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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종욱 WHO총장 부인 레이코 여사 "아직도 눈에 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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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종욱 WHO총장 부인 레이코 여사 "아직도 눈에 선해"

파라다이스상 수상차 방한…상금 전액 페루 빈민구제에 사용

"환자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도와주는 젊고 잘생긴 의대생이었던 남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상을 받으러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국내 굴지의 호텔 운영기업인 파라다이스 그룹(회장 전필립)이 수여하는 '2006 파라다이스상 특별공로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고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대신 상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은 부인 가부라키 레이코(61) 여사는 13일 서울 장충동 소피텔 앰버서더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갑작스레 타계한 남편 생각에 목이 메이는지 말을 잘 잇지 못했다.
  
  레이코 여사에게 이종욱 박사의 존재는 사적으로는 남편, 공적으로는 국제기구의 수장이기에 앞서 봉사의 길을 나란히 걸어 온 영혼의 반쪽이자 인생의 버팀목이었다.
  
  일본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천주교 신자였던 레이코 여사는 미사를 보러 성당에 갔다가 한센병 환자가 모여 사는 경기도 안양 나자로 마을에 일꾼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1971년 대한해협을 건너왔다.
  
  환자를 성심성의껏 돌보기 위해 한국말도 열심히 배우며 헌신의 나날을 보내던 레이코 여사는 의료봉사를 하러온 의대생 이종욱을 만났다.
  
  아버지로부터 '없는 자식인 셈 치겠다'는 선고를 듣고 홀로 타국으로 와서 밤낮없이 봉사에 매달린 바람에 잔병치레가 많았던 그에게 "아픈 곳을 내가 치료해주겠다"며 위로해주던 이 박사는 수녀가 되려던 마음마저 바꾸게 했다.
  
  결혼 이후에 남태평양 등 의료소외지역과 국제보건당국을 무대로 활동하던 남편은 자신을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었고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에 깊은 감동을 받기 일쑤였다고 레이코 여사는 회고했다.
  
  이 박사는 성탄절이 돌아오면 WHO 직원들에게 소액을 받고 국가원수 등에게서 받은 귀한 선물을 나눠준 뒤 수익금을 러시아에 있는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고아시설에 전액 보내곤 했다.
  
  이 박사는 WHO 사무총장 재임시 여러 건의 수상 제의가 들어왔지만 "상을 주려면 퇴임한 뒤에 재임 중의 잘잘못을 가려 결정하라"며 한사코 거부했다.
  
  2004년에 작고한 이 박사의 형 역시 딸이 WHO와 깊은 관련이 있는 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입사했는데도 행여나 큰 일을 하고 있는 동생에게 누를 끼칠까 죽을 때까지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박사 곁을 보필하던 레이코 여사는 5년 전부터 자신이 꿈꿔 왔던 봉사하는 삶을 계속하기 위해 페루로 건너가 결핵인 지원단체 '소시오스 앤 살루(Socios En Salud)'에 들어갔다.
  
  처음엔 영어를 가르칠 생각이었지만 먹고 살기도 고달픈 이들에게 영어는 사치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는 대신 빈민여성에게 뜨개질과 자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연간 수입이 10달러에 지나지 않았던 이들이 뜨개질 제품을 미국, 일본으로 수출해 지금은 700달러를 벌고 있다.
  
  파라다이스 그룹이 이 박사에게 수여하는 상금 4000만 원 전액도 이 단체를 통해 페루의 빈민 구제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이 박사는 제네바에서도 서울시 동작구청장 직인이 찍힌 주민등록증을 항상 몸에 지니고 두부김치, 파전, 순두부를 즐겨 먹을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레이코 여사는 나자로 마을에서 배운 음식 솜씨로 불고기, 나물 등을 만들어 WHO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부부가 살던 제네바 외곽 니용의 작은 전세 아파트로 초대해 대접하는 일을 즐겼다.
  
  한일(韓日) 부부로서 축구경기 한일전이 벌어질 때면 집안에 약간의 긴장감이 돌기도 했지만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일본은 적(敵)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뜻을 모으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나라"라고 배운 이 사무총장은 문화적으로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레이코 여사는 "최근 세(貰) 들어 살던 제네바 집을 팔았지만 나에게는 남편이 집이었기 때문에 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5월이 내가 집을 잃은 때"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남편은 내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항상 아들 충호(28)에게 '힘들게 산 사람이니 엄마를 슬프게 하지 말라'고 누누이 강조할 정도로 나를 아껴줬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과 함께 WHO에서 일했던 '데스몬드 에브리'라는 영국인이 그를 기리는 책을 쓰고 있는데 책이 완성되면 한국에서도 발간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레이코 여사는 14일 오후 소피텔 앰버서더 호텔에서 서양화가 김홍주 교수, 푸르메재단 김성수 이사장과 함께 파라다이스상을 받은 뒤 15일 정오께 대전 국립현충원에 있는 이종욱 사무총장의 묘소를 참배하고 16일 페루로 출국할 예정이다.
  
  이 상은 파라다이스 그룹 창업주인 고 전락원 회장의 뜻에 따라 문화예술과 사회복지부문 공로자에게 포상하기 위해 1990년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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