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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의 공포도 이겨낸, 죽을맛과 감칠맛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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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의 공포도 이겨낸, 죽을맛과 감칠맛 사이

[내가 옮긴 책] 한소공의 <마교 사전>


'프레시안 books'는 창간 3주년을 맞아 '번역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열두 명의 번역가들이 어떤 식으로든 기억에 남는 자신의 번역서 한 권을 골라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편집자>

(역자는 저자 이름을 한사오궁, 책 제목을 <마차오 사전>으로 표기하였으나, 발간 당시에는 한소공과 <마교 사전>으로 변경되었다.-편집자 주)

▲ <마교 사전>(한소공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한밤중 사이렌이 울리면 나도 몰래 눈이 번쩍 떠졌다. 누군가 어딘가에서 병원으로 실려 가는 소리. 무언의 공포가 잠시 어두운 방안을 지배했다. 곤히 잠들어 있는 식구들 얼굴 위로 교교한 달빛이 어른거렸다.

지역 신문 사회면에는 매일 사망자의 명단과 누적 인원 숫자가 명시되었다. 봉쇄된 학교로 들어가려면 패찰을 착용하고 마스크를 써야만 했다. 한국 유학생들은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학교에 남아 있는 한국인은 우리 식구밖에 없었다. 2003년 사스(Sars: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중국 대륙을 강타하고 있었다. 사스(殺死)와 발음이 같아 '비전형폐렴'이라고 부르던 바로 그 녀석이다. 텔레비전에선 봉쇄된 대학 기숙사 창문으로 생일 케이크를 올려 보내는 모습, 전국 각지에서 베이징으로 특파하기 위해 자원한 의사와 간호사들을 환송하는 모습이 방영되면서 시청자의 눈물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식구. 아이들은 두터운 마스크를 쓰고 실험(實驗)소학교로 가고, 나와 안사람 유소영은 빈 강의실에서 한사오궁(韓小功)과 위치우위(余秋雨), 그리고 리쩌허우(李澤厚)를 만나고 있었다.

위치우위, 리쩌허우와 달리 한사오궁은 낯선 인물이었다. 적어도 당시 나에겐. 그의 글은 자신이 직접 찾아가 보고 들은 것을 자신의 지혜로 삼아 감성에 호소하는 위치우위의 미문(美文)과 다르고, 세련된 사고로 낡은 투를 깨부수며 젊음들에게 전통 속에서 미래를 제시하는 리쩌허우의 논문(論文)과도 달랐다. 그것은 소설로 분류되지만, 그냥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스토리 전개식의 대중소설과 달랐고, 단편이니 중편이니 고정된 틀에 묶여 별도의 이야기를 모은 것도 아니었으며, 딱히 어떤 주제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찌 보면 마차오(馬橋)라는 마을에 사는 이들의 삶과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전(詞典)의 형식을 지녀 그곳의 사투리를 소재로 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역사와 사전이라! 소설에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전혀 그럴 것 같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달려들어 한 해를 꼬박 보내고 탈고했을 때, 비로소 나는, 아니 우리는(유소영과 공역이다) 한사오궁의 투박한 문투가 사실은 얼마나 세련된 것인지, 소설 속 낯선 인물들이 사실 얼마나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들인지, 소설답지 않은 형식이 사실은 얼마나 소설다운 것인지, 해학적으로 느껴지던 것이 사실은 얼마나 슬픈 것인지, 그가 택한 '사전'이란 것이 얼마나 교묘하게 사전(事前)에 조작된 의도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작가 자신의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소설의 태반이 바로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왔다는 사실, 마차오라는 작은 지역의 작은 이야기일 뿐이나 사실은 전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언어와 담론(또는 담론 권력)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 궁벽한 시골을 무대로 하고 있으되 언어를 매개로 유럽과 남미의 새로운 이론과 사조를 몽땅 집어넣어 용광로처럼 녹여냈다는 사실, 애써 담담한 척 했지만 사실은 민중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도무지 알 수 없는 단어나 문장 때문에 골치깨나 썩혀야 했지만, 그 때문에 주변 중국 선생들과 더 친해질 수 있었고, 이른바 '문화대혁명(문혁)'의 속살을 엿보며 다시 한 번 그 참상을 되새길 수 있었다.

