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최근 중국은 동해(이번에 다시 확인한 것이지만 중국은 우리의 '동해'를 '일본해'로 부른다. 이 바다의 이름을 둘러싼 한일 다툼에 현재 중국은 일본 편인 것이다)로 빠지는 출구를 찾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두만강 하구에서 동해로 나가는 길목이 방천이라면 권하는 두만강 건너 동해로 가는 육로 최단(最短) 통로의 목이다.
북중 교역의 중심축으로 급히 부상하고 있는 최근 사정을 반영하는 듯 훈춘 시정부는 새 다리를 건설할 계획이거니와, 방천과 권하, 동해안 출구로 가는 두 포인트를 갖춘 훈춘이 창지투(창춘(長春)-지린(吉林)-투먼(圖們)) 개발의 창구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 중국 훈춘과 북한 나진·선봉 특구를 연결하는 두만강 권하 다리. ⓒ최원식 |
버스에서 내려 권하 다리를 비로소 직접 견문하게 되는 설렘으로 조망대로 나아가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한국에서 눈에 익은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안내자에게 물으매 이런 철조망이 최근, 압록강 하류에서 두만강 상류까지 거의 촘촘히 들어섰다는 것이다.
북중 국경을 지키는 중국군이 지방군에서 중앙군으로 교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게 몇 년 전인데, 이번 철조망 조치는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물론 북한 쪽에는 철조망이 없다. 이 비대칭성은 북중 국경이 주로 중국 쪽에서 점점 엄중해지는 추세를 웅변하는 것이니, 중국이 북한 내지 한반도의 현상 변경 가능성을 보다 염두에 두고 있다는 복합적 증표일지도 모른다.
도문에 처음 왔을 때가 상기도 생생하다. 두만강 건너 북한의 남양을 바라보는 감회야 말할 나위 없지만, 나는 비로소 국경다운 국경을 목격한다는 느낌에 한편 부풀던 것이다. 남한 국민은 나라 안에서는 국경을 본 적이 없다. 삼면이 바다로, 그리고 북쪽은 국경 아닌 국경인 휴전선으로 막혔는데, 민주화 이후 좀 완화되었어도, 한국은 여전히 사면이 철조망과 철책선으로 둘러싸인 외로운 섬에 진배없다. 그러니 국경이 그 양쪽을 가르는 경계라기보다는 양안을 잇는 접촉 권역이란 점을 깨닫게 해준 북중 국경의 평화는 국경에 대한 나의 관념을 괄목케 한 원점으로 되었던 터다.
그 뒤 방문한 방천은 더 인상적이었다. 북한 중국 러시아, 세 나라 국경이 오순도순 모인 방천 역시 지극히 평화로웠다. 물론 중러 국경에는 왕년의 갈등을 상징하듯(중소 대립이 절정으로 치닫던 1969년 3월 두 나라는 국경에서 무력 충돌한 바 있다)울창한 숲속으로 은신한 철책선이 가로지르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지극히 평온했다. 정말로 강물 같은 평화가 유유하던 것이다. 때마침 러시아 쪽에서 북한 쪽으로 서서히 움직여 스르르 국경을 넘는 기차가 자아내는 풍정이란 얼마나 매혹적이던지. 이번에 다시 방문한 방천도 예전만 못했다. 상업화와 국가화가 손잡고 행진 중이었다.
귀국한 뒤 중국이 한국 전쟁을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이란 이름 대신 '조선전쟁(Korean War)'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주목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연변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북에서 핵실험했을 때 연변이 지진난 듯 흔들린 곳이 적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뭐라 해도 친북적인 연변 동포들이 북핵에 대한 반대를 뚜렷이 세운다는 느낌이다.
소련이 중국의 핵기술 이전을 거절한 것이 중소 대립의 시작이라는 분석을 참고컨대 북핵도 유사한 후과(後果)를 낼지도 모르거니와, 최근 내한한 중국 지식인들이 중국에 나쁜 영향을 미칠 한반도의 분열과 혼란보다는 이 지역에 근본적 평화를 가져올 한반도 통일을 지지한다고 한 발언도 외교 수사만은 아닌 듯하다.
확실히 북중 관계가 보통 국가 관계로 이동 중임을 짐작하겠다. 이런 진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특수보다 보통이 좋다. 사실 동북아의 문제는 한국 북한 중국 일본, 이 네 나라의 관계들이 너무나 특수해서, 또는 특수하게 여겨서, 발생하는 측면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중 관계가 변모 중이란 점을 아전인수(我田引水)로 과장하여 북을 밀어붙이는 노릇 또한 한심한 일이다. 아무리 북중 관계가 예전 같지 않아진다 하더라도 중국이 반북으로 돌아서지 않을 것이란 예측은 대세다.
북중 국경의 철조망이 지니는 복합적 정치성을 깊이 음미할진대, 이 미묘한 때의 이 미묘한 국면을 활용하여 남북 관계의 악순환을 끊을 절호의 기회로 삼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현실주의이자 이상주의임을 삼가 새기며, '철조망 너머'의 세상을 묵상한다.
<프레시안>은 동아시아를 깊고 넓게 보는 시각으로 유명한 서남재단의 <서남포럼 뉴스레터>에 실린 칼럼 등을 매주 두 차례 동시 게재합니다. 최원식 인하대학교 교수의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 194호에 실린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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