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얘기는 단순한 선거 냉소주의가 아니라, 2011년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을 목격하는 동안 그가 발견한 '민주주의의 직접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당시의 경험을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그린비 펴냄)란 제목의 현장 리포트로 풀어낸 고병권이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와 <프레시안>이 함께 여는 저자와의 만남 행사, '어쿠스틱 인문학' 일곱 번째 저자로 초대되었다. 행사는 지난 27일 저녁 7시 반부터 약 2시간 동안, 마포구 서교동의 한 문화 공간에서 도서평론가 이권우의 사회로 진행됐다.
월스트리트 점거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고병권은 국민 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민주화 운동의 '세계성'과 '민주주의의 직접성'을 반복해 강조했다. 그가 발견한 가능성은 우리가 보통 말하는 '직접 민주주의'와는 구분된다. 그렇다면 그는 뭘 발견했기에 '너무 낙관적이다'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이 책을 썼을까? '직접 민주주의'란 단어를 피해 '민주주의의 직접성'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야기는 그가 얼떨결에 점거 시위 준비자들과 엮이게 된 지난해(2011년) 여름부터 시작된다.
미국이 '제3세계'인 이유?
▲ 고병권 '수유너머 R' 연구위원.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 |
8월, 거처를 옮기자마자 알고 지내던 활동가를 우연히 만났고, 엉겁결에 끌려 간 곳에서 또 우연한 만남이 거듭되어 9월 17일 '점거' 시위를 준비하는 모임을 지근거리에서 목격하게 된다. 드디어 9월 17일,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를 목격한 그는 "미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사람들의 표정만으로 각기 다른 수많은 요구를 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미국에서도' 이런 운동이 벌어지게 된 배경과 계기를 묻자 고병권은 굉장히 다양한 것을 들 수 있다면서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1980년대 이후 빚으로 문제를 해결해 온 방식이 미국의 일반 시민들을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갔다는 것. 동아시아 국가들의 달러에 대한 공포로 유예되어 왔던 이 '중심 국가'의 파국이 뒤늦게 드러났다는, 그간 많은 학자들이 해 왔던 얘기다.
하지만 그가 정말 중요하다고 지적하는 다른 하나는 "자본 이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저항의 세계성'"이라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고병권은 "지금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사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직접 소통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언젠가 한국의 한 토론회에서 어느 학자가 "한국은 민주주의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없어서 문제다"라고 말했는데, 그 '글로벌 스탠더드'란 말이 참 거슬렸다. 그 스탠더드란 미국을 말하는 건가? 과연 미국이 '민주주의 표본 국가'일까?
적어도 지금 일어나는 민주화 운동에 관한 한, 미국은 '제3세계'인 것 같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 민중이 국가 정책에 자신의 뜻을 반영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이라고 본다면 미국은 한국보다도 그 가능성이 적다.
이번 '점거 운동'의 매우 중요한 계기 중 하나는 서남아시아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과 스페인 마드리드 광장의 시위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을 통해 서남아시아와 유럽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보고들은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을 점거했던 활동가들이 스페인 마드리드에 갔고, 그 경험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와 미국인들을 부추겼다.
물론 미국도 나름대로 운동의 전통이 있고, 그 운동의 예술적 역량은 굉장히 뛰어나지만, 이번 점거는 그들로부터 '배운' 부분이 크다. 실제로 점거를 준비하던 8월 하순까지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토록 거대한 규모의 점거 운동으로 가기까지 심리적 간극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9월 17일의 '거사'를 목격하고 돌아간 뒤 사흘이 지나고 고병권은 "머리카락이 전부 쭈뼛 서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가 그가 생각하는 점거 운동의 특징을 잘 말해준다. "모인 사람들이 정부나 기업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서로 자신이 갖고 있는 온갖 사연들을 꺼내놓고 이야기하는 장면"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사흘 후에도 여전히 그 장면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절, 민주노총이 주최한 행사에 2~3만 명이 모였다고 치자. 이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몇 시간 후면 행사가 끝나니까. 그런데 한 명이 100일 넘게 농성을 한다, 이건 대단한 거다. 이와 비슷하게 500~1000명쯤 되는 사람들이 3일 넘게 같은 자리에서 진지하게 자기 인생이 왜 이렇게 되었나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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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고병권 지음, 그린비 펴냄). ⓒ그린비 |
또 하나 그가 명확하게 기억하는 말은, 시위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에 도달했다"는 한 시위자의 설명이었다. 정부나 금융 자본이 '나쁘다'고 비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학자금을 갚느라 고통 받거나 집을 잃어 좌절하는 등 각자의 생생한 사연과 처지를 나눔으로써 불안에 맞서는 힘을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한 그룹 한 그룹 가까이서 보면 정말 중구난방인데, 공원 뒤쪽에서 바라보니 모두가 삶의 문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하나의 집합적 거번먼트를 구성하고 있었다. '내 속을 털어놓고 당신 생각을 들으니 이제 내가 이해되고 우리가 이해된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경찰이 공원을 느슨하게나마 둘러싸고 있었으나 아무도 경찰을 의식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렇게 한가한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은 민중들이 서로의 말을 듣고, 서로에게 연대를 표시할 때였기 때문이다."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30쪽)
점거는 새로운가?
