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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나간' 이야기로 작가 대접 받기!

[금정연의 '요설']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 끼호떼> ①

☞금정연의 '요설-우스운 소설들의 계보' 전회 바로 가기

<제5장>
위대한 세르반테스의 꼬여버린 족보와 그의 사려 깊은 친구가 들려주는 탁월한 조언에 대한 이야기


한가로운 독자여, 내가 이 책을 내 지능의 아이로서 상상할 수 있는 한 어디까지나 아름답고, 고아하고, 교묘하고, 치밀한 것이 되어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이 자리에서 새삼 맹세치 않더라도 믿어주실 줄 안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 모든 것은 자기를 닮은 것밖에 낳지 않는다는 이 자연의 법칙에는 마침내 나도 역시 거역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 빈약하고 도무지 교양 없는 나의 재지가, 마치 모든 불편이 우쭐대고 모든 쓸쓸한 소리의 거처인 감옥 안에서나 태어난 것처럼 메마르고, 여위고, 요령부득인데다가 잡동사니를 긁어모은, 일찍이 누구 하나 생각지도 못한 사고에 찬 아들과도 비유할 수 있는 이야기 이외에, 대체 무엇을 낳을 수가 있었을까? (<돈 끼호떼>(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김현창 옮김, 범우사 펴냄) 20쪽)

하지만 세르반테스는 돈 끼호떼의 아버지가 아니다. 적어도 그의 주장은 그렇다. 그는 굳세고 가련한 기사 돈 끼호떼를 세상에 내보내며 신중하게도 그를 낳은 가상의 아버지를 함께 창조한다. 역사가인 씨데 아메떼 베넨헬리가 남긴 '재기 넘치는 시골 귀족 돈 끼호떼 데 라 만차'의 실록을 자신은 그저 다듬어 소개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르반테스는 그의 주장대로 돈 끼호떼의 계부인가? 씨데 아메떼 베넨헬리의 아버지이자 돈 끼호떼의 할아버지인가? 아니면 두 사람 모두의 아버지인가? 시작부터 족보를 꼬아놓은 세르반테스는 모른 척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랑하는 독자여, 두 눈에 거의 눈물마저 머금고 이 내 자식 속에서 당신이 깨달으시는 수많은 결점을 용서하거나 관대히 봐주십사고 부탁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 아이의 친척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며, 당신 자신의 몸속에 버젓이 자기의 정신을 가졌고, 무엇 하나 흠잡을 데 없는 확고한 자유의사를 가졌으며, (…) 당신은 이러한 일체의 것으로부터 제재를 받는 일도 없고 보면, 이 이야기에 대해서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깡그리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더욱이 비방했다고 해서 비난받을 두려움도 없고 칭찬했다고 해서 별로 보상받는 일도 없는 것이다. (21쪽)

▲ <돈 끼호떼>(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김현창 옮김, 범우사 펴냄). ⓒ범우사
그러니 그렇게 하자. 비난받을 두려움도, 보상에 대한 기대도 없이 돈 끼호떼의 이야기에 대해서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깡그리 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이다. 비난할 거리를 찾으며, 행여 찾지 못한다고 한들 보상을 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이 이 글을 읽는 것, 그것은 당신의 일이다.

우연히 발견한 돈 끼호떼의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하려는 세르반테스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다. 그를 괴롭게 하는, 심지어 "그토록 고매한 기사의 여러 가지 무훈의 공개 그 자체를 그만둬버릴까" 생각하게 만드는 고민은 이렇다. "창의도 없고 문체도 빈약한 데다 사상도 희박하며, 박식도 학식도 결여되어 내가 보는 다른 서적처럼 난외의 인용구도 없고 권말에 주석도 없는" 이야기를 뻔뻔하게 들고 나타난다면 세상의 많은 선생님들이며 박사님들이 대체 뭐라고 할까? 권두에 실을 "공작, 후작, 백작, 사교, 귀부인 혹은 매우 이름난 시인의 소네트"도 없는데?

그런 세르반테스에게 친구는 말한다. 여보게, 이 사람아, 권두에 실을 거창한 소네트들이라면 자네가 직접 지은 후 적당하고 그럴 듯한 이름들을 붙여주면 될 것 아닌가? 계속해서 그는 괴로워하는 작가는 물론, 오늘도 마감에 시달리고 있을 대한민국의 수많은 원고 저술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용한 몇 가지 조언을 들려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운이 없다면, 그러니까 저술업자의 하나로 빈사 상태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면 다음의 조언에 반드시 귀를 기울이기를. 만약 당신이 전능한 소비자의 권리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행복한 독자라면 자비로운 당신의 신께 감사를 드리되 너무 자만하지는 마시길. 운명의 여신이 언제 변덕을 부려 끝없는 마감의 무간지옥으로 당신의 등을 떠밀지 모르니. 특히 '요설'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더욱 조심할 일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많이 웃고, 좋은 음식을 먹어두시라. 그것들이 당신의 인생에서 예고도 없이 사라지는 날이 오더라도 너무 후회하지는 않을 수 있도록.

