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와 필립 로스는 헛기침을 했을지도 모른다. 2012년 노벨 문학상 발표 직전까지, 그 어느 해보다도 유명 소설가의 이름이 호사가의 입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10월 11일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 문학상 발표장에서 울려 퍼진 이름은 중국의 소설가 모옌(莫言)이었다. 모옌은 1955년 중국 산둥 성 가오미 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소학교 5학년 때 문화 대혁명을 맞아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해 농장과 공장 등지에서 일했다. 1976년 인민해방군에 입대 후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모옌은 1981년 단편 '봄밤에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로 데뷔했다. 이후 10여 편의 장편 소설과 수많은 희곡, TV 드라마 극본 등을 통해, 뛰어난 상상력과 능청스러운 유머로 중국 현대사와 민중의 삶을 묘파하며 자국민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모옌이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게 된 계기는 1988년 장이머우 감독이 그의 중편 소설 '붉은 수수'를 원작으로 한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그는 지금까지 중국 마우둔 문학상, 이탈리아 노니노 문학상,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등을 받았고 "중국의 윌리엄 포크너, 프란츠 카프카"로 불리면서 중국어권 작가 중 가장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어 왔다. 그리고 2012년, 모옌은 마침내 노벨 문학상 109번째 수상자이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첫 번째 중국 국적 작가가 되었다. 11일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에 대해 "판타지와 리얼리티, 역사와 사회를 폭넓게 조화시키면서, 윌리엄 포크너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복잡다단한 문학과 닮은 세계를 창조하는 동시에 중국 고전 문학과 구전 문학의 전통으로부터 또 다른 차별화 지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한림원 측은 또한 중국의 집에서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모옌이 "혼비백산할 정도로 무척 기뻐했다"고 전했다. 이번 '프레시안 books' 111호에서는 모옌의 <개구리>(심규호·유소영 옮김, 민음사 펴냄) 번역자이자 모옌의 벗이기도 한 심규호 제주국제대학교 교수(중어중문학과) 기고문을 소개한다. 심규호 교수의 글을 통해 모옌의 문학 세계에 대해 심도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개구리> 외에도 국내에서 현재 찾아볼 수 있는 모옌의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풀 먹는 가족>(박명애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사십일포>(박명애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박명애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인생은 고달파>(이욱연 옮김, 창비 펴냄), <달빛을 베다>(임홍빈 옮김, 문학동네 펴냄),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임홍빈 옮김, 문학동네 펴냄), <홍까오량 가족>(박명애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술의 나라>(박명애 옮김, 책세상 펴냄), <만사형통>(박재우 옮김, 민음사 펴냄). |
말하지 않는 이야기꾼
▲ 201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중국 작가 모옌. ⓒ민음사 |
본명은 관모예(管謨業), 모옌은 필명이다. '막언(莫言)'은 말이 없다는 뜻도 되지만 말하지 않는다, 또는 말해서는 안 된다는 뜻도 된다. 어찌 천하의 이야기꾼이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가? 왜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가? 추측컨대, 말이 아닌 글, 언어가 아닌 문자로 이야기를 하겠다는 뜻일 터이다.
그런데 말이 곧 글 아니던가? 아니다. 말은 말이고, 글은 글이다. 주어 담을 수 없는 말의 책임보다 한 번 써서 세상에 나오면 고칠 수 없는 글의 그것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공식석상에서 되도록 말을 아껴 침묵으로 대신하는 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책임의 막중함과 견제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현대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석에서 만난 모옌은 조곤조곤 말을 재미있고 흥미롭게 잘 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의 토양은 산동성 가오미(高密) 현 허야(河崖) 진, 다란(大欄) 향(鄕)이다. 가오미 현 동베이(東北) 향이 마치 그의 고향인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단편 소설 '백구와 그네(白狗秋千架)'에서 처음 나오기 시작하여 그의 최신작 <개구리(蛙)>(심규호·유소영 옮김, 민음사 펴냄)의 무대가 되기도 한 그곳은 실제 고향을 모델로 한 그의 문학적 고향이자, 심리적 지리 세계일 따름이다.
