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도 아니고 청사진도 아닌, 고작해야 몇 권의 책에서 뽑아낸 어떤 흔적들의 나열에 불과한 그것은 만족이라는 다분히 자기 기만적인 단어의 의미에만 부합하는 만족, (단서를 모으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해석에는 실패한 탐정처럼) 스스로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실제로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 분명한 가상적인 만족이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종종 그러하듯이, 이 자리에 멈추어 선 채 자기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 중얼거리는 것이다. 만족하려 한다, 라고. 마치 그것이 순전히 양의 문제이기라도 한 것처럼, 반복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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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발표된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김희영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은 하나의 선언으로 시작한다.
모든 것은 다음과 같은 원칙에서 출발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단순히 어떤 증세가 있는 환자로 환원시켜서는 안 되며, 오히려 우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비실제적인 것, 다시 말하면 다루기 힘든 것(intraitable)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원칙 말이다. 이렇게 하여 사례를 들지 않고 오로지 일차 언어의 (메타 언어가 아닌) 행위에만 의존하는 '극적' 방법이 선택되었다. 사랑의 담론을 묘사하는 것은 그 가상(simulation)으로 대체되었고, 분석이 아닌 언술 행위(énonciation)를 무대에 올려놓기 위하여 이 담론에서는 그 근본 주체인 '나'가 복귀되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제시된 것은 하나의 초상화이다. 그러나 이 초상화는 심리적인 것이 아닌 구조적인 것이다. 그것은 말(parole)의 자리를 읽게 해준다. 말하지 않는 그 사람(사랑의 대상) 앞에서 혼자 마음속으로 사랑스럽게 말하는 그 누군가의 자리를. (<사랑의 단상>, 11쪽)
그리고 그 선언은 어머니를 잃고 바르트가 남긴 짧은 기록을 모은 <애도 일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단순히 몇 개의 단어를 바꾸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를테면 "애도하는 사람을 단순히 어떤 증세가 있는 환자로 환원시켜서는 안 되며", "그것은 말의 자리를 읽게 해준다. 말할 수 없는 그 사람(애도의 대상) 앞에서 혼자 마음속으로 필사적으로 말하는 그 누군가의 자리를" 같은 식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틀 후의 일기를 바르트는 이렇게 썼다.
그러나 별로 반갑지 않은 위안들. 애도는, 우울은, 병과는 다른 것이다. 그들은 나를 무엇으로부터 낫게 하려는 걸까? 어떤 상태로, 어떤 삶으로 나를 다시 데려가려는 걸까? 애도가 하나의 작업이라면, 애도 작업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속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도덕적 존재, 아주 귀중해진 주체다. 시스템에 통합된 그런 존재가 더는 아니다. (1977년 10월 27일, <애도 일기>, 18쪽)
▲ <애도 일기>(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이순 펴냄). ⓒ이순 |
사랑과 애도를 병의 대척점에, 같은 자리에 위치시키는 바르트의 말은 "우리가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있을 때, 그에 대한 애도도 이미 시작된 것"이라는 자크 데리다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사랑의 단상>에 이미 등장하는 부재에 관한 절들을 보라.
나는 부재하는 이에게 그의 부재에 관한 담론을 끝없이 늘어놓는다. 이것은 요컨대 놀라운 상황이다. 그 사람은 지시물(référent)로는 부재하지만 대화 상대로서는 현존한다. 이 이상한 뒤틀림으로부터 일종의 감당하기 어려운 현재가 생겨난다. 나는 지시의 시간과 담화의 시간 사이에 처박혀 꼼짝 못한다. 당신은 떠났고(그 때문에 내가 괴로워하는), 또 당신은 여기 있다(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있으므로). 그러면 나는 현재가, 이 어려운 시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고뇌의 순수한 한 편린이다.
부재는 지속되고, 나는 그것을 견디어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부재를 조작하려 한다. 시간의 뒤틀림을 왔다갔다하는 행동으로 변형시키거나, 리듬을 산출하거나, 언어의 장면을 열고자 한다(언어는 부재에서 태어난다. 아이는 실패를 가지고 장난한다. 어머니의 외출과 귀가를 흉내내며 실패를 던졌다 붙잡았다 한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창출된 것이다). 부재는 하나의 능동적인 실천, 분망함(affairement)(다른 일은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이 된다. 다양한 역할(의혹, 비난, 욕망, 우울)이 등장하는 허구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런 언어의 연출은 그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아이가 어머니의 부재를 여전히 믿고 있는 시간과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시간 사이에는 극히 짧은 차이밖에 없다고 한다. 부재를 조작하는 것, 그것은 이 순간을 연장하려는, 그리하여 그 사람이 냉혹하게도 부재에서 죽음으로 기울어질지도 모르는 순간을 되도록 오래 늦추려는 것이다. (<사랑의 단상>, 30~31쪽)
마치 어머니의 죽음을 예언하기라도 한 듯한 그 절들은 <애도 일기>에서 좀 더 생생한 언어로 반복된다.