'문화'를 내세웠지만 오히려 '반문화'였던 그 '위대한' 혁명(문혁)은 중국인들에게 묘한 마력을 지닌 사이렌이었다. '신문화운동', '문학혁명'의 뒤를 잇는 듯한 '문화' '대' '혁명'이니 어찌 찬란하지 않았겠는가? 더군다나 그것은 그들의 위대한 영도자 마오쩌둥이 발동한 것이었으니 또한 오죽이나 열광적이었겠는가? 주목, 경계, 경각, 집합, 해산, 돌격, 후퇴. 사이렌은 이렇게 그들을 일깨우고 흔들며, 몰려다니게 만들고 흩어지게 하며, 소리치게 했다. 급기야 서로 싸우고, 잡아다 족치고, 죽고 죽이고.

▲ 문화대혁명 포스터. (출처 Wikimedia)

사이렌은 아름다웠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끌려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죽음에 이르렀다. 사이렌은, 아니 호적(號笛)소리는 왠지 사람을 충동질하는 묘미가 있었다. 꿈틀거리는 혁명의 열정이 모든 것을 잊게 했다. 그 소리에 맞추어 젊은 아이들은 시골 벽촌으로 달려가고, 까닭 모르고 누군가와 투쟁했으며, 부모와 스승에게 삿대질했다. 언제 그 찬란한 문화의 대혁명이 끝날 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 1976년. 그 평범치 않은 해에 둥베이(東北)에선 운석비가 내리고, 탕산(唐山)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숱한 인명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정치 영도자들의 죽음이 잇달았다. 먼저 죽은 것은 저우언라이(周恩來)이고, 다음은 주더(朱德), 마지막이 마오쩌둥(毛澤東)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문화의 대혁명은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사실 그 해 봄부터 해빙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었다. 아니 해빙이 아니라 파빙(破氷)이다. 천안문 근처 서단(西單) 벽에 붙기 시작한 이른바 천안문 시초(詩抄)가 그것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말해 1966년 5월 발동되어 1976년 10월에 마감된 것으로 기록된 '무산계급문화대혁명'의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끝났으나 어느 것부터 정리해야할 지 모르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더 이상 사이렌은 들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이렌이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그래서 두려웠다. 하지만 문학은 다시금 그들만의 사이렌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사이렌은 반성과 각오, 절망의 뿌리 찾기, 희망을 향한 외침이었다. 그것은 죽음을 향한 무지의 행군이 아니라 삶을 향한 지난한 개척이었다. 그 대열 속에 한사오궁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말을 할 줄 안다. 말은 사람과 사람을 소통시키는 편리한 도구이자 수단이다. 하지만 모든 말이 모든 이에게 유효한 것은 아니다. 동족(同族)의 말은 이족(異族)에게 낯선 소리에 불과하며, 동족의 말이라도 지역에 따라 이상한 소리나 뜻일 수 있다. 동족이되 지역에 따라 다른 말을 우린 사투리라고 부른다. 하지만 사투리 또는 방언이란 사실 표준어라는 일종의 담론 권력에 의해 규정된 것일 뿐 태생적인 것이라 할 수 없다.

번역은 이족의 말을 동족의 말로 옮기는 작업이다. 낯선 소리를 언어로 만드는 일, 기이한 말을 익숙한 말로 만드는 일. 번역가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한사오궁에게 <마차오 사전>(한소공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민음사 펴냄)은 동족의 사투리를 동족의 표준어로 옮기는 작업이었으며, 역자에게 <마차오 사전>은 이족의 말을 동족의 말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흥미로운 공감대가 번역의 지루함과 어려움을 상쇄하기에 족했다. 번역은 동족에게 이족의 문화를 전파하는 일이다. 때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니 상상할 수 없었던 이족의 문화가 동족들에게 전해져 경이나 감동을 주는 일은 번역가만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묘미이다. 낯설면 낯설수록, 기이하면 기이할수록, 농후하면 농후할수록 역자는 죽을 맛이지만 독자는 감칠맛이 날 것이다. 죽을 맛과 감칠맛 사이에 역자가 있다.

서울에서 처음 만난 한사오궁은 점잖고 겸손한 사람이란 인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글을 보면, 그가 얼마나 약동적이고 열정적이며, 때로 공격적인가를 느낄 수 있다. 그의 소설은 우수(憂愁, 페이소스)로 가득 차 있지만 오히려 골계적이고 해학적이란 느낌을 받는다. 그것이 황당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그의 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소설이 희극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언제나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하기에 고통과 시련, 아픔과 절망, 무지와 가난을 문명화할 수 있었다. 마차오(馬橋)라는 마을의, 때로 황당하고 뜻 모를 언어들을 문명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사전(詞典)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힘 때문이다. 지금 또 한 권, 그의 소설을 읽고 있다. 언젠가 번역되어 나올 것이다. 그 때가 기다려진다. 죽을 맛과 감칠맛 사이에서….

