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말년 병장' 최종훈의 미간이 찌푸려질수록, '사이코' 김호창 상병의 목소리가 무거워질수록, 어리바리한 이용주 이병의 눈빛이 방향감각을 잃고 흔들릴수록 시청자들은 그 상황이 재밌기만 하다. 군필자에게는 tvN <응답하라 1997>만큼의 추억팔이가 되고, 군대 문화가 생소한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코믹한 시트콤이 바로 <푸른거탑>이다.
기본 바탕에는 리얼한 경험담들이 존재하지만 <푸른거탑>은 사실상 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시트콤이다. 매 회 (병사들에게만) 다이내믹한 에피소드가 발생하고 그 안에서 병사들의 관계가 드라마틱하게 꼬인다. 최근 방영된 MBC <진짜 사나이>가 연예인들의 리얼한 병영체험을 담아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면, 그동안의 <푸른거탑>은 '리얼'보다는 '코믹'에 방점을 찍었다.
▲ 군대 시트콤 <푸른거탑> ⓒtvn |
그러나 음주운전 논란으로 최종훈이 잠시 하차하면서 <푸른거탑>에도 리얼한 서사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극 중 영창을 갔다 온 최종훈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의미로 이등병 헤어스타일, 잔뜩 얼어있는 표정, 어색한 웃음, 후임들을 향한 한없이 다정한 말투로 부대에, <푸른거탑>에 복귀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하며 불특정 다수에게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외치는 최 병장의 모습은 현실 속 최종훈의 감정과 맞닿아있다. 최종훈의 개인사가 시트콤에 들어오면서 <푸른거탑> 특유의 '웃픈' 이야기는 절정에 다다르고, 최종훈의 억울한 캐릭터도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영창을 가기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도 수십 번 '젠장!!'을 입에 달고 살던 최 병장은 PX가 공사 중이라는 소식에 살짝 욱하지만 애써 이성을 되찾는다. 궂은일도 묵묵히 하며, 후임들에게 화내는 대신 "힘들어도 참아"라는 격려를 보낸다. 물론 "젠장!! 말년에 00라니"라는 유행어가 나오지 않도록 이를 꽉 깨문 채 말이다. 그러나 결국, 방송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최 병장의 입에서는 시원한 "젠장"이 튀어나왔다. 이로써 10분 전까지만 해도 기죽어 있던 최 병장은 온데간데없이 자연스럽게 3소대에, <푸른거탑>에 합류하게 된다.
의도한 일은 아니었지만, 최 병장의 하차와 복귀는 <푸른거탑>의 에피소드를 더욱 다양하게 만들었다. 사실 "젠장!! 말년에 00라니"라는 유행어가 매 회 반복되고, 최 병장의 억울한 캐릭터가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한 때였다.
최 병장의 복귀 에피소드는 최 병장과 후임들의 관계를 역전시켰다. 그동안 최 병장이 "젠장!! 말년에 00라니"라는 말을 내뱉었던 이유는 혹한기 훈련을 비롯한 상황적 요인이 컸지, 후임들과의 관계에서는 늘 최 병장이 우위를 점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고, 뛰는 병장 위에 나는 후임이 있는 법이다. 최 병장이 영창에서 돌아오면 자신들을 어떻게 골탕먹일지 뻔히 아는 후임들은 사전에 모든 것을 차단했다.
후임들의 꾀에 당황한 최 병장, 훈훈한 제대파티를 받기 위해 '훈남 병장' 모드로 변신해 새파란 신병에게 입 냄새 지적까지 받는 최 병장. 시청자, 특히 여성 시청자들의 눈에는 '굳이 저렇게까지 목숨을 걸 필요가 있나' 싶을 만큼 사소한 일이다. 그러나 부대 내 고양이를 소탕하라는 행보관의 말에 눈 하나 깜박하지 않던 병사들도 '포상휴가'라는 말 한마디면 미친 듯이 승부욕을 발휘하는 곳이 바로 군대다. 그들이 내무반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고, <푸른거탑>이 군대를 배경으로 한 시트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수한 배경 덕분에 더 큰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최 병장에게 제대파티란, 자신의 지난 2년을 증명하는 시간이자 후임들의 충성심을 테스트하는 기회인 것이다. 그만큼 자존심이 걸린 중요한 일이다. 결국 후임들에게 온갖 수모를 겪으며 "젠장!! 말년에 스트레스성 탈모라니"를 외쳤지만. 어쨌든 무사히 영창 다녀온 것을 축하한다, 최종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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