춥다, 밤이다, 겨울이다. 나는 집 안에서 따듯하지만, 그러나 혼자다. 그리고 이런 밤에 나는 다시 깨닫는다. 이제 나는 이런 외로운 밤을 아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걸, 이런 고독 속에서 행동하고 일하기, 그러니까 저 "부재의 현전"과 달라붙어서 늘 함께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1977년 11월 28일, <애도 일기>, 79쪽)
결국 <사랑의 단상>에서 바르트가 말하고 있는 사랑은 애도와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사랑이며, 애도다.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 의식했건 그렇지 않았건) <사랑의 단상>을 쓰며 어머니의 죽음을,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끔 부재를 잘 견디어낼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된다. '소중한 이'의 떠남을 감수하는 '모든 사람'의 대열에 끼게 되는 것이다. 일찍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있도록 훈련된 그 길들이기에 나는 능숙하게 복종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던(거의 미칠 지경이었던) 그 길들이기에. 나는 젖을 잘 뗀 주체처럼 행동한다. 어머니의 젖가슴이 아닌 다른 것으로 그 동안 양분을 취할 줄도 안다.
이 잘 견디어낸 부재, 그것은 망각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간헐적으로 불충실한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망각하지 않는다면 죽을 것이기에. 가끔 망각하지 않는 연인은 지나침, 피로, 추억의 긴장으로 죽어간다(베르테르처럼).
(어렸을 때 난 잊어버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멀리 일하러 간 그 기나긴 버려진 나날들을. 저녁마다 어머니를 마중하러 세브르-바빌론 버스 정류장에 나가곤 했다. 버스는 여러 대 지나갔지만 그 어느 것에도 어머니는 없었다.) (<사랑의 단상>, 28~29쪽)
하지만 현실로 다가온 어머니의 죽음에, 그 완벽한 부재에 그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다. 그것은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니다. 매번 새롭게 일어나는(경험되는) 일이고, 매번 새롭게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운 일이다.
모로코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가면서 마망이 누워 있던 자리에 남겨진 꽃을 치운다—그러자 다시 나를 사로잡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그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 위니코트가 했던 말은 얼마나 진실인가 : 이미 일어났었던 일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더 분명한 사실은 : 즉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일에 대한 두려움. 다름 아닌 이 두 사실이 궁극적으로 끝나버린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다. (1978년 7월 9일, <애도 일기>, 168쪽)
그는 <사랑의 단상>에서 이미 그러한 자신에 대해 예견한 바 있다.
정신병 환자는 붕괴의 공포 속에 산다고 한다(이 이외의 증세는 방어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 "붕괴에 대한 임상적인 공포는 이미 체험한 적이 있는 붕괴에 대한 공포이다(원초적인 고뇌Primitive agony). (…) 그러므로 때에 따라서는 이런 붕괴에 대한 공포가 그의 삶을 침식해가는 환자에게, 이 붕괴가 이미 일어난 적이 있다는 것을 말해줄 필요가 있다." 사랑의 고뇌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사랑의 출발점, 내가 매혹되었던 그 순간부터 이미 치러졌던 한 장례에 대한 공포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마세요. 당신은 이미 그를(그녀를) 잃어버렸는걸요."라고. (<사랑의 단상>, 49쪽)
그렇다고 그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르트에게 있어 어머니의 죽음은, 단순한(이런 말은 가능하지 않겠지만) 죽음을 넘어, 그 자신의 존재를 근본부터 위협하는 사건이었다.
"죽음이란 특히 이런 것이다 :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것. 우리가 인지해왔던 것으로부터의 장례." 이렇게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말하는 그 짧은 순간, 나는 마치 죽어가는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은 납으로 만든 인물, 말하지 않는 꿈의 형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꿈속에서의 침묵이란 곧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가? 또는 내게 거울을, 이미지를 보여주며 "이것이 바로 네 모습이란다"라고 말하는 자비로운 어머니? 그러나 침묵중의 어머니는 내가 누구인가를 말해주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근거가 없는, 고통스럽게 떠돌아다니는, 내 존재마저도 상실한 인간이다. (<사랑의 단상>, 228쪽)
바르트에게 어머니가 어떤 존재였는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하나의 기록.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는 마락(Marrac)이라고 불리는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 동네에는 건축 중인 집들이 엄청나게 많았고, 그 공사 현장에서 아이들이 놀곤 했다. 건물의 기초로 사용되기 위하여 점토질의 지면에 커다란 구멍이 몇 개 패어 있었다. 어느 날, 그 구멍들 중 하나 안에서 놀고 있다가 아이들은 나만 제외하고 전부 기어 올라가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올라가지 못한 것이었다. 땅 위 높은 곳에서, 그들은 '게임에 졌어! 혼자야! 보기 좋네! 제외되었어!'라고 소리치며 나를 놀렸다(제외된다는 것은 밖에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멍 안에 혼자 있다는 것', 하늘은 열려 있는데 갇혀 있다는 것, '폐쇄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때 나의 어머니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나를 그곳으로부터 끌어낸 후 아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데리고 갔다. 그들에 대항하여. ('어린 시절의 추억',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이상빈 옮김, 강 펴냄), 174~175쪽)
그에게 어머니는 하나의 세상이었다. 세계에서 제외된 그가 속할 수 있었던 유일한, 그러나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던 완벽한 세상. 이제 그에게는 자신이 평생 동안 매혹 당했던 글쓰기의 세계까지 오직 어머니의 존재를 통해서만 의미를 갖는다.
