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대한 이해가 깊고 호감도가 높은 이번 지도자의 방중에 중국의 여론은 우호적이었고 그만큼 많은 화젯거리를 낳았다. 전반적으로 좋은 분위기에서 진행되었고 손님을 잘 대접하는 중국의 '하오커(好客)' 덕에 시진핑 주석의 이미지도 함께 높아졌다. 공공 외교의 목표가 다른 나라 국민의 마음(hearts and mind)을 사는 것이라면 이번 정상 회담도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이를 위해 대학 강연에서 사용한 중국어는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인들에게 '뜻밖의 기쁨(驚喜)'을 주었고' 한복을 포함한 패션 외교나 모든 동선은 한국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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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정상 회담을 좀 더 살펴보면 한중 관계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는 의미도 숨어 있다. 우선 수교 21년을 맞이하는 역사성이다. 이번 방문은 신심지려(心信之旅)라는 표현대로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 새로운 20년(新的 20年)을 만들기 위한 초석이었다. 이것은 현재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중일 관계를 반면교사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중 관계는 역사와 영토 문제가 착종된 중일 관계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전방위적인 교류가 가져온 갈등이 수면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한번은 호흡을 가다듬고 가야할 시점이 된 것이다.
또 하나는 경제 관계와 정치 사회 관계의 비대칭성이다. 한중 경제 관계는 미국과 일본의 교역의 합보다 크다. 이번 정상 회담에서도 2015년에 교역 규모 3000억 달러를 달성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정치 안보 관계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걸맞은 손에 잡히는 결실이 많지 않았다.
양국 간 전략 관계의 핵심인 북한 문제와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안정적 소통 구조를 확보하지 못했고 국방 협력도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이번 공동 성명에서도 우리 정부가 내심 강조해왔던 한-미-중 안보 대화나 국방 분야 협력 내용을 강화하는 내용은 빠져 있다. 양국 간 문화 교류도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양적으로는 확대되었으나 양국을 대표하는 수준 높은 교류는 제한적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정상 회담을 통해 인문 유대를 강화하기로 한 문제의식은 살 만하다. 문제는 인문 교류를 관주도로 활성화시키는 것이라면,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고 그 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보면 한중 관계는 더 이상 양자 관계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부상한 중국은 좀 더 적극적으로 국제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국제 관계의 준칙으로 제시한 '신형 대국 관계'도 미중 관계 위상을 재정립하면서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외교적 장치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한중 관계를 좁게는 한반도, 크게는 동아시아 지역이나 미중 관계 속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다. 이런 점에서 한중 관계는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최고 지도자의 방문으로 일거에 해결될 수 없는 좀 더 구조적인 문제를 깔고 있다.
이번 정상 회담 준비 과정도 그만큼 어려웠다. 정상 회담이 열리기 직전까지 공동 성명의 구체적인 내용에 합의하지 못할 정도로 치열한 샅바싸움이 벌어졌고 이러한 결과는 '미래 비전 공동 성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양국이 쉽게 합의한 부분은 현재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다른 형식으로 대체하기보다는 기존 관계를 내실화, 충실화한 점이다. 그 결과 양국은 외교 안보 컨트롤 타워 간의 전략적 소통 기제를 마련했고 지지부진한 상태의 한중 자유무역협상(FTA) 논의에 새로운 협상 지침(mandate)을 내려 협상에 속도를 내게 했으며, 정치 사회적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인문 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핵심 쟁점인 한반도 문제와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의 차이도 있었다. 한국은 북핵 불용과 북한 비핵화를 관철하고자 했고, 박근혜 정부 외교 안보 정책의 두 축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얻고자 했다. 반면 중국은 북한 비핵화를 넘어 한반도 비핵화를 고수했고 북핵 불용에 대해서도 북중 관계를 의식해 명시적으로 적시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상을 "환영"하고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반도 긴장 완화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총론의 차이와 함께 각론에서도 우리는 비핵화 방법론인 6자 회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은 채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을 선행 조건으로 걸었다. 그러나 중국은 관련 국가들이 한 걸음씩 양보하여 6자 회담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아가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문턱"을 낮추고 관련 국가들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중국이 한국과 미국이 좀 더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고 더 나아가 문턱을 높이는 미국을 향해 한국이 더 많은 노력을 주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향후 '역할론'에 대한 인식차이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중국이 책임 있는 대국에 걸맞은 중국 역할론을 요구하고 있다면, 중국은 유관 당사국인 남북한이 대화를 재개하는 등 새로운 한국 역할론을 주문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정상 회담 기간 중 열린 기자 회견에서 행한 "한반도 상황이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말도 대화 국면에서 한국의 전향적 역할을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어쨌든 한반도 정세를 대화 국면에 진입시켜 중국의 외교 전략에 변화를 주고자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방중으로 인간적 신뢰를 확보했다. 그러나 양국 관계는 인간관계로 풀 수 없는 복합 방정식이다. 더구나 개별 국가의 안보 자율성이 높아지고 이들 국가가 지역 국제 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상황에서 한중 관계가 출렁거릴 가능성이 언제나 있다.
이럴 때 일수록 "높은 곳에 올라가야 멀리 보는(登高望遠)" 중장기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한중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한국의 격을 높이고 남북 관계를 개선하며, 대중국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매력을 심화시켜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시진핑 주석이 중국 공산당 창당 100년(2021년)을 맞아 어떤 국가를 물려줄 것인가 고민하는 중장기적인 전략이 우리에게도 있는가 하는 점이다.
<프레시안>은 동아시아를 깊고 넓게 보는 시각으로 유명한 서남재단의 <서남포럼 뉴스레터>에 실린 칼럼 등을 매주 화요일, 일요일 동시 게재합니다. 이희옥 성균관대학교 교수의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 192호에 실린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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