* 재지(才智) 넘치는 세르반테스의 친구가 세상 모든 원고 납품업자들에게 전하는 탁월한 충고와 서평자의 잔머리가 괄호 안에 덧붙인 몇 가지 것들

1. 이야기에 삽입할 격언이나 문구를 인용할 때는 기억하고 있거나 혹은 찾는 데 그다지 시간이 안 걸리는 격언이나 라틴어 문구가 꼭 들어맞도록 궁리할 것. (혹은 검색을 통해 이런저런 블로그들에 잘 정리되어 있는 위인들의 명언이나 영어 속담, 인용문을 참고할 것.)

2. 주석이 필요하다면 주석을 달기 쉬운 단어를 사용할 것. 이를테면 이야기에 골리아스라는 이름의 거인을 등장시켜 '거인 골리아스 또는 골리앗. 블레셋 사람으로서 양치는 다윗이 돌로 쳐서 엘라 골짜기에 쓰러뜨렸음. 사무엘 상 제17장의 기록에 의함'이라고 쓸 것.

3. 인문학이나 우주학에 조예가 깊다는 것을 뽐내고 싶다면 이야기 속에 따호 강의 이름을 들 것. (이것은 당대 스페인의 문화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이므로 따호 강은 잊고, 사회와 정치에 조예가 깊다는 것을 뽐내기 위해 4대강이나 세빛둥둥섬을 언급할 것.)


4. 책의 마지막에 실을 참고문헌과 저자들의 목록이 필요하다면 A에서 Z까지 최대한 많은 이름을 나열한 책을 찾아 그것을 고스란히 가져올 것. 방대한 목록이 달리 소용은 없다고 해도 책에 생각지 않던 권위를 부여해줄 수 있음을 기억할 것. (그런 책을 찾는 것조차 귀찮다면, ㄱ에서 ㅎ까지 무려 열 쪽에 달하는 방대한 목록을 나열하고 있는, 그럼에도 어떤 권위도 얻지 못한 <서서비행>(금정연 지음, 마티 펴냄)이라는 책을 살펴볼 것 —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네 번째 충고만은 절대 잊지 말 것.)

사려 깊은 친구는 소심한 우리를 위해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설혹 그것이 틀려서 학식을 보란 듯이 코끝에 내걸고 다니는 선생님들이나 엉터리 박사들이, 그 일로 자네를 헐뜯고 덤비거나 왁자하게 떠들어댄다고 하더라도 그야말로 눈썹 하나 꿈쩍할 것 없지 않은가? 아무리 그 인간들이 자네의 엉터리를 캐냈다고 하더라도 설마 그것을 쓴 자네의 손을 잘라버릴 수는 없을 테니 말일세." (23쪽)

하지만 세르반테스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무려 열한 개나 되는 거창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소네트를 서두에 실은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는 돈 끼호떼가 사랑한 기사도 소설의 주인공들이 라 만차의 기사를 위해 보낸 소네트를 비롯, 돈 끼호떼의 사랑 둘씨네아 델 또보소에게 보내는 공주의 소네트와 위대한 기사의 종자가 산초 빤사에게 보내는 소네트, 그리고 '잡동사니 시인의 장난꾸러기'가 애마 로시난테에게 보내는 시까지 실어 자신의 책에 엄청난 권위를 부여하지만, 순진한 독자들을 속이기 위한 다른 기술은 거부한다. 돈 끼호떼의 이야기에 그런 잔재주는 필요 없다는 친구의 충고 덕분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사도 책에 대한 공격이거든. 그런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꿈에도 생각지 않던 일이고, 성 바실리우스도 언급한 적이 없으며, 키케로조차 몰랐단 말일세. (…) 게다가 자네의 이 저작은 기사도에 관한 서적이 세상이나 속인들 사이에 갖고 있는 권위와 세력을 타도하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은 없으니까, 굳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철학자들에게는 잠언(箴言)을, 성서로부터는 조언을, 시인들에게는 우화를, 수사학자 제공들에게는 문장을, 성자들에게는 기적을 구걸할 필요는 전혀 없네." (26쪽)

그리하여 '재기 넘치는 시골 귀족 돈 끼호떼 데 라 만차'의 이야기는, 우리가 보는 지금 모습 그대로,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기사도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정신이 살짝 돈 시골 귀족의 이야기, 거침없지만 내 종자에게는 따뜻한 편력기사의 지금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모험담, '우수에 찬 얼굴의 기사'의 슬픈 전설, 낭만주의의 영웅이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패배자의 필요 이상으로 세세한 기록, 그리고 성마르고 홀쭉한 주인과 통통한 종자의 세기적인 브로맨스(bromance)가…

우리의 이야기 또한 여기에서 시작한다. 갈 길이 머니 신발 끈을 미리 꽉 조여 놓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길을 떠나기 전에 이 자리에 서서 잠깐 쉬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늘 마감과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가련한 서평가가 마침 이쯤에서 제5장을 마치기로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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