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이하 ODA) 자금이 오가는 공여국(원조를 제공해 도움을 주는 국가)과 수원국(원조를 제공받는 국가) 사이에서는 안 될 말이다. 국가 재정의 많은 부분을 외국의 ODA에 의존하는 수원국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ODA란 결국 무계획성 사업에 낭비되기 쉬운 눈먼 돈일 뿐이다. 반대로, 약속된 ODA가 제때 제공되지 않는다면 해당 수원국은 개발은커녕 기본적인 빈곤퇴치 사업조차도 진행할 수 없다.
한국은 원조 받던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나라이다. 꾸준히 ODA 규모를 늘려 2012년에는 15억 5000만 달러의 원조를 제공했는데, 경제규모 대비 ODA 수준을 나타내는 국민총소득(GNI) 대비 ODA 비율은 0.14%로 OECD 회원국 중 여전히 하위권이다. 공여국으로 전환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규모야 아직 크지 않다지만 적어도 스스로 약정한 만큼의 원조를 실제 제공했더라면 한국의 ODA 규모는 훨씬 더 커졌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10년, 그 해 제공하기로 약정한 양자 간 원조 18억 1000만 달러 중 고작 9억 3300만 달러를 집행하는 데 그쳤다. 절반밖에 안 되는 수치이다. 고위공직자의 방문 시 빈번히 이뤄지는 양해각서(MOU)나 정치적 약속 또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검토 없이 추진되는 개발 사업들이 종국에 사업타당성이 부족하거나 준비미비로 연기 또는 취소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약속만을 믿고 개발계획을 세웠던 나라들은 과연 나라살림을 체계적으로 잘 할 수 있었을까?
원조 정보가 수원국에게 왜 중요할까?
공여국의 ODA 집행 계획과 실제 집행내역 정보를 세세히 공개하는 것은 수원국 정부가 개발계획을 세우고 그 결과를 예측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ODA 집행 계획을 공개함으로써 공여국 스스로는 해당 계획에 따라 원조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게 될 것이고, 수원국은 원조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수원국들은 공여국의 원조제공 관련 정보, 특히 해당 원조 자원을 효과적으로 계획하고 관리하는 데 꼭 필요한 정보들에 접근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들은 매해 ODA 통계를 OECD에 보고하게 돼있는데, 이렇게 취합된 자료들은 공여국 관점에서 정리돼있어 수원국들에게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기본적인 원조 정보라도 수원국들이 필요로 하는 형태로 재가공돼야만 정책결정에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수원국 중 하나인 온두라스 관리의 말을 들어보자.
"국제원조투명성이니셔티브(International Aid Transparency Initiative; IATI)가 도입되기 이전에, 우리는 원조 정보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툴(tool)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공여국들을 대신해 시의적절하고 구체적이며 비교 가능한 원조 정보를 얻기란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우리 정부는 원조자원을 국가개발에 도움이 되도록 분배하는 데 있어서 적절한 정보에 기반한 결정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 온두라스 (IATI 2013 Annual Report에서 발췌)
많게는 수십 개 국가 및 기관들의 원조를 받는 수원국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원조 정보를 다시 정리해야 한다면 차라리 정보 활용 자체를 포기하는 게 낫다. 실제로 이런 이유로 많은 수원국들이 원조 정보에 기반한 정책수립을 어려워한다. 그러므로 원조정보 공개는 단순 공개를 넘어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편의에 맞게 이해하기 쉽게 적절히 정리된 형태로 공개돼야 한다.
▲ 지난 2011년 10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유엔사회개발연구소 주최로 열린 제5회 ODA(공적개발원조) 서울국제회의 ⓒ연합뉴스 |
원조 감시의 시작, 이해하기 쉽고 접근하기 쉬운 정보로부터
이뿐만이 아니다. 수원국 및 공여국의 시민들 역시 ODA 사용에 대해 자국 정부를 추궁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부족한 실정이다.
흔히, 정부가 추진하는 ODA 프로젝트들의 예산과 집행내역 등 구체적 정보는 공개되지 않는다. 뭉뚱그려 전체 수치 또는 최종 결과만 제한적으로 발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좀 더 자세한 자료를 공개한다 해도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 많은 숫자들이 현실세계에서 의미하는 바를 감지해 내기 어렵다. 이로써는 납세자인 시민들이 정부의 활동을 감시하는 데 판단을 도와줄 만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못한다. 또한 '업무의 공정성 침해'라는 이유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업이 개입된 ODA 관련 비리사건도 사기업의 정보보호를 명목으로 정보공개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ODA가 집행되는 수원국 현지 사정이 공여국 시민사회에까지 전달되는 데에는 제약이 많고 보통 사후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원조 정보공개 없이는 부적절한 ODA 집행을 사전에 막기 위한 감시활동은 이뤄지기 어렵다.
이와 같이 공여국들의 원조 정보를 보다 투명하고, 접근하기 쉽게,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공개하는 것은 수원국 정부의 원조예측성을 높이는 한편, 수원국과 공여국의 시민들이 자국의 원조 실태를 감시하는 과정에서 흔히 경험하는 원조정보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럼에도 흔히 공여국들은 외교 업무상 기밀 등의 이유를 들어 정보공개를 꺼려하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원조정보 공개의 기준(standard) 삼아 만든 것이 바로 국제원조투명성이니셔티브(IATI)이다.
원조 투명성 위해 한국 정부의 IATI 가입이 필요하다
IATI는 2008년 아크라(Accra)에서 국제사회가 결의한 원조투명성(Aid Transparency)에 대한 약속사항들을 공여국들이 보다 잘 지킬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하여 고안된 체계이다. 공여국 중심의 OECD 원조 정보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해 처음 시작되어 지금은 15개 공여국을 포함해 유엔기구, 국제개발은행, 국제 NGO 등 약 150개 기관이 이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공개된 바로는 한국은 정부 부처 내 이견으로 IATI 가입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한국 정부의 ODA 정보 공개 수준이 훌륭해서는 아니다. 원조투명성에 관한 국제적 캠페인 조직인 'Publish What You Fund'(본부 영국 소재)가 지난해 발표한 전 세계 72개 원조기관을 대상으로 한 2012년 원조투명성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유‧무상 원조를 시행하는 한국수출입은행(대외경제협력기금, EDCF)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각각 37위와 41위를 차지하며 대체적으로 평균보다 낮은 투명성 수치를 기록했다. 주로 원조 시행기관의 투명성 부분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것이 바로 시민사회가 한국의 IATI 가입을 요구하는 이유이다.
2008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 이후 한국 정부는 부산세계개발원조총회를 개최하는 등 보다 효과적인 원조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왔다. 그러나 원조 투명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만큼은 아직 역부족이다.
내가 낸 세금 3만 4900원 투명하게 볼 수 있어야
원조 투명성은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원조자금을 중복 집행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핵심 가치이다. 그리고 이는 정보의 원활한 공유가 가능할 때만이 실현 가능하다. 특히 투명한 정보의 열람은 납세자의 권리로 재차 강조되어도 부족하지 않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1인이 정부의 ODA에 기여한 금액은 3만 4900원에 달한다. 과연 내가 낸 세금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그 행방을 투명하게 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수원국에 전해지는 ODA의 가치를 높이고 조금이라도 더 수원국 주민들에게 혜택을 돌아가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것이 지난 7월 9일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원조투명성 100일 캠페인 '34,900원 행방찾기'를 시작한 이유이다. (☞ 관련 사이트 보기: 원조투명성 캠페인 '34,900원 행방찾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