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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폐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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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폐지하자"

여성계 일부, 과거와 다른 입장

헌법재판소의 간통죄 합헌 결정을 놓고 일부 여성계가 '간통죄 유지'를 주장했던 과거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 주목을 끈다. 이같은 변화는 간통죄에 대한 여성계의 시각도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5일 헌법재판소는 “선량한 성도덕과 일부일처주의 혼인제도의 유지 등 사회적 해악의 사전예방을 위하여 배우자 있는 자의 간통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간통죄 합헌 결정을 내리자 일부 여성계에서 조심스럽게 ‘유감’을 표명했다. 지난 90년과 93년 헌법재판소가 두 차례에 걸쳐 간통죄 합헌 결정을 내렸을 때, 비교적 단일한 목소리로 찬성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그동안 여성단체들은 남편의 외도로 가정이 깨질 경우, 경제적 약자인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통죄 존속을 한목소리로 찬성해 왔다.

여성계 일부는 △성적 자기 결정권의 문제에 국가 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부당하고 △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외도 현장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반인권적이며 △여성을 보호하는 기능보다 오히려 억압하는 측면이 더 크다는 점 등을 들어 간통죄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여성보호 기능 없다”**

한국여성민우회의 가족과 성상담소 권수현 부장은 “간통죄가 과연 여성권익을 보호해 왔는지 의심스럽다”며 간통제 폐지를 주장했다. 권부장은 “많은 여성들이 남편의 외도로 고통 받지만 실제 간통죄로 고소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고소해도 법적 증명이 힘들어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효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권부장은 “이런 상황에서 간통죄는 오히려 아내의 외도를 단죄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권 부장은 “일선 경찰관에 따르면 간통죄로 처벌받는 것은 여성이 더 많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황오금희 편집장도 “간통죄는 1953년10월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유부녀에게만 적용되던 법이었다”며 “간통죄는 본래 부정한 여성을 단죄하기 위한 것이지 여성을 보호하는 법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같이 일부 여성계가 간통죄 폐지를 주장하게 된 것은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간통을 가정을 깨는 부도덕한 행위로만 바라보던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황오 편집장은 “간통은 강제된 성행위가 아니라 합의에 의한 것”이라며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의 문제에 국가 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황오 편집장은 “간통죄 무서워 간통 못하는 사람은 못 봤다”며 “간통죄가 보호하려는 가치는 법적인 부부사이의 성실성인데 이는 법으로 지켜질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황오 편집장은 또 “간통죄는 남녀가 옷을 벗고 누워있는 현장을 잡지 못하는 한 성립되지 못한다"라며 "부부란 이름으로 살던 사람들이 간통의 ‘현장’을 잡기 위해 남편을, 부인을 미행해야 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며 반인권적"이라고 주장했다.

여성들의 외도가 늘어난 것도 간통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배우자의 부정행위로 제기된 이혼소송 중 39%가 ‘아내의 외도’다. 황오 편집장은 “예전에 비해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 여성들은 애정과 신뢰가 없는 결혼 관계를 유지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간통죄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간통죄가 아닌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들의 의식도 많이 변해서 이제 무조건 참고 살진 않는다는 것. 배우자의 간통이건 여성 자신의 간통이건 이혼해서 자립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이들에게 경제적, 심리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법을 만드는 것이 더 절실하다는 것이다.

권수현 부장은 “이혼 후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부부재산 공동소유제, 이혼시 재산 분할청구에 있어 가사노동 가치의 적정 산정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통제 폐지 시기상조” 의견도**

그러나 아직 여성계에는 ‘간통제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한국 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상담위원은 “재판 이혼의 1순위는 아직도 배우자의 외도이고 여전히 남성들의 외도가 여성들의 외도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며 “배우자의 외도로 고통 받는 여성들이나 가족들에게 아직은 간통죄가 안전망이 된다”고 말했다.

조위원은 “간통죄는 헌법이 규정한 인간의 존엄성과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이라며 “이 법이 세계적으로 폐지 추세라지만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도덕감정, 법감정을 고려했을 때 아직 유효하다”고 말했다.

또 조위원은 “많은 이들이 간통죄의 실효성에 대해 의심하지만 일선에서 가정생활에 대한 상담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외도를 막는 예방효과는 분명히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간통죄 합헌 결정을 내렸으나 폐지 여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혀 간통죄 존폐논란은 앞으로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세계적으로 간통죄가 폐지 추세에 있고 △성 문제에 법이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간통죄가 협박 또는 위자료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고 △간통죄의 억지 효과나 여성보호 효과도 의문이라는 주장을 입법자들이 감안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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