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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구원자, 그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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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구원자, 그를 버린다!

[마녀의 '도서관 편지'] <인간 실격>의 다자이에게

'마녀의 '도서관 편지''는 소설가이자 독서 칼럼니스트 김이경 씨가 새롭게 선보이는 편지 형식의 독서 칼럼입니다. 그는 <마녀의 독서 처방>(서해문집 펴냄), <마녀의 연쇄 독서>(후마니타스 펴냄) 등의 독특한 독서 칼럼집을 펴냈으며. 필명 '마녀'로 활동 중입니다. 새 글은 매달 첫째 주에 발행됩니다. <편집자>

첫 번째 편지 : <인간 실격>의 다자이 오사무에게

책을 인연 삼아 편지를 쓰겠다고 맘먹은 순간부터 처음은 당신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사랑한 첫 번째 작가, 나의 첫사랑이니까요. 열네 살 겨울 천둥처럼 다가왔던 존 스타인벡이나 고등학생 시절 영혼을 뒤흔들었던 표트르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차마 느끼지 못했던 은밀한 교감을 느끼며, 나는 당신을 '나의 작가'로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당신께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고 다시 당신의 글을 꺼내 읽으니 처음으로 쓰는 이 편지가 이별을 고하는 것이 되리란 생각이 듭니다. 첫 편지부터 이별을 말한다면 내가 너무 무정한 걸까요? 하지만 첫사랑은, 아니, 사랑은 어차피 한번 이별을 맞아야 하는 법. 이제야말로 당신을 떠나보낼 때임을 알기에 그 이별을 위해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당신을 처음 만난 날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스물넷, 학교를 졸업했으나 할 일을 찾지 못한 나는 대학가 조그만 가게에서 점원 노릇을 하였습니다. 학생들이 우르르 등교하는 시간에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저물녘까지 한 평 반 작은 공간을 지키고 있노라면 문득문득 명치께가 죄어들곤 했습니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 취업을 하고 진학을 한 친구들, 모두들 씩씩하게 제 길을 걸어가건만 왜 나는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다 막막한지 스스로가 처량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을 떠올린 것은 그때였습니다. 쇼윈도 너머로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을 보며, '차라리…' 하며 입술을 깨물곤 했지요. 아무의 의미도 되지 못하고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삶을 계속할 까닭이 무어냐고 자문자답하며 캄캄한 마음속에 죽음을 키워갔습니다.

바로 그 무렵 당신을 만났습니다. 아는 분이 도서관에서 빌렸다며 들고 온 <인간 실격>. 낡은 책장에 적힌 제목을 보자마자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읽기도 전에 반해서 책을 빌려달라고 졸랐지요. 그렇게 만난 당신의 책이 죽음에서 나를 구했다면 당신은 웃을까요. 자살한 작가의 실패한 인생 이야기에서 살아갈 희망을 찾았다니 지독한 농담이거나 한심한 오독이라고 기막혀 하지나 않을지….

하지만 우습게도 그것은 사실입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로 시작하여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로 끝나는 실격자 요조의, 아니, 당신의 고백에 나는 공감했고 처음으로 외로움을 잊었습니다. 인간으로선 실격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던 내게 당신은 너만 그런 건 아니라고, 외롭고 막막하고 지리멸렬한 인생이 너 하나만은 아니라고 말해주었지요. 나는 그런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글을 읽느라 죽음조차 잊었습니다. 덕분에 소설을 쓴 당신은 물론이요 그 소설을 읽은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과 달리 나는 오히려 살아갈 힘을 얻었지요.

아마 지금과 달리 당신을 아는 이가 별로 없었던 것도 내 사랑을 부추긴 한 가지 이유일 겁니다.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는 작가를 나는 안다는 자부심에 홀로 뿌듯했지요. 다만 당신의 책을 구할 수 없는 것은 곤란했습니다. 빌린 책을 돌려주고 몇 군데 서점을 돌다가 간신히 한 권뿐인 <인간 실격>(박홍근 옮김, 심지 펴냄, 1982년)을 발견했을 때는 그래서 복권이라도 당첨된 양 기뻤습니다. 그 뒤로 여러 출판사에서 더 매끄럽게 번역된 <인간 실격>(김춘미 옮김, 민음사 펴냄)을 펴냈지만 내가 여전히 누런 책장이 바슬거리는 이 책만을 고수하는 것은 그날의 설렘을 잊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허나 이제 당신은 너무나 유명하고 <인간 실격>은 손꼽히는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엔 당신의 한국어판 전집이 첫 선을 보이기도 했고요. 일본의 국민 작가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도, 당신이 당신 작품을 무시했다고 날을 세웠던 노벨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전집이 출판된다니 기분이 어떤가요? 냉소적이지만 세상의 시선에 예민했던 당신이니 분명 좋아하겠지요. 이내 그런 자신에게 낯을 붉히겠지만.

그런데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에 기대 청춘의 한 시절을 견뎌왔음에도 나는 날로 커지는 당신의 인기가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나만의 연인을 뺏긴 것 같은 서운함도 있지만 그보다, 자기 연민과 자기 환멸로 가득한 <인간 실격>의 작가가 이토록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다는 게 어쩐지 석연치가 않습니다. 당신의 지독한 절망에 공감하고 거기서 위로를 얻는 이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삶이 흔들리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니 어찌 반가워만 할 수 있겠는지요.