그는 그곳에서 태어난 후 잠시 소학교를 다니기 위해 떠났다가 문화 대혁명으로 인해 5학년 때 귀향하였는데, 일반적인 학교 교육에 물들기 전에 시골의 삶에 익숙해진 것은 오히려 그의 문학에 보탬이 된 듯하다. 가을이면 붉은 수수로 온 마을이 붉게 물들던 그곳은, 허나 낭만적이고 시심(詩心) 가득한 동심의 세계가 아니었다. 언젠가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기아와 고독은 나의 고향과 언제나 연관되어 있다. 어린 시절 배불리 먹지 못하고 따뜻하게 입지도 못하며 소나 양을 치면서, 나는 사방 어느 곳에서도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땅에서 외롭게 생존하였다. 이런 기아와 고독이 내 창작의 원천이다."
외로움은 글의 세계로 인도하는 첩경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기아는 참을 수 없는 욕구에 대한 절망이다. 끊임없이 말하고자 하는 "야성과 광기의 이야기꾼"의 글에 대한 욕망은 바로 이러한 가오미의 고독과 기아에서 배태되었다.
창인가 아니면 펜인가?
그는 인민해방군 출신의 작가이다. 1976년 군대에 들어간 그는 1981년 단편 소설 '봄밤에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春夜雨霏霏)'로 데뷔하였으며, 1984년 7월 해방군예술학원에 문학과가 개설되자 그곳에서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받았다. 물론 이후 북경사범대학, 노신문학원에서 수학하면서 석사 학위를 받았지만, 그에게 문학 습작과 학습의 공간을 허여한 것은 군대였다.
군대는 창이다. 그러나 그는 펜을 택했다. 군대는 인명 살상을 능사로 여긴다. 그러나 그는 생명의 부활을 꿈꾼다. 그가 꿈꾸는 생명은 때로 비장하게 영웅적인 최후를 맞이하거나(<붉은 수수 가족(紅高粱家族)>의 남자 주인공 위잔아오余占鰲처럼), 속죄와 참회 속에서 심지어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지만(<개구리(蛙)>의 여자 주인공 고모), 작가는 오히려 <풍만한 가슴과 퉁퉁한 궁둥이(豊乳肥臀)>에 나오는 '모친(母親)'처럼 굴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버티며 견고한 생명의 질긴 끈을 버리지 않는다. 민간, 백성들이 모여 살고 있는 그 사이에서 그들의 삶을 온전히 보여줌으로써 생명과 그 생명이 추구하는 질긴 욕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삶이란 인간의 본성의 드러남이다. 그렇다면 본성이란 무엇인가? 식(食)과 색(色), 그 처절한 욕망 아니던가?
모옌 스스로 누차 이야기했듯이 그의 관심은 사람이고, 그가 쓰는 것은 사람의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획생육(計劃生育 : 산아 제한. 중국 정부가 198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독생자녀(獨生子女 : 아이 하나 갖기)' 정책)이라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를 접근하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나는 아주 분명하게 내 자신에게 일렀다. 나는 중국의 계획생육의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쓰는 것이며, 소설을 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을 쓰는 것이라고. 나는 '사람을 똑바로 보고 쓰기'로 했다. 고모를 원형으로 하고 허구와 상상을 덧붙여 세계 문학에서 일찍이 출현한 적이 없는 인물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만약 그런 인물을 제대로 묘사한다면 소설은 성공한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실패한 것이다. 이렇게 쓴다면 계획생육은 역사적 배경이 될 것이고, 인물을 형상화하는데 필요한 것이 될 것이다."
아마도 그는 끝내 루쉰(魯迅)처럼 소설을 버리고 잡감문(雜感文)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마오둔(茅盾 : 본명 심덕홍(沈德鴻), 자는 안빙(雁冰))처럼 끝까지 소설의 붓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개구리>로 중국의 저명한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마오둔 문학상(제8회)을 받은 것도 일리가 있다. 이렇듯 모옌에게 소설은 루쉰처럼 날카로운 비수와 창이 아니라 그냥 소설이다.
비틀어 쓰기 : 현실과 환상
▲ <개구리>(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
소설이 지금의 우리들에게 흥취를 주는 것은 무엇보다 흥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모옌의 소설은 특이하다. 무엇보다 현대를 살면서 여전히 전근대적인 의식과 관습이 존재하는 곳의 이야기를 쓰기 때문에 그러하고, 때로 상상력이 지나쳐 독자를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맴돌게 하기 때문에 그러하며, 소설 속에 드러나는 삶의 모습이 절절하여 독자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주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의 쓰기 방식(이른바 서사 방식)에 있다.
