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건물주들의 임대료 인상 요구로 시민단체들이 이사비용과 이전할 사무실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가뜩이나 재정난에 허덕이는 단체들이 추운 날씨에 거리로 나앉을 지도 모를 위기에 봉착했다.
경실련은 지난 10월 29일 건물주로부터 “11월말까지 사무실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경실련이 입주한 정동빌딩 별관이 인근에 들어설 캐나다 대사관 신축공사의 현장 사무실로 결정됐기 때문. 98년 2월부터 건물주의 배려로 무상으로 사무실을 사용했던 경실련으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경실련 김용환 기획조정실장은 “고육책으로 일일호프와 송년의 밤 행사를 계획하고 있지만 3억원 이상의 이사비용을 마련하기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녹색연합, 반부패국민연대 등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연합회관에 입주해 있는 시민단체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오는 12월말 임대 계약기간 만료를 앞두고 관리처가 입주단체들에게 임대료를 한달 평균 80% 정도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비영리단체들에게는 임대료를 싸게 받은 기독교연합회관은 IMF 직후 시민단체들이 대거 몰려와 시민운동의 신흥 ‘메카’로 불렸다.
열린사회시민연합 유종순 대표는 “3년전 입주했을 때 한달에 80만원이었던 임대료가 지금은 240만원”이라며 “관리처에서 시민단체들에게도 일반 사업체와 동일한 임대료를 받기로 방침을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이려고 회의실, 강의실 등을 반부패국민연대 등 10개 단체와 공동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함께 이사할 건물을 찾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편 민주노총도 올해 받기로 돼 있던 국고보조금 20억원을 한 푼도 못 받고 날릴 위기에 놓였다. 민주노총은 어려운 재정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올해 책정된 정부의 임대료 지원금 20억원을 지원받기로 결정했지만 까다로운 사용조건 때문에 받기 어렵게 됐다.
정부는 민주노총이 지원금 20억원을 사용해 임대차계약을 맺을 때 반드시 근저당 1순위 조건으로 계약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민주노총이 현재 입주해 있는 영등포구 영등포 2가 건물은 이미 1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어 재계약이 불가능하고, 결국 근저당 설정이 안돼 있거나 새로 지은 건물에 들어가야 하지만 이런 조건을 갖춘 건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
손낙구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교통이나 행사 편의성 등을 고려해 여의도나 마포 일대에서 조건에 맞는 건물을 물색하고 있으나 쉽지 않다”며 “자칫 계약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진통 끝에 받기로 한 보조금을 날린 판”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이 사무실 임대료 인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거의 매년 되풀이되는 문제. 그만큼 시민단체들의 재정상황은 열악하다.
시민단체들은 기부금품모집법에 의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활동비를 모금할 수 없기 때문에 회원들의 회비에 의존해야 하지만 회비만으로는 단체를 유지해 나가는 것조차 버겁다. 가장 높은 재정자립도를 자랑하는 참여연대는 90% 수준이지만 대부분의 시민단체는 50% 에도 못 미친다.
기업이나 개인 후원금들도 일부 대규모 단체로 몰려 지역단체 등 작은 단체들의 재정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시민단체들은 재정 확보를 위해 정부나 기업 등 외부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유종순 대표는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활동가들에게 있겠지만 시민들의 참여가 보다 활성화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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