나에게 온 편지들 안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기분 좋은 사실 : 많은 이들이(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기록을 하는 건 기억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이렇게} 기록을 하는 건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다. 아무것도 자기를 이겨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 고통을.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없는 그런 것.
"기념비"의 필연성.
Memento illam vixisse. (그녀가 살았었음을 기억하라) (1978년 4월 12일경, <애도 일기>, 123쪽)
물론 그것은 그 자신을 위한 "기념비"는 아니었다.
죽은 뒤의 일에 대해서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내 글들이 나의 사후에도 계속 읽혀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다(M.을 위해서라면 경제적인 면을 고려해야겠지만).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각오가 되어 있고, "기념비"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그러나 마망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견딜 수가 없다(그건 아마도 그녀가 글을 쓴 적이 없고, 그래서 내가 없으면 그녀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1979년 3월 29일, <애도 일기>, 244쪽)
그래서 바르트는 <밝은 방>을 쓰기 시작한다. 그가 분석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한 장의 사진(젊은 시절 어머니가 찍힌)을 보기 위해서, 그 의미를 자기 자신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무엇보다 잊지 않기 위해서, 다시 만나기 위해서—바로 그의 어머니를 위해서.
한 장의 사진을 사랑할 때, 또는 그 사진이 나를 어지럽힐 때, 나는 그것 때문에 머뭇거린다. 그 사진 앞에 머물러 있는 동안 내내, 나는 무엇을 하는가. 마치 그것이 보여주는 사물 혹은 사람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것을 바라보고 탐색한다. 온실 뒷 구석에 망연히 서 있는 어머니의 얼굴은 흐릿하고 창백하다. 나는 불현듯 소리쳤다. "어머니다! 참으로 어머니다! 마침내, 나의 어머니다!" (<카메라 루시다>(조광희 옮김, 열화당 펴냄),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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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널-사랑해란 말에는 뉘앙스가 없다. 그것은 설명이나 조정, 정도, 조심성 등을 삭제해버린다. 언어의 엄청난 역설이긴 하지만 난-널-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말(parole)의 어떤 연극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리고 그 말은 항상 진실이다(그것의 발화 이외에는 어떤 다른 지시물도 갖지 않는, 즉 수행어(performatif)와도 같은 것이다)라고 하는 것과도 같다.
난-널-사랑해에는 다른 곳(ailleurs)이 없다. 그것은 다이애드(dyade)(모성적인, 사랑스런)로 된 단어이다. 어떤 거리감도 뒤틀림도 그 기호를 분리하러 오지 않는다. 그 말은 그 무엇의 은유도 아니다.
난-널-사랑해는 문장이 아니다. 그 말은 어떤 의미도 전달하지 않으며, 다만 하나의 제한된 상황에 집착해 있을 뿐이다 : "즉 주체가 그 사람에 대한 성찰의 관게에 정지되어 있는 상황" 말이다. 그것은 일문일어(holophrase)의 문장이다. (<사랑의 단상>, 200쪽)
아마 '난-널-애도한다'라는 말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바르트는 어느 날의 <애도 일기>를 "이 메모를 하면서, 내면의 진부함에게 나는 나 자신을 모두 주어버린다"고 썼던 것이리라. 그것은 수없이 반복되어 진부할 대로 진부해진 말이지만, 그것을 내뱉는 이에게는 대체할 말을 찾을 수 없는, 찾을 필요조차 없는 진실이리라.
<애도 일기>에는 바르트의 눈물로 얼룩진 문장들이 가득하지만, 나는 부러 이 자리에 그것들을 옮기지 않았다. 그것이 무책임한 인용으로 채워진 누더기 같은 글을 쓰며 내가 내린 유일한 윤리적인 결정이다. 물론 나는 지금 윤리적이라는 단어를 가장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어떤 요약이나 설명보다, 그의 문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분명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 또한 없는 것은 아니다(믿음이라는 단어의 가장 기만적인 용례).
일종의 지진계와 같이 바르트 자신의 감정의 진폭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는 <애도 일기>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2년 후, 그러니까 1979년 9월 15일까지 이어진다. 그 가을의 마지막 일기를 바르트는 이렇게 쓴다.
1979년 9월 15일
슬프기만 한 수많은 아침들…….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반 년이 지나지 않은 1980년 2월 25일, 바르트는 작은 트럭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결코 치료되기를 원치 않았던 그는 한 달 뒤인 3월 26일 세상을 떠난다. 그의 바람대로라면, 그의 마망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적어도 그가 자신에게 던지던 곤란한 질문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곳으로.
그건 이런 질문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1977년 11월 28일, <애도 일기>,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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