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협의체가 합의점을 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되레 한국전력의 보고서 대필 의혹과 날치기 강행 논란까지 낳으면서, 한국전력과 대책위원회 간의 갈등은 더욱 격화했다.
'밀양 765킬로볼트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는 즉각 논평을 내고 "전문가 협의체 내부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합의가 없었음에도, 표절·대필 의혹이 제기된 보고서를 밀어붙이기식으로 작성·제출했다"고 반발했다.
대책위원회는 "이는 전문가들이 직접 검토하고 토론을 통해 합의하에 제출된 보고서가 아니므로 국회는 이를 심의·채택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보고서는 국회의 취지를 정면으로 배반하고 국회와 국민, 밀양 주민들을 모독한 것이므로 한국전력 추천 위원들과 백수현 위원장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회의실에서 백수현 밀양 송전탑 건설 관련 전문가 협의체 위원장이 '우회 송전 가능 여부 등에 대한 검토 결과 최종 보고서'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
40일간 가동키로…제대로 된 회의 한번 못 해
지난 5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전력 추천 3인, 대책위원회 추천 3인, 국회 추천 3인(여당 1인, 야당 1인, 여·야 합의 1인) 등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전문가 협의체를 가동키로 했다.
전문가 협의체는 애초 40일간 조사 활동을 벌인 후 합의 하에 최종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었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해결 방안을 권고하면 양측 모두 이를 따르겠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전문가 협의체는 제대로 논의를 진행해 보지도 못한 모양새다. 파열음은 전문가 협의체가 활동에 들어간 지 14일 만에 새어 나왔다.
지난달 18일 야당 추천 위원(석광훈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과 대책위원회 추천 위원 (김영창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겸임교수,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은 한국전력이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논의를 진전할 수 없다고 기자 회견을 열어 항의했다.
급기야 5일, 이들은 한국전력 추천 위원들이 한국전력의 보고서를 그대로 베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단순한 표절을 넘어 한국전력이 위원들의 보고서를 대필해줬다는 정황 증거까지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같은 날 열린 회의에서는 위원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는 등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8일로 활동 시한 종료를 맞는 전문가 협의체가 파행에 이르렀음이 가시화됐다.
'이메일 투표'에 '날치기'논란 일어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대책위원회가 7일 발표한 바로는, 5일 열렸던 회의에서 백수현 위원장이 에이포(A4) 용지 1장에 전문가 협의체가 다루고 있는 3가지 의제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하자는 긴급 제안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참관인으로 참석한 주민들은 "수천 명의 목숨이 달린 일을 OX 퀴즈 하듯이 처리하자는 것이냐"며 격렬하게 반발했고 대책위원회 추천 위원 중 일부는 아예 이 종이를 찢어버렸다.
그러나 6일, 백수현 위원장은 이메일을 통해 위원들에게 다시 서면 투표를 요청했다. 국회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이메일에는 △기존 선로의 용량 증설 가능 여부 △기존 선로를 통해 신고리 3·4호기에서 생산한 전기를 보낼 수 있는지 △건설 중인 간선 노선(신양산~동부산, 신울산~신온산)과 기존 선로의 연결 가능 여부에 대한 의견을 묻는 문항이 기재됐다.
대책위원회는 이를 "날치기"로 규정하고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렇듯 활동 종료 전날까지도 양측 사이의 갈등은 격화했기 때문에 합의된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지 못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백수현 위원장이 독단적으로 전문가 협의체 명의의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결국 공은 국회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국회 산업통상위원회는 9일 통상·에너지소위원회를 열어 대안을 논의하고 11일에는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대책위원회와 야당 추천 위원들은 9일 오전 긴급 기자 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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