모옌은 스스로 한 군데 국한되기를 거부했지만 굳이 현대 중국의 문학사조로 따져본다면, 1985년부터 다시 불기 시작한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선봉문학(先鋒文學 : 전위파, 아방가르드) 계열의 작가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물론이고 신시기 초기의 상흔(傷痕)과 반사(反思) 문학에서 벗어나 '삶의 문제'를 주제로 한 문학 본연의 사명으로 돌아가는 한편 '붉은 수수'의 경우처럼 전통적인 서술 방식보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나 마환주의(魔幻主義 : 판타지) 기법을 활용하고, 심지어 <인생은 고달파>(이욱연 옮김, 창비 펴냄)에서 볼 수 있는, 중국의 전통적인 소설 형식인 장회체(章回體)를 사용하는 등 새롭고 다양한 실험적인 형식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런가 하면 그의 초기작 '붉은 수수'나 <풍만한 가슴과 퉁퉁한 궁둥이>, <사십일포>(박명애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의 경우처럼 주로 한 시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 문학가로 평가되기도 하는데, 특히 '붉은 수수'는 문혁(文革) 이전의 혁명 역사 소설이 주로 직접 전투에 참가한 이들에 의해 창작되어 르포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것과 달리 보다 새로운 시각과 필법으로 역사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신역사주의 작가로 분류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중국 산동의 가오미 현을 중요 무대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향토 소설 또는 심근(尋根) 소설가로 볼 수도 있다. 그의 소설은 향토색이 짙으며, 걸쭉한 사투리며 지방 민속이 적지 않게 노출되어 있다. 이는 독자, 특히 외국 독자들에게 생경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불편을 주지만 반면 중국적 특색을 농밀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모옌 문학의 장점이 되기도 한다.
한 작가 또는 작품에 이처럼 다양한 사조를 갖다 붙일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 아마도 이는 그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생산해낼 수 있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일뿐더러 폭넓은 문학 세계에 침잠하여 다양한 문체나 서술방식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문학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문학 사조 면에서 어디에 속하든지 앞서 말했듯이 그가 소설을 통해 인성(人性)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예컨대 역사 소설의 경우, 역사는 주인공의 영혼과 감정, 운명의 변화를 표현하는 일종의 환경이자 배경일 따름이라는 뜻이다. 모옌 스스로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소설은 인성을 묘사할 뿐이며 감정을 묘사해야만 더욱 풍부해지고 영향 또한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이렇듯 복잡하고 미묘한 '인성' 묘사를 소설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인성'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붓 또한 현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실과 가상을 종횡으로 들고나며, 고금이 동시에 존재하며, 심지어 뜬금없는 환상의 세계가 펼쳐지기도 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다양성은 그가 가진 탁월한 상상력의 소산으로 내용의 풍부성과 맞물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야기를 끝내며
▲ <인생은 고달파>(전2권, 이욱연 옮김, 창비 펴냄). ⓒ창비 |
특히 그의 중편 소설 '붉은 수수(紅高粱)'를 영화화한 장이모 감독의 데뷔작 <붉은 수수밭(紅高粱)>이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 상을 수상하면서 공전의 히트를 쳤고, 이후 세계 문단에 널리 알려져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이탈리아 노니로 문학상,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대상 등 다양한 나라에서 그의 문학적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근자에 만해(萬海)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모옌을 중국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실력 있는 후보자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의 말대로 올해 노벨 문학상은 모옌에게 돌아갔다.
지난 해 어느 날 베이징에서 모옌을 비롯한 산둥의 작가 몇몇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모두 인민해방군 출신이었으며, 그 가운데 한 명은 현역으로 마오둔 문학상을 받은 이였다. 함께 자리했던 또 다른 작가 웨난은 모옌의 수상을 축하한다는 내 메일에 이렇게 답했다.
"아시아 문학의 굴기는 당연한 일이다. 다만 세월의 단련이 필요할 뿐이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 문학상 수상식에서 '나는 중국의 모옌과 한국의 김지하의 미래를 주시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번에 모옌이 상을 탔으니 이제는 김지하를 봐야할 것이다."
김지하를 좋아하는 인민해방군 출신의 작가, 그의 말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누구든 좋다.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그 일 때문에 흥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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