역자 후기

한사오궁(韓少功), 그는 흥미로운 작가이다. 어떤 의미에서 '흥미'야말로 소설의 존재 의미이기도 한데, 일반적으로 작가에 대한 흥미로움은 물론 작품 때문이지만, 작가의 편력(사상, 또는 인생) 또한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것은 흥미로운 삶이 곧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그의 인생 편력은 어떠한가?

한사오궁은 호남 장사(長沙) 출신으로 1968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농촌으로 '삽대(揷隊: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 인민공사의 생산대에 들어가 노동에 종사하거나 정착해서 사는 것)'하였고, 문혁 후기에 호남성 멱라현(汨羅縣) 문화관에서 일했으며, 1982년 호남 사범학원 중문과에 들어가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받았다.

첫 번째 소설집인 <월란(月蘭)>(1981년. 단편 '월란'은 1979년 3월 발표)을 시작으로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다(飛過藍天)> 등을 발표했으며, 1985년 <작가> 제 4기에 발표한 '문학의 뿌리(文學的根)'에서 이른바 심근문학(尋根文學)을 주창하는 한편 자신의 주장에 근거한 실천 작업으로 ,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爸爸爸)', '여자, 여자, 여자(女女女)', '귀거래(歸去來)' 등 중단편을 발표했다.

1988년 해남도로 내려간 한사오궁은 <해남기실(海南紀實)>, <천애(天涯)> 등 문학지를 주관한 편집자로 활동하였는데, 전후로 <유혹(誘惑)>, <빈 성(空城)>, <모살(謀殺)>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중역본: 生命中不能承受之輕)>을 번역하기도 했다. 이후 90년대에 들어와 '성전과 유희(聖戰與遊戱)', '성이상적미실(性而上的迷失)', '세계' 등의 산문을 통해 가치와 정신의 실종에 대한 우려와 소비시대의 여러 가지 문화현상에 대한 비판을 주도하는 문화 비평가로 활동했다. 그리고 1996년 '심근문학'과 제 3세계 문학의 영향 하에서 자신의 창작방법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의 결과물로 장편소설 <마차오 사전(馬橋詞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현재 그는 창작과 문화비평 이외에도 해남성 문협 주석으로 적극적인 문단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문화대혁명의 와중에서 청소년기 또는 청년기를 보냈다는 것은 특히 이른바 '지청(知靑)' 생활을 했다는 것은 분명 특이한 경험이기는 하지만, 1976년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이후 숱하게 등장한 이른바 상흔문학(傷痕文學)이나 반사(反思文學)의 작가들 역시 그러한 경험의 소유자라는 면에서, 또한 그보다 훨씬 오랜 세월인 16년간이나 신강(新疆)에서 일종의 유배생활을 해야만 했던 왕멍(王蒙)이란 작가도 있다는 점에서 그만의 독특한 경험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역시 그가 흥미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자신의 독특한 창작 방식을 통해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마차오 사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과연 <마차오 사전>은 어떤 책이고, 작가가 이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마차오 사전>은 소설이다. 그러나 '사전(詞典)'이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사전'이란 이름이 낯설기는 하지만 이 책이 소설인 것만은 분명하다. 비록 모호하지만 작가가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가 존재하며, 애써 형상과 전형의 문제에 치중하고 있지는 않지만 마교 마을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문화를 흥미와 감동으로 반영하고 있는 이야기 구성, 즉 스토리와 플롯이 살아 있고, 작가 나름의 독특한 문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작가 스스로 소설답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단풍귀신(楓鬼)'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집필하기 전 나는 야심만만하게 마교의 모든 것에 대한 내력을 모두 밝히기로 결심했다. 나는 소설을 쓴 지 10년이 넘었지만 점차 소설을 쓰는 것은 물론이고 읽는 것조차 싫어졌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소설은 줄거리가 중시되는 전통적인 소설을 말한다. (중략) 모든 개인은 각기 둘, 셋, 넷 혹은 이보다 훨씬 많은 인과의 실마리가 교차하는 가운데 생활하고 있다. 또한 각각의 인과관계 외부에는 또 다른 사물과 물상이 존재하여 우리의 삶에 불가결한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인과의 그물 속에서 소설의 주된 줄거리가 누리는 패권(인물, 줄거리, 정서를 모두 포함하여)이 무슨 합법성이 있겠는가?