물론 당신의 문학이 자괴와 자기 연민만 보여주는 건 아닙니다. 많은 사소설들이 관습화된 자조(自嘲)로 문학적 생기를 잃은 것과 달리, 당신은 이미 초기작 '추억'(1933년)과 '광대의 꽃'(1935년)에서부터 <인간 실격>에 담긴 자기 이야기를 되풀이해왔음에도 늘 새로운 긴장으로 독자를 사로잡았습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응시하는 냉철한 시선이 빚은 긴장이었습니다. 나란 어떤 인간인가, 내 인생의 실패는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나의 고통'이란 것조차 과장된 가장(假裝)은 아닌가. 당신은 끊임없이 묻고 돌아보며 자신을 해부하고 '자기의 덫'을 경계했습니다.

"그만두자. 자신을 비웃는 것은 치사한 일이다. 그것은 꺾인 자존심에서 오는 것 같다. 실제로 나부터도 남에게 여러 말 듣고 싶지 않아서 제일 먼저 자신의 몸에 못을 박는다. 이거야말로 비겁하다. 좀 더 솔직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아아, 겸손하게." ('광대의 꽃', <만년>(유숙자 옮김, 소화 펴냄))

▲ 다자이 오사무. ⓒwikipedia.org
<인간 실격>과 똑같은 요조라는 인물을 내세워 동반 자살에 실패한 자신의 경험을 쓴 '광대의 꽃'에서, 당신은 자조의 몸짓 뒤에 숨은 자의식의 허영을 이렇게 폭로했습니다. 스스로를 탓하는 자기 비하의 밑바닥에 사실은 드높은 자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지요. 당신은 그 자의식의 허울에서 벗어나 자신을 직시하기 위해, '광대의 꽃'에서는 일인칭과 삼인칭을 오가고, <인간 실격>에서는 요조의 수기 앞뒤에 '나'의 촌평을 달아 이를 대상화했습니다. 스스로를 객관화함으로써 솔직하고 겸허한 자기 인식에 이르기 위함이었지요.

늘 자기를 의식하고 자기를 문제 삼으면서도 그 자의식이 자신과 세상을 속일까 봐 노심초사했던 당신, 나는 그런 당신이 좋았습니다. "죄의 반대말은 법"(<인간 실격>)이라며 법망을 피해 태연히 죄를 짓는 세상에서, 아무도 묻지 않는 자신의 죄에 고통스러워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죄를 고백한 당신이 좋았습니다. 용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죄로 얼룩진 세상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 그 세상에서는 모두가 죄인임을 일깨우기 위해서 수치를 무릅썼던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한때, 당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믿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죄인입니다. 당신 말대로, 추악한 세상에서는 무구한 영혼조차 죄에 연루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의 부정한 돈으로 먹고 입고 배운 당신이 그랬고, 사람을 믿은 죄로 능욕당한 당신의 여인이 그랬고, 당신의 조국이 일으킨 잔학무도한 전쟁에 기꺼이 목숨을 바친 순진한 청춘들이 그랬습니다.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모르는 세상에서는 의심을 모르는 무구한 신뢰도 죄가 되고 만다는 것을 당신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아버지의 아들인 자신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건 부정하고 불의하게 치부(致富)한 아버지의 죄를 덮어버리는 것이며, 죄를 통해 성장한 뒤틀린 조국을 인정하는 것이며, 죄 없는 아이들의 미래를 막아버리는 것이니까요.

아버지의 죄를 고발하고, 그 아비의 아들인 죄를 인정하고, 그리하여 아비로부터 죄로부터 절연하려 한 당신은 죄가 없습니다. 당신의 죄는 그렇게 안간힘을 써도 결국 속죄는 불가능하다고 믿은 당신의 절망, 그 절망을 낳은 오만한 자의식에 있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죄를 씻고 싶었다면, 인간이 다 죄인인데 누가 나의 죄를 용서할 것이며 무슨 수로 속죄할 수 있겠느냐고 탄식하기 전에 그저 무릎을 꿇었어야 했습니다. 인간의 죄를 묻기 전에 오직 당신의 죄만을 끊임없이 고백하며,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절망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죽음이 아니라 치욕을 견뎌야 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당신의 아이들은 속죄한 아비 덕분에 죄 없는 세상에서 죄 짓지 않고 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보세요. 당신이 사죄를 끝내지 않고 다시 자신에게로 도망친 바람에 당신의 아이들은 여전히 아비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고 새로 또 죄를 짓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끝이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왜 과거로 발목을 붙잡느냐고 피해자들을 비난합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께 이별을 고합니다. 권력이 총칼로 무구한 영혼들을 유린하던 시대에 인간인 죄를 부끄러워하며 수치의 자화상을 그린 당신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당신을 떠나려 합니다. 당신을 떠나 어디서 시작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나는 아직 모릅니다. 내가 아는 건 자아의 수치에 마음을 쓰는 것만으로는 부끄러운 삶을 바꿀 수도, 세상의 죄를 씻을 수도 없다는 사실뿐. 그러므로 나에게 향하던 시선을 밖으로, 내 이웃들이 부끄럽기 않게 살기 위해 애쓰는 세상으로 돌려야 한다는 사실뿐입니다.

다자이 오사무, 당신이 있어 캄캄한 시절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에게 가혹했던 당신 덕분에 자기연민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당신을 떠나 새롭게 나아가려는 나를 부디 격려해주기를. 당신께 오랜 사랑의 인사를 보냅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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