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없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무능함이 만천하에 드러날 뿐만 아니라, 검찰 수사 촉구 등 최근 전개되는 상황 역시 '정치적 꼼수'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기록물 전문가 "대화록은 존재한다"
25일 기록관리단체협의회, 한국기록학회, 한국기록관리학회, 한국기록관리학전공주임교수협의회, 한국기록전문가협회, 한국국가기록연구원, 투명 사회를 위한 정보 공개 센터 등은 대표 명의로 공동 의견을 내 "여전히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며 "추가 검색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통령 기록 관리 체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문 및 실무를 직접 수행했던 전문가다. 이들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국가기록원의 도움을 받아서 진행한) 기존 검색으로는 국가기록원에 존재하는 대화록을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존재하리라고 믿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이 생산한 각종 전자, 비전자 기록은 아래처럼 다섯 개 종류로 구분되어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었다.
①신전자 문서 시스템(2003~2004년까지 사용한 전자 결재 시스템) ②e지원 시스템(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부터 퇴임 시까지 사용한 업무 관리 및 전자 결재 시스템) ③개별 업무 시스템(대통령 일정 관리 시스템 등 18개 행정 정보 시스템) ④녹음테이프·CD(임기 중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를 녹취한 녹음테이프와 디지털 정보로 변환한 파일을 수록한 CD) ⑤비전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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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2007년 남북 정상 회담 대화록이 존재한다면 ②e지원 시스템 ③개별 업무 시스템 ④녹음테이프·CD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②, ③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의 대통령기록관리시스템(PAMS)에 '일반' 또는 '지정·비밀' 기록으로 구분하여 이관되었고, ④는 대통령기록관 서고에 역시 '일반' 또는 '지정·비밀' 기록으로 구분하여 이관되었다.
이들의 설명대로라면, 대통령기록관리시스템의 '지정·비밀' 기록만 검색해 놓고서 "대화록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들은 "현재 대통령기록관에는 ②e지원 시스템의 복제본이 존재한다"며 "이 복제본은 2009년 검찰 조사 때 대통령기록관리시스템에 이관된 내용과 동일한 것이라고 입증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대통령기록관리시스템에서 대화록을 찾지 못했다면 ②e지원 시스템의 복제본을 구동해서 대화록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이들은 "④녹음테이프·CD 역시 대통령기록관리시스템이 아니라 서고에 보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검색 범위를 서고로 확대하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색해도 안 나와? 당연한 결과!
이들 전문가들은 새누리당과 민주당 국회의원과 그들이 대동한 실무자들이 대통령 기록 관리 시스템의 검색 기능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번 해프닝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대통령기록관의 '지정·비밀' 기록을 검색할 능력이 없는 아마추어들이 '쇼'를 하면서 국민을 기망했고, 국가기록원은 이를 알면서도 묵인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들이 밝힌 전모는 이렇다. 대통령기록관리시스템에 '지정·비밀' 기록이 저장되는 방식은 크게 세 단계를 거친다. (1) 원본 파일(HWP 파일 등)을 문서 보존 포맷(PDF 파일)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친다. (2) 원본 파일과 PDF 파일을 함께 묶어서 장기 보존 포맷(XML)으로 변환한다. (3) 이 장기 보존 포맷은 최고 수준으로 암호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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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새누리당과 민주당 국회의원은 대통령기록관리시스템의 '지정·비밀' 기록의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여 '건 제목', '생산 부서명' '생산 일자' 등의 기본 항목으로 검색했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하지만 '지정·비밀' 기록은 암호화되어 저장되기 때문에 이런 검색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애초 '지정·비밀' 기록은 누구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법이 정한 기간 동안 원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지정·비밀' 기록의 경우에는 검색이 가능한 '문서 취지', '내용 요약' 등의 메타 데이터 역시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정·비밀' 기록의 암호를 해제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제목', '생산 부서 이름', '생산 날짜' 등은 물론이고 전문에 나왔음직한 열쇳말('김정일', 'NLL' 등)로 백날 검색해도 대화록이 검색될 가능성은 없다. 이들은 "이 때문에 암호를 해제하고 나서 원본 파일의 전문 검색을 실시하기 전에 '대화록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암호를 해제하고, 원본 파일 추출 등에 걸리는 처리 시간 등을 고려해서 충분한 검색 시간을 확보해 대화록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만약 이런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도 대화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때 이관 및 관리 과정에 대한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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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초 실종'은 바보들이 협업한 해프닝?
이런 전문가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그 파장은 만만치 않다. 만약 대통령기록관에 대화록이 존재한다면 이른바 '사초 실종'을 둘러싼 지금까지의 갈등은 모두 국회의원들의 국가 기록물 관리 체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검색 능력 미숙이 낳은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정쟁의 결과로 '사초(史草)' 공개를 결정해 놓고서 대화록을 찾지 못하고 검찰 고발 운운하는 새누리당이나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민주당이 동시에 웃음거리가 된다.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사초 실종'을 둘러싼 해프닝이 제 방향을 찾도록 하지 못한 언론도 덩달아 비웃음을 살 전망이다.
또 위에서 전문가들이 언급한 내용을 모를 리 없는 국가기록원이 새누리당과 민주당 국회의원의 미숙한 검색과 섣부른 결론을 그대로 방조한 데 대한 책임 논란도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한 전문가는 "책임을 면하고자 국가기록원이 자체적으로 e지원 시스템을 구동해 대화록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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