노숙자부터 연봉 100만 달러의 사나이까지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중심' 없이 이곳저곳에서 토론, 퍼포먼스, 식사 나누기 등 갖가지 행위를 벌이며,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요구를 외쳤던 운동. 아무도 "언제까지 지속할 건지" 정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끝을 알 수 없"기에 2012년 9월 현재 '완료형'으로 얘기할 수 없다는 운동. 이 '점거(Occupy)' 운동은 과연 새로운가? 정말 전과는 다른가?
고병권은 "서울의 수많은 철거민들이 싸웠던 걸 떠올려 보면, 그런 경험들이 더 절실하고 전투적인 스쿼트(Squat)였다"며 우선 새롭지 않은 측면을 상기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새로운 측면에 대해서는 '아큐파이'의 번역어인 '점령'과 '점거'의 차이점을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큐파이 운동은 한국에서 '점령'이라는 단어로 더 자주 번역됐다. 점령은 군사적 용어다. 외부에 적이 있고 그 적을 타도하기 위해 고지를 따낸다는 의미다. 가령 지난 봄 딸아이 손을 잡고 서울시청 앞 광장의 '서울 점령자들' 텐트촌에 갔었는데, 전위부대의 초소 같다는 느낌이 첫인상이었다. '점령'이란 단어는 서로가 말을 꺼내고 원하는 삶을 재검토하게 하는 실험의 장으로서가 아니라, 적과 싸우는 과정에서 내가 어디까지 고지를 점했나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런데 '점거'에는 우리가 그동안 지향해왔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야한다는 문제의식이 있고, 이런 차이점에서 '점거'를 새로이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런 새로운 측면이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2000년대 이후부터 큰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위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노동 운동을 대의하는 기구가 합법화되고 진보 언론이 우후죽순 창간되는 등 시민들이 '대의'할 방법이 발달해가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의 보편화와 함께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는 사람들이 마구 늘어났다." 다시 말해 대의제 자체와 대의제로부터 추방당한 사람들이 함께 상승 곡선을 그리는 시대다.
"대의제 민주주의란 측면에서 큰 의미였던 김대중 정권 말기,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로 혼란스러워지자 사람들은 '민주 정부라는 놈들 뽑아봤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때(2001년) 시작된 중요한 운동이 하나 있다.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위해 자기 몸을 쇠사슬로 묶고 점거 투쟁을 했다. 이들은 대의제 민주주의 발달과 상관없이, 혹은 그로 인해 더욱 배제된, 자기 삶의 중요한 결정들에 대해 작은 목소리 하나 낼 수 없는 '목소리 없는 자들'이었다. 점거는 이들처럼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 내기다.
같은 맥락에서 용산 남일당의 점거도, 2008년의 촛불 집회도 '내 문제인데 내가 결정할 권리가 전혀 없는' 이들의 '내 목소리를 직접 듣게 하겠다'는 시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 현장의 모습. ⓒ고병권 |
'직접 민주주의' 말고…
대의 시스템이 아무리 발달해도 어떤 목소리는 '대의'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토록 신봉하는 민주주의란 제도는 틀렸는가? 고병권은 2004년 17대 총선 당시 각 당의 비례대표 후보 중 300만 농민을 대표하는 직능 대표를 찾아볼 수 없거나 당선 가능성이 낮은 번호를 받은 것을 보고 대의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깊이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줄곧, 2011년 나온 소책자의 제목처럼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고병권의 근본적인 물음이었고 이번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가 쓰인 주코티 공원에서도 그 물음이 돌출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제(간접 민주주의)의 대립 구도는 잘못된 것"임을 강조한다. 대의제의 한계를 지적하다 보면 으레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옹호로 흘러가고, 그러면 자동적으로 '아테네처럼 작은 곳에서나 가능하지 현재로선 비현실적'이라는 반론이 튀어나오지만, 이 대립 구도를 벗어나 민주주의와 관련된 직접성을 다르게 사유해 보라고 말한다.
