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굿 닥터>의 주인공 박시온(주원)은 다르다.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모른다. 자신의 미래가 달린 임용시험을 보러 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청량리역에 쓰러진 아이를 치료한다. 레지던트 1년차가 감히 과장님의 환자를 수술실로 데려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금만 더 지체하면 아이의 상태가 위독해지기 때문이다. 선배 의사가 아무리 상황을 설명해줘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박시온의 머릿속에는 선택이란 단어는 없다. 언제 어디서든 환자가 우선이다. 최인혁처럼 오로지 환자밖에 모르는 의사지만, 그렇다고 최인혁처럼 절대적인 사명감이 있는 건 아니다. 무모하리만큼 순수한 열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 KBS 월화드라마 <굿 닥터>. ⓒKBS |
서번트 신드롬(자폐증이나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나타내는 현상)을 앓고 있는 박시온은 "어른이 되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간 토끼와 형아" 때문에 의사가 됐고, "어릴 때 있었던 보육원 아이들에게 3D TV를 사주기 위해" 돈을 벌고 싶다. 어린 시절 먼저 세상을 떠난 "토끼와 형아"처럼, 박시온도 마음만큼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박시온이 몸담고 있는 곳은 속세에 찌들어 "파워 게임"에 혈안이 된 어른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다. 그는 과연 자신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은 채 '굿 닥터'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여기서 <굿 닥터>는 아주 기본적인, 그래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명제를 환기시킨다.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인가. 박시온처럼 환자 고치는 것밖에 모르는 의사는 과연 '굿 닥터'인가, 아니면 김도한(주상욱)의 말처럼 "똥오줌도 못 가리는 최악"인가. 박시온을 서번트 신드롬을 앓는 자폐아로 설정한 건, 단순히 따뜻한 성장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서열, 권력, 파워 따위를 모르는 박시온을 전쟁터보다 더 치열한 병원에 던져놓음으로써 의사의 존재 이유, 본래 역할에 대해 묻기 위함이다. 그리고 배우 주원은 너무나 당연히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명제를 힘껏 이끌어간다. 2회 만에 주인공을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고 그 안에서 병원 간부들의 힘겨루기가 이뤄지는 전개는 다분히 상투적이다. 그럼에도 <굿 닥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배우 주원의 힘이다. 설득력이 대단한 배우인 셈이다.
<굿 닥터>의 배경을 소아외과로 설정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박시온은 어른이 되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간 '형아'를 그리워한다. 그의 기억은 여전히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다. 차윤서(문채원)는 아이의 아픈 몸보다 불안한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는 의사다. 박시온을 성원대학병원으로 데려 온 최우석(천호진) 원장은 차윤서와 함께 박시온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때 묻지 않은 아이들과 때 묻지 않은 성원대학병원 소아외과 의사들은 과연 병원 안에서 공존할 수 있을까. 힘겨루기에 혈안이 된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에 가까운 의사 박시온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박시온은 오직 환자를 고쳐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 그 생각은 틀렸어. 그건 이성적인 판단이나 확신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니야. 이틀 간 내가 본 박시온은 로봇이었어. 의사정신이 없어."
김도한 교수는 박시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의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환자를 고치는 일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박시온은 그게 전부인 의사다. 하지만 김도한은 그것이 틀렸다고 말한다. 이 논쟁은 앞으로 <굿 닥터>가 풀어가야 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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