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36주기를 맞아 한동안 쉬었던 전태일통신을 다시 시작합니다. 전태일통신은 그동안 사랑과 평화를 실천했던 전태일의 뜻을 되새겨 우리 사회의 낮은 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또다른 '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애썼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우리 사회에 이같은 소통과 대화의 새싹을 잘 키워내야 한다는 소명감은 있었지만 그 성과는 참으로 미흡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제 전태일통신의 촛불을 다시 켜면서 이전보다 좀 더 넓고 깊게 억압받고 상처받는 사람들과 만날 것임을 다짐합니다. 더욱이 그런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도 아주 작은 우애와 협동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사람들과 함께 그 사랑을 나눌 것임을 다짐합니다. 특히 시야를 넓혀 아시아 지역 민중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전태일통신은 앞으로 편집위원들의 공동기획으로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이철순(일하는여성 아카데미 원장),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김곰치(르뽀작가), 이계삼(밀양고 교사) 선생님들께서 각기 자신의 삶과 활동 터전에서 진지하고도 가슴으로 공명하는 목소리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의 공명과 채찍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삶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 누구나 먼저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삶 자체다. 산더미같은 돈도, 세속의 성공도 자신의 삶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궁궐 같은 집도, 값비싼 자동차도 자신의 삶이 없다면 그저 딱딱한 돌덩이나 고철더미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자신의 삶은 소중하며,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이 지상에서 자신의 삶을 충분히 누리고 즐기는 일이야말로 다른 그 어떤 소명에 앞서 가장 우선시되는 천부의 특권이다.
누구나에게 자신의 삶이 소중하다면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나아가 미래를 살아야 할 모든 이웃과 후손들의 삶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거창하게 철학과 사상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이 세상의 모든 '나'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나의 이웃은 다름아닌 바로 확장된 '나'이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전태일이라는 청년이 일기에 적고 있듯 이웃, 즉 동무, 친구는 나의 또다른 '나'이며, 모든 생명 하나하나는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우주 전체다.
그러나 특히 자본주의 근대화, 산업화라는 괴물이 온지구를 덮치면서 '나'는 너무나도 값싼 상품, 너무나도 많아 그저 소모품으로 버려지는 물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아파트 한 채나 자동차 한 대보다 못하고 심지어는 옷 한 벌이나 밥 한 끼보다도 못한 수많은 '나'가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가고 있다. 우리는 날마다 도처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우리의 이웃을 목격하면서 세상을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삶을 누리기는커녕 오히려 삶이 거추장스럽기까지 한 이런 '나'의 존재는 과연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 압축성장과 압축 민주화를 칭송하기에 앞서 과연 오늘의 한국사회가 사람이 살만한 사회인지 진지하게 되물어야 한다. 그리고 도대체 우리는 지금 어떤 미래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절대가치로 추구했던 지난날을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도를 넘어 사람 위에 돈이 군림하는 배금주의, 이미 도를 넘어 자살로 치닫는 경쟁 만능 신화, 이미 치료불능의 중독 증상에 이르른 성장지상주의 등등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기존 가치는 이제 버려야 할 비인간의 가치임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풍요는 자연착취와 노동착취의 근대 석유문명으로부터 떡고물 한 조각을 얻은 것에 불과하며, 이제 그로 인한 자원고갈과 기후변화, 지구온난화는 산업문명의 끔찍한 붕괴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십억 년 동안 숙성되었던 자연의 보물들을 단 몇 백 년만에 마구잡이로 퍼다 쓴 댓가로 끔찍한 기아와 전쟁의 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슬기동물(호모사피엔스)이 슬기롭게도 엄청난 화학물질을 마구잡이로 배출한 결과 아토피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질병이 번창하고 지구 생물체 전체가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과 300만으로 추산되는 빈곤층을 생각하면 오늘의 우리 사회는 우애와 협동의 민주주의 공동체가 결코 아니다. 동무를 시험과 인생의 경쟁상대로만 가르치는 교육, 학생을 기업의 인적자원으로만 취급하는 교육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는 공동체의 참교육이 결코 아니다. 아픈 사람을 얼마짜리 환자로만 여기는 의사, 줄기세포라는 생명체를 키워 다른 생명체를 위해 찌르고 잘라내 죽이는 치료행위는 결코 생명 존중의 참의료가 아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결코 우정과 환대의 인간이 살만한 사회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자식들의 진정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도 이런 사회를 시급히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전환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사회를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살 수 있는 인간의 사회로 만들어나가는 것은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누리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그런 전환운동은 무엇보다도 풍요에 도취되어 눈도 뜨지 못하는 중독의 삶에서 과감히 뛰쳐나와 깨어 있는 삶을 비로소 가능하게 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36년 전인 1970년 11월13일, 청계천의 청년노동자였던 전태일은 사랑과 평화, 우애와 협동의 소박한 공동체를 꿈꾸며 자신의 온몸을 던졌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과연 전태일이 그토록 소망했던 인간의 해방이 이루어졌는지 우리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전태일이 그토록 아파했고 돌보았던 나이어린 소녀들의 삶의 조건이 나아졌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사회 도처에서 횡행하고 있는 비리와 억압과 착취를 걷어내기 위해 아주 낮은 곳에서 작은 힘과 목소리를 보태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들이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알건 모르건 그들은 모두 전태일의 또다른 '나'이다. 그들이 펼치는 어찌보면 넓지 않은 소통과 대화의 마당은 절망뿐인 상황 속에서도 가냘프게 남아 있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희망일른지도 모른다. 이런 대화와 소통의 몸부림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변화와 전환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을 밝혀주는 작은 등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앞으로 우리는 이 등불을 여기저기에 소중히 걸어둘 의무가 있으며, 그런 등불이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모든 분들께 바로 지금 여기서 진심으로 따뜻한 우정과 환대의 손을 내밀고 싶다. 남북극에서 녹아내린 빙하가 바로 우리들 돛단배의 등불 앞으로 돌진해 오고 있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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