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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그맨, 쓰레기로 인간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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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그맨, 쓰레기로 인간을 묻다

[TV PLAY] KBS2 예능 <인간의 조건>

무엇이 당신을 설명하냐는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가장 대표적으로 말이나 행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행동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어떤 것들로 이루어져 있을까? 무엇을 사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버리는가와 같은 것들이 아닐까.

하성란의 소설 <곰팡이꽃>에는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남자가 등장한다. 우연히 자신이 버린 쓰레기봉투를 뒤지다 삶을 되짚게 된 그는 남몰래 아파트 단지의 쓰레기통을 뒤지며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어떤 사람이 먹은 것, 산 것, 쓴 것, 그리고 버린 것을 통해 그의 삶을 유추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요즘 KBS2 예능 프로그램 <인간의 조건>을 보면서 <곰팡이꽃>을 떠올린다. 그리고 무엇이 나를 규정하냐는 질문을 자주 품게 된다.

<인간의 조건>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필수품이 정말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것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조건'을 되짚어보는 프로그램이다. 휴대폰, 자동차, 돈과 같이 없으면 불편하거나 나아가 생활이 제대로 영위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 없이 살기에 도전하며 그것이 정말 의심할 여지없는 필수품인가 반문한다. 그리고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고 산지에서 직접 구한 음식만 먹으면서 '나의 행동이 나의 삶을 규정한다'는, 단순하지만 우리가 쉽게 간과하며 살아가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휴대폰, 자동차는 물론 돈이 없는 삶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 그것들이 없을 때 수반되는 불편함이 매우 커서일 뿐만 아니라, 문명의 발달과 그로 인한 수혜에 익숙해지면 그것이 없었던 시절을 굳이 상상할 필요가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설명하듯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가, 그것을 포기했을 때 어떤 모습일 수 있는가 역시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드러낸다.

▲ <인간의 조건> 출연진.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양상국, 정태호, 김준현, 김준호, 박성호, 허경환. ⓒKBS

돈 없이 살기에 도전한 <인간의 조건>의 여섯 멤버들이 돈을 버는 방식과 돈을 사용하는 방식은 이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그들이 선택하는 노동의 종류와 제한된 돈으로 하루를 보내는 방식에 나 자신을 대입시키면서 나 역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어떤 것을 참을 수 있고 또 참을 수 없는 사람인지 자문해볼 수 있었다.

정규 편성 후 첫 체험 과제였던 '쓰레기 없이 살기'와 이번 과제 '산지 음식만 먹고 살기'는 한층 더 직접적이다. '쓰레기 없이 살기'에서 제작진은 멤버들 몰래 그들이 버린 쓰레기를 모아서 보여주었다. 눈앞에 등장한 온갖 생활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 더미 앞에서 여섯 남자는 매우 놀랐다. 시청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조건>은 이 체험에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쓰레기, 줄일 수 있는 쓰레기라는 측면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를 확장해보면 쓰레기는 버려지기 직전까지는 내가 산 것, 내가 쓴 것, 내가 먹은 것 자체다. 즉 나의 생활이 나아가 삶의 방식과 태도가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이다. 멤버들이 체험 과제를 알기 전 평상시와 다름없이 생활하면서, 즉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생활의 결과로 만들어낸 쓰레기의 양은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였다.

'산지 음식만 먹고 살기' 체험 과제는 원산지에서 생산자를 확인한 음식을 직접 구해 먹는 것이다. 체험 1일차에 멤버들은 쌀과 계란, 채소 등 먹거리를 직접 구하느라 고군분투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을 되짚어 보고 직접 산지에 찾아가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수확하는 과정에서 '푸드 마일리지'(식품이 생산, 운송, 유통 단계를 거쳐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는 과정에서 소요된 거리. 식품 수송량과 이동 거리의 곱으로 계산) 개념을 소개하며 음식을 섭취하는 데 있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현대 사회의 삶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맛있고 건강한 음식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이번 체험은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를 구성한다는 전제 위에서 가능하다. '맛있고 건강한 음식'이 건강한 생활과 삶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되짚고, 이 '맛있고 건강한 음식'의 조건과 이를 우리 삶에서 가질 수 있는 방식과 그로 인한 결과를 고민하게 한다.

"힘들었지만 생각하는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체험 1일차를 마친 박성호가 한 이 말은 지금 <인간의 조건>이라는 프로그램의 장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너무 바쁘고 너무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는 습관적으로 또는 어쩔 수 없어서 하루하루를 익숙한 방식으로 보낸다. 쉽게 차를 타고 쉽게 쓰레기를 만들고 쉽게 음식을 남긴다. 차를 타지 않고 음식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누군가 지적하고 보여주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애써 외면했던 모습이고, 깨닫고 난 뒤에도 쉽게 바꾸기 어려운 일들이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이 보여주듯이 "힘들지만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삶이 변화하고 나아가 공동체의 변화로 이어지는 가능성이 태어난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인 탓에 더 큰 문제 제기나 민감한 지점을 다루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이를테면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는 화두를 실제 우리의 삶으로 가져왔을 때, 이것을 실천하는 데 있어 경제력의 문제가 큰 부분임을 간과할 수 없다. 중국산 채소를 먹고 미국산 고기를 먹는 많은 사람들이 비단 '푸드 마일리지'의 개념을 몰라서 혹은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건을 질문하는 <인간의 조건>은 앞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애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는 바는 인간이라는 한 단어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층위의 사람들과 그들의 형편까지 간과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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