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는 개회식 연설에서 일본과 아프리카의 인연을 강조하기 위하여 OAU 창립 다음 해에 열린 1964년 도쿄 올림픽의 일을 거론하였다. 그는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선수가 도쿄 올림픽에서 마라톤 2연패를 달성하였고, 폐회식 날에 잠비아가 독립했음을 상기시켰다. 아프리카 각국 정상들의 감동을 이끌어내기에는 조금 힘들어 보이는 이러한 사례를 아베 총리가 굳이 거론한 이유는 이어지는 발언에서 알 수 있다.
"아프리카 발흥을 세상에 알리는 무대가 된 도쿄 올림픽이, 2020년에 다시 열릴 수 있도록 여러분의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물론 TICAD가 일본의 올림픽 개최 지지가 주요 목적인 회의는 아니다. 아베 총리는 향후 5년간 3조2000억 엔(320억 달러)을 아프리카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표된 지원책은 인프라 투자를 비롯하여, 산업 인재 3만 명의 육성, 보건의료의 확충, 부가 가치가 있는 농산물 개발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TICAD가 열리고 나서 약 3주일이 지난 6월 27일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공식적으로 아프리카를 방문하였다. 그는 세네갈, 남아프리카공화국, 탄자니아 등 3개국을 찾아, 7년간 아프리카에 16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번 방문에는 오바마 대통령 아버지의 고향인 케냐가 포함되지 않았고,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고, 석유 산출량도 1위인 나이지리아도 순방 대상에서 빠졌다.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떠난 일주일 뒤인 7월 8일, 중국을 찾았다. 그는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 11억 달러의 융자와 나이지리아산 원유의 수입 증가를 약속받았다.
▲ 세네갈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whitehouse.gov |
왜 지금 아프리카를 둘러싸고 동아시아와 미국이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을까. 가장 큰 동인은 아프리카의 경제 성장이다. 아프리카가 21세기 들어서 경제 성장률 5.8%를 기록하고 있고,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큰 지역으로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에는 경제적 요인 이외의 일정한 방향성이 자리한다. '중국 봉쇄' 또는 '중국과의 경쟁'이 그것이다. 중국은 2000년부터 중국 아프리카 협력 포럼(Forum on China–Africa Cooperation, FOCAC)을 3년마다 개최해오고 있다. 1993년부터 시작한 TICAD가 매번 개최지가 일본인 것에 반하여, FOCAC은 베이징과 아프리카(제2회 에티오피아, 제4회 이집트)를 오가며 개최하고 있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은 임기 중에 일곱 번이나 아프리카를 방문하였고,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2년 3월 취임 후 첫 방문지로 러시아와 더불어, 탄자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콩고를 선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중국의 행보는 실제 교역 면에서의 변화와 같이한다. 이미 2009년에 아프리카의 가장 큰 교역 상대였던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을 제치고, 중국이 1위를 차지하였다. 2012년에는 교역량이 2000억 달러를 기록하여 미국의 두 배를 훨씬 넘게 되었다.
아프리카에 체재하는 중국인도 100만 명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어, 8000명 정도 체재하는 일본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광저우에서는 아프리카 직항 비행편이 주 15회 운행하고 있고, 아프리카인의 불법 체류가 중국의 사회문제로 떠오를 정도로 서로의 관계가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2012년 7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5회 FOCAC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3년간 200억 달러의 차관을 아프리카에 제공하겠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이러한 중국의 '독주'가 최근의 일본과 미국의 일련의 행보를 결정지은 것이다.
아프리카를 둘러싼 중국 그리고 미국과 일본의 경쟁에 대하여 보도하는 대부분의 한국과 일본 언론은, 아프리카를 동아시아와 미국이 외교와 경제로 격돌하는 '전장'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강하다. 요약하면 중국이 아프리카를 '금권 외교'로 '독식'하고 있고, 일본이 이를 막기 위하여 '신 중일 전쟁'에 돌입했다는 것이고, 미국은 이러한 '전쟁'에 너무 늦게 참여하였고, '총알'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미국과 일본의 투자가 확대되어야 균형을 이룬다는 냉전 시대를 방불케 하는 대립 구도적인 평가이다. 그리고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이 지적된다. 중국인 기업에 대한 노사 분규의 발생, 아프리카 현지인보다 중국 노동자를 우선시하는 고용 행태, 자원 외교를 위한 독재 정권의 묵인 등 중국이 일으키고 있는 여러 문제가 아프리카의 근본적인 발전을 막고 있다는 비판 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에 대한 위와 같은 비판들은 중국이 받아들여 개선해 나가야할 점도 있겠지만, 의문이 드는 점이 없지도 않다. 과연 미국이 아프리카 진출에 늦었을까. 미국은 중국이 진출하기 이전부터 아프리카의 최대 교역국이었다. 그리고 중국이 일으키고 있는 문제가 지금까지 식민지 지배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큰 영향력을 쥐고 있는 서구 국가들의 그것들과 다르냐 하는 질문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 <China Safari>(세르주 미셸·미셸 뵈레 지음, Nation Books 펴냄, 2010년). 콩고의 댐 건설 현장의 중국인 기술자와 콩고인 노동자들. ⓒNation Books |
마지막으로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이 '자원 수탈 지향'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며, 그와는 달리 아프리카와의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일본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사실 천연 자원 개발을 위하여 아프리카에 먼저 진출한 것은 일본이다. 아프리카의 독립 이후, 미국, 대만(타이완)에 대항하여 외교적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하여 아프리카 국가와 접촉하였던 중국과는 달리, 일본은 일찌감치 경제적으로 진출하여 천연 자원 획득에 나섰다. 그것이 1990년대를 지나면서 중국과 일본의 입장이 바뀐 것이다.
일본은 올림픽 유치 및 유엔 상임 이사국 진출 등 정치 외교적인 면에서 아프리카를 중시하게 되었고, 중국은 경제적인 면에 치중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의 '자원 수탈'적이라는 중국 비판의 화살은 자신을 향할 수 있다.
한국도 2006년 '한-아프리카 포럼'을 설립하여 2012년에 제3회 대회를 아프리카 15개국의 참여하에 마친 바 있다. 이제는 동아시아를 바라봄에 있어 '미국과 동아시아', '유럽과 동아시아' 등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와 동아시아'라는 축을 염두에 두어야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프레시안>은 동아시아를 깊고 넓게 보는 시각으로 유명한 서남재단의 <서남포럼 뉴스레터>에 실린 칼럼 등을 매주 두 차례 동시 게재합니다. 강태웅 광운대학교 교수의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 193호에 실린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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