이처럼 작가는 이른바 '전통적인 소설'의 글쓰기를 거부한다. 그렇다면 "마교의 모든 것에 대한 내력을 모두 밝히기" 위해 역사를 쓰면 어떨까? 그러나 작가는 '전통적인 소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서(史書)에 대한 믿음도 포기한다. 어쩌면 그는 지난 과거에 대한 의식적 배열로서 사서가 역사가의 모종의 의도에 따라 편찬되며, 이를 통해 또 하나의 권력, 즉 담론의 권력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을 눈치 챘거나, 포스트모던 역사학자인 젠킨스(Keith Jenkins)가 말한 "(역사란) 일종의 언어적 허구이자 서사 산문체의 논술이다."라는 발언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신 그는 '사전'이란 장치를 들고 나왔다. 사전은 한 시대나 지역(나라를 포함하여)에서 통용되는 단어를 해석하고, 그 용례를 밝히는 한편 그 문화를 모두 포함하려는 문화적 의도를 감추지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문화적 시공간에 대한 해석의 총집이자 언어로 표현되거나 기술된 문화의 반영물이다.

<마차오 사전>은 전체 115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단어를 해석하고, 그것이 마차오 마을, 또는 그 인근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 지를 밝히고 있다. 이 점에서 <마차오 사전>은 분명 의도된 사전이다.

'사전'의 핵심이 언어인 것처럼 <마차오 사전>의 핵심 주제 또한 언어이다.

언어는 역사와 마찬가지로 축적, 선택, 기억, 망각, 신설, 사장(死藏)의 신진대사를 겪는다. 이를 통해 언어는 그 환경에 적응하게 된다. 그리고 독특한 문화 심리를 형성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 심리로서 언어는 동일한 언어에서 서로 다른 함의나 심리를 반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같은 기표(記標)임에도 전혀 다른 기의(記意)를 낳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차오 사전>의 언어는 표준어가 아닌 방언이다. 이는 마차오란 지역이 오랫동안 주변부에 머물러 있으면서 독자적인 언어 환경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인데, 그런 까닭에 마차오의 언어는 표준 중국어는 물론이고 다른 지역의 언어와 달리 그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언어 규칙이나 가치 체계를 따르고 있으며, 이렇게 형성된 문화 심리는 그들의 삶을 반영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조정하거나 예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내 멀미'처럼 사람의 심리나 의지조차 조정할 때도 있고, '불화기'처럼 삶을 예언하기도 한다는 뜻이다.

언어와 관련된 두 번째 주제는 담론의 권력에 관한 것이다.

이른바 담론의 권력이란 담론에 담론의 주체가 지니고 있는 신분, 지위, 권력, 명성이 투사되어 어의(語義) 이외에 강력한 힘을 부가한다는 말이다. 마차오 사람들은 이를 '말발'이라고 한다. 주로 언어 권력을 의미한다. 사실 언어 권력은 마차오만의 독특한 언어 풍습은 결코 아니다. 푸코가 언어는 곧 권력이라는 점을 논리적으로 입증했지만, 사실 그보다 먼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언어가 곧 권력임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탱크를 트랙터라고 하든, 강령이 갑자기 말뚝이 되든지 간에 그 말이 권력을 지닌 자에게 나오면 트랙터가 탱크가 되는 것이고, 말뚝이 강령이 되는 것이다.

담론의 권력은 이에서 멈추지 않는다. 마차오가 점차 세상을 향해 개방되면서, 새롭게 수입되는 언어가 점차 많아지게 된다. 특히 정치권력에 의해 남용되는 여러 가지 언사들은 그들의 삶에 그대로 이식되지만, 그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규정짓지 못한다. 그저 그렇게 입에서 발출될 따름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그들은 점차 자신들의 언어 공동체에서, 자신들이 잘 알고 있었던 언어 체계에서 점차 전혀 알지 못하는 문화 공간으로 진입하게 되고, 그러한 문화 공간에서 또 다시 주변인으로 격하되며, 자신들의 문화 공간에서도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한사오궁은 이렇듯 <마차오 사전>을 통해 언어가 일정한 시공간에서 어떻게 마차오 사람들의 문화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그들의 삶을 정의하고, 규정지으며, 예언하고 있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 심리 속에서 언어의 권력이 어떤 형태로 횡행하며, 결국 자신들조차 소외시키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묘술하고 있다. 어쩌면 이는 단지 한 지역만의 일이 아니라 현대 중국의 모습이며, 그의 발언 역시 마차오에 대한 것이 아니라 현재 중국에 대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하다.

