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정도는 아니고 한 3억 썼나? 다른 PR비까지 합해서 한 5억 썼겠지.”(A기획사 관계자)
MBC 시사고발프로그램 「시사매거진 2580」이 지난 27일 가요계의 음성적인 홍보비 관행을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시사매거진 2580」은 ‘인기와 PR비’라는 코너를 통해 매니저들이 일부 방송사PD와 신문기자들에게 1억5천만원에서 3억원까지 로비 자금을 건넨다고 고발했다.
「시사매거진..」측은 “공들여 음반을 만들고도 PR비가 없어 음악의 꿈을 접는다는 가수들도 있다”며 “PR비 마련을 위해 비자금을 조성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음반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이 문제를 제기한 배경을 밝혔다.
방송 내용에 대해 당사자로 지목된 일선 방송사 PD와 스포츠 신문 기자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해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대중문화 개혁을 위한 연대모임은 28일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PR비 3억원**
최근 검찰은 한 가요 프로그램 PD에게 방송에 출연시켜 달라며 1천8백만원 어치의 향응과 해외여행 등을 제공한 음반 기획사를 적발했다. 금품을 받았던 가요프로그램 PD는 실제 음반 PR기간 4개월 동안 모두 6차례 이 가수를 출연시켰다. 당시 이 가수는 음반판매량이 3만여장에 불과한 무명가수였다.
다른 두 곳의 공중파 채널 가요 프로의 사정도 마찬가지. 한 방송사의 경우 4개월 남짓한 PR 기간동안 8번을 출연시켰다. 또 다른 방송사는 가요 프로에는 4차례 출연하는데 그쳤지만 대신 각종 오락 프로에 무려 11차례나 집중적으로 출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PR비가 관행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대중문화개혁포럼 탁현민씨는 “방송횟수가 각종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공중파 방송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음반 판매량과 방송횟수를 토대로 순위를 매기고 있다. 그러나 음반 판매는 단일화된 전산망 시스템이 없고 불법 유통되는 음반이 많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 힘들다.
또 시청자들이 방송에 대해 일정한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방송 출연을 많이 하게 되면 음반 판매량도 증가한다. 그만큼 방송 출연은 ‘뜨기’ 위해 더욱 중요한 관건이다.
물론 돈을 받지 않는 PD들도 많지만 일부는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PD들도 있다고 「시사매거진..」은 보도했다.
“우리가 방송을 해달라고 하고 있는데, (해당 PD)가 ‘아휴 죽겠다. 이번달 카드 값도 많이 나오고..’ 이러면 따로 만나서 PR비를 줘요.”(A 기획사 관계자)
***스포츠지에서 라디오 거쳐 TV로**
「시사매거진..」은 음반 기획사나 매니저가 신곡이 나왔을 때 공중파 방송만을 대상으로 PR비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최종 목적지인 TV에 가기위해 신문, 라디오, 케이블 음악방송에 일차적으로 PR비가 뿌려진다.
“제일 먼저 가는 곳이 라디오 프로그램 PD입니다. 일단 2-3주 라디오 쪽에 핵심적으로 공략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라디오 횟수가 꽉 차고 그렇게 노출된 음악에 대해 청취자에 대한 반응이 올라올 거 아닙니까? 그걸 가지고 TV에 찾아가는 거죠...”(B 기획사 사장)
특히 대중음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케이블 음악 방송은 PR비 경쟁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케이블 음악방송에서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면서 광고협찬비 등의 명목으로 내놓고 선곡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보다는 방송에 많이 나와야지”**
이러한 PR비 관행으로 실력 있지만 돈이 없어 사장되는 가수들이 많다는 것이 관련업계 종사자들의 지적이다. 이미 가요계 내에는 “노래 좋으면 뭐하냐. 방송에 많이 나와야지”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는 것.
올해로 음악생활 11년째인 가수 시후씨는 곧 발매될 5집 앨범의 홍보를 위해 지난 연말부터 직접 거리로 나섰다. 그는 새 앨범을 들고 방송사를 찾아다닐 여력이 없어서 방송 출연을 아예 포기했다.
그도 2년 전 4집 앨범을 냈을 때는 PR비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라디오 6천만원, TV 6천만원, 케이블 방송과 스포츠 신문 3천만원 등 최소 1억5천만원의 PR비도 없거니와 더 이상 PR비 관행에 타협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탁현민씨는 “일부 독점 기획사들이 거액의 PR비를 제공해 출연.보도를 독점해 버린다면 대중음악의 내실 있는 발전은 결코 이뤄질 수 없으며, 방송과 언론도 자신의 사회적 책임감을 다하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중문화 개혁을 위한 연대모임은 “그 동안 접수한 제보들을 비춰볼 때 「시사매거진..」의 보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2월초 기획사와 방송사 PD들 사이에 거래되는 음성적인 홍보비에 대한 실상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혔다.
***돈 받았다는 사람은 없어**
당초 대중문화 개혁을 위한 연대모임 등 관련 시민단체는 PR비 관행에 대한 기자회견을 30일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보받은 내용의 사실 확인에 시간이 필요해 기자회견을 연기했다.
PR비를 줬다는 사람은 있으나 받았다는 사람은 없다. 가수나 매니저들도 잘못된 관행의 피해자들이지만 이같은 관행을 만든 데에 일단의 책임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 스스로 PR비를 준 것을 인정하면 뇌물을 준 혐의로 처벌받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 선뜻 나서겠다는 사람도 드물다.
이런 사정 때문에‘인기와 PR비’는 지난해 12월 9일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MBC 측은 방영을 한 차례 연기했다. 법적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SBS, KBS 예능담당 PD들은 방송이 나간뒤 PD들의 의견을 들어본 뒤 명예훼손에 따른 법적 절차를 밟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사매거진..」은 지난해 6월 '연예인 대 매니저, 한일비교' 편을 통해 연예기획사와 가수들의 불공정계약 의혹을 제기해 연예제작자협회와 소속 연예인들이 MBC 출연거부를 선언해 한동안 방송 파행이 빚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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