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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자정, 깨어 있길 정말 잘했다!

[TV PLAY] <연우의 여름>의 따뜻한 위로

한국방송(KBS) 드라마 스페셜 <연우의 여름>의 주인공 연우(한예리)는 우연히 만난 동창 지완(임세미) 대신 소개팅을 나간다. 차 한 잔만 마시고 올 생각이었지만 막상 만난 윤환(한주완)이 자꾸 생각난다. 연우 대신 지완이라는 이름으로, 청소부 대신 사내 아나운서로 자신을 속이고 몇 번을 만난다. 앞 뒤 재지 않고 윤환과 계속 연락하는 연우를 향해 지완이 말한다.

"네 나이에 책임져."

나이에 책임진다는 것은 어떤 걸까. 지완은 사내 아나운서로 일한다.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비싼 화장품을 쓴다. 월세 160만 원은 부자 아빠가 대신 내준다. 연우는 아픈 엄마 대신 일주일 동안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원래는 친구들과 기타치고 노래 만드는 뮤지션이다. 과연 두 사람은 나이에 책임지는 인생을 사는 걸까. 연우의 말처럼 "부모한테 손 안 벌리고 회사 다니면서 차 몰고 비싼 화장품을 사"면 그것이 나이에 어울리는 삶일까.

▲ KBS 드라마 스페셜 <연우의 여름>. ⓒKBS

연우가 사는 동네의 따뜻한 느낌을 비추며 시작한 <연우의 여름>은 같은 건물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는 두 사람을 통해 이 시대 청춘들의 전혀 따뜻하지 않은 고민을 담아낸다. 지완은 늘 정장 차림에 하이힐을 신고 출근한다. 의자에 앉아 원고를 읽으며 방송을 준비한다. 남자 동료들이 모두 선망하는 대상이다. 연우는 늘 축 늘어진 편한 옷에 낡은 운동화를 신는다. "우리는 말이다. 항상 서서 움직여야 해"라는 주임의 잔소리를 들으며 건물 6층을 청소한다.

두 사람 모두 겉으로는 별 탈 없이 잘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잘 버티는 것에 가깝다.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지완도, 각박한 세상에서 자유로워 보이는 연우도 각자 마음속에는 불안감, 자격지심이 숨어있다. <연우의 여름>은 소개팅이라는 단발성 사건을 통해 연우와 지완의 속내를 끄집어낸다. 말끔하게 양복을 입은 '증권맨'과 소개팅을 하게 된 연우는 시간이 갈수록 움츠러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지완이 연우에게 소개팅을 떠안긴 이유는 직장 상사인 유부남을 진심으로 짝사랑하기 때문이다. "불륜 아니냐"는 연우의 말에 지완이 발끈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나서야 연우와 지완은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는다. 때로는 숨기고 싶고 도망치고 싶지만 결국 스스로 맞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나를 외면하지 않아야 편해진다. 발에 맞지 않는 하이힐을 벗고 땅바닥에 맨발을 올려놓던 연우의 미소처럼 말이다. <연우의 여름>이 갑자기 바빠진 연우의 여름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도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어색하게 파스타를 먹는 대신 "복잡하지도 않고 바람도 좋은" 한강 둔치에 맥주를 마시며 소개팅을 한 연우처럼, <연우의 여름>도 틀에 얽매이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청춘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강요하지 않는다. 말없이 다독여줄 뿐이다. 난생 처음 해본 청소일에 윤환과의 일까지 겹친 연우는 엄마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린다. 엄마는 더 이상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고 "연우야…연우야…다 지나가. 괜찮아 우리 딸"이라며 안아준다. 취업을 못할까 걱정하고, 취업 후에도 내 일이 맞는지 고민하고, 나보다 더 잘 나가는 친구와 자꾸 비교하게 되는 청춘들이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 KBS 드라마 스페셜 <연우의 여름>. ⓒKBS

<연우의 여름>은 음악과 한예리가 없었다면 완성될 수 없는 드라마다. 청소복 차림으로 윤환과 마주친 연우는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진 듯한 표정으로 도망친다. 그 찰나의 순간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표정에 담아낸 한예리는 청춘 그 자체다.

연우는 자신에게 편해진 뒤에야 비로소 가사를 완성했다. 꿈을 꾸되 꾸미지 않아야 좋은 가사가 나오는 것처럼, 마음껏 꿈꾸되 꾸미지 않는 인생이 좋은 삶이다. <연우의 여름> 마지막 장면, 연우가 노래하는 맥주집의 문이 열리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과연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누구였을까. 윤환이었을까. 아무렴 어떤가. 연우가 편해졌으면 그걸로 됐다. 일주일의 정중앙인 수요일 자정, 깨어 있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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