.

특히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등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에 정치인들은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쉬리'는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 등 정치권 인사들이 단체로 찾아가 관람했으며 천용택 당시 국방부 장관은 이 영화를 "느슨해질 수 있는 장병들의 대적관을 고취시키기 위해 적극 활용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당시 한나라당이 DJ 정부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주요한 논거로 활용하기도 했다.

남북 병사들간의 우정과 비극적 결말을 그린 '공동경비구역 JSA'는 서영훈 당시 민주당 대표, 강성구, 정범구, 임종석 의원 등이 개봉관을 찾았다.

최근 정치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영화는 우리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다룬 '공공의 적'. 민주노동당은 지난달 29일 "'공공의 적'은 권력형 부패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정치권에서 꼭 봐야 할 영화"라고 이례적으로 논평까지 발표했다.

***정동영 고문, '공공의 적' 관람**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정동영 고문은 지난 9일 저녁 부인 민혜경 씨, 경선캠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영화 '공공의 적'을 관람했다. 이 행사는 영화를 제작한 '시네마 서비스'에서 정 고문을 초청해 마련됐으며 이런 자리를 갖는 것은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는 처음이었다.

'시네마 서비스' 관계자는 "제작초기 네티즌 설문조사 결과 우리 사회의 공공의 적이 누구인가를 물었을 때 1위가 정치인으로 나타났다"면서 "정 고문은 정치를 바꾸는데 헌신해온 대표적인 정치인"이라며 초청 이유를 밝혔다. 정 고문 측도 이 영화에 대한 이미지나 평을 고려해 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영화를 관람한 뒤 정 고문은 근처 커피숍에서 영화배우 설경구씨 등 출연진과 환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우리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정 고문은 또 "공공의 적 2편에서 정치인을 주인공으로 삼겠다는 말이 나올까 두렵다"며 "헐리우드 영화에 맞서는 한국영화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 관람을 매개로 좀더 친근한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다가가려는 정치인들의 전략이 모두 성공했다고 보기 힘들다. 기자들을 대동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제작진을 불러 격려하는 등 극장에서까지 정치인으로 행세하는 모습에 젊은 관객들은 호감을 가질 리 없다.

***극장에선 '보통' 관객이 되라**

지난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영화 '친구'를 관람했다. 이 총재는 관람 전 곽정택 감독 및 장동건 유오성씨 등 출연진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으며 영화배우 안성기씨와는 사진기자들 앞에서 어깨동무를 해보이기도 했다. 이 총재는 관람 후 부근 한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제작 관계자들과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총재가 김진재 부총재, 신영균 의원, 김무성 비서실장, 양휘부 특보 등과 영화를 보러 온 것에 대해 시사평론가 진중권 씨는 "자기 가족이나 친구도 아니고 같은 당 의원들과 함께 온 것은 젊은층에게는 오히려 거부감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영화 관람은 가족이나 애인, 친구와 함께 한다는 기초적 상식 조차 무시한 지나친 '정치적 행동'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공공의 적' 관람이 끝난 뒤 정동영 고문과 함께 한 자리에서 영화배우 설경구씨도 "정치인들이 영화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매우 고맙지만 너무 많은 숫자의 경호원이나 보좌진들이 함께 해 관람 분위기를 해쳐 관객들에게 불편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노무현 고문은 지난해 말 딸과 함께 '와이키키 브라더즈'를 관람해 화제가 됐다. 노 고문은 공식일정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극장을 찾았는데 이를 본 몇몇 네티즌이 '딸과 함께 영화를 보러온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글을 올려 알려지게 됐다.

정동영 고문의 '공공의 적' 관람 이후 각 당 대선 후보들의 영화관람이 앞으로도 여러 차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친근함을 부각시키려 찾은 극장에서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극장을 찾은 젊은 관객들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발견하기에 앞서 국회의원이 몰고 온 보좌진, 기자들에게 졸지에 '찬밥' 취급받고 기분상하기도 한다. 오히려 정치인들이 극장에 가서 관람객들이 눈살 찌푸릴만한 일을 하나도 안 했다면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 하듯 극장에 가면 '보통' 사람들의 관람 방식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 친근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는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영화 한편 본다고 저절로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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