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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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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고전강독 <74>

제7강 맹자(孟子)-2

孟子見梁惠王 王立於沼上 顧鴻雁미鹿 曰賢者亦樂此乎
孟子對曰 賢者而後樂此 不賢者雖有此 不樂也
詩云 經始靈臺 經之營之 庶民攻之 不日成之
經始勿亟 庶民子來 王在靈囿 麀鹿攸伏
麀鹿濯濯 白鳥鶴鶴 王在靈沼 於인魚躍
文王以民力爲臺爲沼 而民歡樂之 謂其臺曰靈臺 謂其沼曰靈沼
樂其有麋鹿魚鼈 古之人與偕樂 故能樂也
湯誓曰 時日害喪 予及女偕亡 民欲與之偕亡
雖有臺池鳥獸 豈能獨樂哉 (梁惠王 上)

顧(고) : 돌아보다. 돌보다.
鴻雁미鹿(홍안미록) : 고니, 기러기, 큰사슴, 작은 사슴 등 온갖 새와 짐승.
經(경) : 度之, 재다. 營(영) : 表其位. 攻(공) : 作. 不日: 不多日 亟(극) : 서두르다.
육(囿) : 나라 동산. 우록유복(麀鹿攸伏) : 攸는 느긋이, 또는 主.述語간의 連詞.
於인(오인) : 오는 아!, 인은 가득하다.
時日害喪(시일할상) : 時는 是. 이것. 日은 임금을 가리킴. 害은 曷. 언제(何時). 喪은 죽다.
及女(급여) : 너와 함께

맹자는 문장이 길어서 일일이 해석하는 방식보다는 전체의 의미를 중심으로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를 자세하게 달지는 않았습니다만 별로 부족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인 의미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이 장은 1장에 이어지는 글로서 여민락장(與民樂章)으로 불립니다. 여민락(與民樂)은 백성들과 함께 즐긴다는 뜻입니다. 맹자의 민본(民本)사상이 표명되어 있는 장입니다.

물론 맹자의 민본사상은 진심<盡心> 하(下)에 분명하게 개진되고 있습니다. 잠시 그 내용을 읽어보지요.

“(한 국가에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은 백성이다. 그 다음이 사직(社稷)이며 임금이 가장 가벼운 존재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면 천자(天子)가 되고 천자의 마음에 들게 되면 제후(諸侯)가 되고 제후의 마음에 들게 되면 대부(大夫)가 되는 것이다.

제후가 (무도하여)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그를 몰아내고 현군(賢君)을 세운다. 그리고 좋은 제물(祭物)로 정해진 시기에 제사를 올렸는데도 한발(旱魃)이나 홍수의 재해가 발생한다면 사직단(社稷壇)과 담을 헐어버리고 다시 세운다.”

임금을 바꿀 수 있다는 맹자의 논리는 이를테면 민(民)에 의한 혁명의 논리입니다. 맹자 민본사상의 핵심입니다. 임금과 사직을 두는 목적이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여민락장은 그러한 민본정치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심(盡心)> 하(下)에 표명된 민본사상이 정치권력의 구조에 관한 것이라면 이 여민락 사상은 그러한 권력구조에 더하여 사회의 문화와 사람들의 정서에 있어서의 민본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민본사상의 보다 발전된 형태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맹자사상의 핵심을 의(義)라고 하였을 경우 그 의(義)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이 여민락(與民樂)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민락 장의 내용을 함께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맹자께서 양혜왕을 찾아뵈었을 때, 왕은 연못가에 서서 고니와 사슴 등 갖가지 새들과 짐승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현자(賢者)들도 이런 것들을 즐깁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였다.
”현자라야만 이런 것들을 즐길 수 있습니다. 현자가 아니면 비록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즐길 수 없습니다. 시경(詩經)에 다음과 같은 시가 있습니다.(<大雅> 靈臺 편)

‘영대를 지으려고
땅을 재고 푯말을 세우니
백성들이 달려와 열심히 일해서
얼마 되지 않아 완성되었네
왕께서 서두르지 말라고 하셨지만
백성들은 부모의 일처럼 더욱 열심이었네.
왕께서 동산을 거니시니
암사슴들은 살지고 윤이 나고
백조는 털이 희디희어라
왕께서 못 가에 이르시니
아! 연못에 가득한 물고기들 뛰어 오르네’

문왕(文王)은 백성들의 노역으로 대를 세우고 못을 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모두 그것을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했으며 그 대를 영대(靈臺), 그 못을 영소(靈沼)라 부르면서 그곳에 사슴과 물고기와 자라들이 살고 있음을 즐거워했습니다. 이처럼 옛사람들은 그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 했기 때문에 제대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夏)나라의 폭군 걸왕(桀王)의 경우에는 이와 반대입니다.)
‘서경(書經)’ 탕서(湯書) 편에는 (백성들이 걸왕을 저주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저놈의 해 언제나 없어지려나
내 차라리 저놈의 해와 함께 죽어버렸으면.’

만약 백성들이 그와 함께 죽어 없어지기를 바랄 지경이라면 아무리 훌륭한 대와 못과 아름다운 새와 짐승들이 있다고 한들, 어찌 혼자서 그것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맹자의 유명한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사상입니다. 주자(朱子)가 주(註)를 달아서 강조하고 있듯이 ‘현자라야 즐길 수 있다(賢者而後樂此)’고 한 대목이 이 장의 핵심입니다.

현자는 여민동락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즐거움이란 여럿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이 점이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즐거움(樂)과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행복의 조건 즉 낙(樂)의 조건은 기본적으로 독락(獨樂)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하여 무심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날의 일반적 정서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과 닮는 것을 피하려고 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성을 추구하려고 하지요.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개인적 정서의 만족을 낙(樂)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共感)이 얼마나 한 개인을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하여는 무지하기 짝이 없지요. 어떤 공감의 절정에 함께 도달하는 감동(感動)은 못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동류(同類)라는 편안함이나 서로 비슷함에서 오는 안정감에 대하여도 이해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유행(流行)이 바로 그러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공감이라기보다는 다른 정서입니다. 이를테면 소외의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문제를 여기서 길게 다루기 어렵습니다. 어쨌든 오늘날 낙(樂)의 보편적 형식은 독락(獨樂)입니다. 여민락(與民樂)과 같이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눌 때의 편안함이나 안정감은 결코 즐거운 것이 못되지요.

그것이 즐거움 즉 낙(樂)이 되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것이지요. 평상심(平常心)이나 낮은 목소리가 주목받을 수 없는 것 역시 오늘 우리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맹자는 ‘서경(書經)’ 탕서 편을 인용하여 걸왕(桀王)을 독락(獨樂)의 예로 들고 있습니다.

걸왕은 일찍이 “내가 천하를 얻은 것은 하늘의 해가 있는 것과 같으니 저 해가 없어져야 내가 망한다”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그 말을 인용하여 저 놈의 해와 함께 죽어버렸으면 하고 노래한 것이지요.

굳이 임금과 함께 죽자고 하는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날의 사회적 정서와 매우 닮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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