<마차오 사전>의 가장 밑바탕에는 작가 한사오궁이 내내 주장하고 있는 '심근 문학', 즉 뿌리를 찾는 문학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뿌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재의 삶을 지탱하는 거대한 근거이자, 인식의 바탕이며, 알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하는 무기고이다. 사실 그것은 과거를 축적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대처하기 위한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하다. 그러나 비교적 일정한 공간에서 수천 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역사는 미래의 불확실을 역사적 경험으로 커버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전통이 되고, 전통은 상식이 되어 우리의 삶 전체를 지도하고, 제약하며, 유지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들의 인식 속에 자리한 적이 없었던 새로운 물질, 사물, 언어, 사고, 신앙, 지식이 등장할 경우, 우리는 오로지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당혹감에 빠진다. 심지어 공황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이 때 역사나 전통은 다시 한 번 힘을 발휘한다. 우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과거의 경험, 그것이 지식이든 사상 자원이든 신앙, 풍습이든지 간에, 유비된다고 믿거나 유사하다는 개연성이 있는 사물, 사고, 개념을 찾아 헤맨다. 다시 말해 미래를 대비하는 무기고인 '뿌리'에서 새로운 적과 대항할 무기를 찾아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인도 불교가 들어왔을 때 당시 사람들이 꺼내 든 무기는 노장(老莊)이었다. 이른바 격의 불교(格義佛敎)는 이렇게 해서 형성된다. 또한 청나라 말기에 뜬금없이 불학(佛學)이 부흥한 것도 새로운 서구 문명에 대처하기 위해 낡은 무기를 끄집어 낸 것과 같다.

현대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종식되고, 개혁 개방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인들은 또 한 번의 충격에 휩싸였다. 그렇지 않아도 오랜 죽의 장막에 가려 있던 이들인 데다, 그 동안 서구의 문화는 상전벽해처럼 심하게 변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의 상처에 대한 치료도 시급했지만, 더욱 급한 것은 물밀듯이 들어오는 새로운 학문, 지식, 사상에 대한 해석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결국 시대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개혁 개방은 경제적 의미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의 사유 방법까지 변화시킬 것이 명약관화했다.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이 이른바 '문화열(文化熱)'이라고 칭해지는 격론의 현장에 몰입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한사오궁이 주도했던 이른바 '심근 문학' 운동은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한사오궁이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데에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조구호 옮김, 민음사 펴냄)이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재룡 옮김, 민음사 펴냄) 등 제 3세계 문학가들의 영향(특히 마환적(魔幻的) 사실주의)과 무관치 않으며, 사상적으로 데리다의 해체주의적 발상이나 푸코의 담론에 관한 논의와 깊이 관련이 있다. 이는 곧 당시 중국 사회에 크게 유행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이기도 하다.

말이 길어졌다. 사실 말이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전달만 제대로 된다면. 후기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길어진 것은 무언가 할 말이 많기 때문인데, 이는 2003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해 중국에서는 사스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축축하고 우울한 양저우(揚州)의 한 아파트에서 한사오궁의 <마차오 사전>은 어렵지만 즐거운 활력소가 되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몇 번의 다듬질과 수정을 거친 후 이제야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사전'으로서 그리고 소설로서 <마차오 사전>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번역할 때 여러 가지로 조언을 아끼지 않은 양저우 대학 쉬더밍(徐德明) 교수에게 각별히 감사의 말을 전한다. 독자 여러분에게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책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심규호의 주요 저서 및 역서

<완적집>(심규호 지음, 동문선 펴냄)

<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심규호 지음, 일빛 펴냄)

<유럽문화기행기행>(위치우위 지음, 유소영·심규호 옮김, 미래인 펴냄)
<마교 사전>(한소공 지음, 유소영·심규호 옮김, 민음사 펴냄)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이중톈 지음, 유소영·심규호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
<개구리>(모옌 지음, 유소영·심규호 옮김, 민음사 펴냄)
<이중톈, 사람을 말하다>(이중톈 지음, 심규호 옮김, 중앙books 펴냄)
<위치우위의 중화를 찾아서>(위치우위 지음, 유소영·심규호 옮김, 미래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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