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디오 스타> MC들. 왼쪽부터 김국진, 윤종신, 김구라, 조규현. ⓒMBC |
MC들과 게스트가 합세해 던지는 "MBC 욕 했냐, 안 했냐", "<라스> 복귀 후 시청률 전망은 어떻게 보냐"는 독설은 기본이었다. 긴 녹화시간을 단축시켜보자는 김구라의 제안에도 동료 MC들은 "방송시간 줄이다 줄이다 못해 KBS <두드림> 방송시간을 아예 줄여버렸다"며 전방위로 공격했다. 지금의 <라스> 녹화장이 마치 드라마 스튜디오처럼 나태해졌다고 지적할 때까지만 해도 김구라는 특유의 날카로운 촉을 잃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돌아온 김구라'는 대하드라마라기보다는 심심한 드라마에 가까웠다. 게스트의 말이 길어진다 싶으면 바로 끊고 다른 화제로 넘겼을 김구라가 그저 묵묵히 듣는 것도 모자라 무려 "의미"를 찾았다. 단호하게 맺고 끊는 것이 김구라의 역할이었건만, 돌아온 김구라는 '듣는 MC'가 되어있었다. 굳이 알 필요는 없지만 알아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데가 있는 백과사전식 지식도 나오지 않았다. 게스트를 당황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난데없는 게스트의 공격에 멋쩍은 웃음을 보일 때도 있었다. 오죽하면 규현이 "정보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지적했을까. 물론 당황하는 김구라, 공격당하는 김구라를 지켜보는 재미도 나름 쏠쏠했지만, 이렇다 할 '한 방'이 나오지 않은 건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김구라가 말한 것처럼 "인트로 시청률"은 김구라 본인이 책임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반으로 갈수록 <라스>의 무게중심과 재미는 게스트 홍진영의 몫이었다. 무려 이효리의 신곡 '미스코리아'를 듣고도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이거 무슨 노래야?"라고 묻고, 김구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나 오빠 싫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감한 게스트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방송 후에도 홍진영이 화제의 중심이 된 건, 습관처럼 윙크를 하거나 반말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윤종신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김구라한테 감정 얘기하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말할 만큼 김구라를 당황시키는 게스트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홍진영마저 없었다면 중반으로 갈수록 김구라의 존재감은 더 희미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윤종신이 "반전이 있는 친구", "신종캐릭터"라고 칭찬할 때마다 김구라는 "사회에 워낙 변종들이 많고 아노미"라고 반박했다. 비로소 김구라 특유의 '토크'가 되살아난 것이다. 계산 없이 들이대고 좀처럼 주눅 들지 않는 게스트가 오히려 MC 김구라의 캐릭터를 끄집어낸 셈이다. <라스>가 끝난 후 실시간 검색어 1위는 당연히 김구라 차지라고 예상했지만, 하루가 넘도록 홍진영이 검색어 순위에서 내려올 줄 몰랐던 건 그래서다.
▲ 김구라가 <라디오 스타> MC로 복귀했다. ⓒMBC |
그래서 김구라의 진짜 복귀는 다음 주 방송일지도 모르겠다. 홍진영처럼 김구라의 공격성을 자극시킬 게스트가 또 출연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게스트가 김구라를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김구라가 적극적으로 나서 게스트의 캐릭터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라스>에 김구라가 필요한 이유다.
김구라의 매력 중 하나는 온순하거나 모범적인 게스트의 본성을 끄집어내는 것에 있었다. 게스트도 잊고 있었던, 작가조차 모르고 있었던 깨알 같은 정보를 파악해 게스트를 방송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김구라의 특기였다. 그러나 돌아온 김구라는 수시로 덕담을 했고 진정성, 의미를 찾았다. 그건 <무릎팍 도사> 강호동이 이미 하고 있지 않은가. '듣는 MC' 김구라에게 적응하고 싶지 않다. 일단 던지고 아님 말고 식의 '말하는 MC' 김구라로 돌아오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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