"직접 민주주의가 '국민'이 곧바로 '대표'의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라면 이는 뭔가 크게 착각하는 것이다. 이는 '화폐'로서의 '금'의 역할에 불만을 품은 누군가가 '가치'를 직접 유통시키자고 말하는 것처럼 어리석다. 국민이나 주권은 대표처럼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아니다. 반대로 대표를 통해서만, 그리고 대표에 대해서만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고 요구하고 인정하고 그것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 모든 개별 국민들이 청와대나 백악관에 몰려가서 '대표'로서 권력을 행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대의제일 뿐이다. 한마디로 대표의 수만 늘어날 뿐이다."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117쪽)
그는 리버티 스퀘어에 세워진 "민주주의는 직접적인 것이다(Democracy is Direct)"라는 표지판을 보고 뭔가가 머리에 확 꽂히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에 착안하여, 그리고 '직접 민주주의'가 근거한 오해에 반대하기 위해, 그는 '민주주의의 직접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민주주의의 직접성은 백악관과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으며 리버티 스퀘어가 그곳일 수 있다. 아무리 주변을 경찰이 에워싸고 있다고 해도 점거가 이뤄지는 순간, 그 현장은 (기존) 사회를 지배하던 규칙이 작동하지 못한다. 법이 그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뜻이다. 점거자들은 바로 점거하는 장소가 그런 효과를 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에서 '해방구'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해방구에서는 사회를 지배하던 공권력이나 도덕, 관습이 다 판단 정지된다. 그런데 그 진공 상태에서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누군가는 말을 하고 누군가는 알아들으며 뭔가가 일어나고,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기존에 우리를 매개하던 것들이 다 끊긴 상태, '대리'하는 게 전부 사라진 상태인데 사람의 역량이 발휘되고 뭔가가 작동하고 변화가 일어난다. 이때 민주주의는 직접적인 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고병권 '수유너머 R' 연구위원(왼쪽), 도서평론가 이권우(오른쪽).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 |
고병권은 2012년 송전탑 반대 운동 중인 밀양에서, 리버티 스퀘어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기존의 질서가 끊긴 상태에서 일어나는 능동적인 변화들"을 감지했다고 덧붙인다. 밀양에서는 일흔 평생 일면식도 없던 네 개 면 주민들이, 한 데 모여 텐트를 치고 화투를 치며 '연대하고' 있었다. 그는 그곳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만든 공간이 "야전 사령부이자 사랑방"이고 그게 바로 자신이 확성기를 갖다 대고 싶은 지점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송전탑을 저지하든 못하든 그들은 이미 많은 것을 이루고 또 얻었다. 전에 없던 네트워크를 얻었고, 더 중요한 건 구성원들이 그 전과는 다르게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마 처음엔 많은 분들이 더 많은 금전적 보상을 위해 점거에 참여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 그곳 노인들은 내게 프랑스와 독일의 원전 정책의 차이점을 설명해 준다. 유능한 대통령이 뽑혀서 바뀔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크게 사람이 변한다.
여기가 이상(理想)이며 유토피아라는 얘기가 아니라, 여기가 우리가 사고를 시작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대부분이 인생의 8할은 내 정신이 이끄는 대로가 아니라 남이 시키는 대로 사는데, '단 1퍼센트라도 나답게 행동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면 거기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그것을 키워나가는 게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다시 태어날 민주주의를 "체제의 중심이 아니라 체제의 주변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주변부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투쟁하는 장애인이나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이주 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곳이 아니다. "승진을 못 하는 여성으로서, 서류 탈락하는 지방 대학 출신으로서 우리 각자는 언젠가 '벽'에 부딪히며, 바로 그 지점이 '민주화'가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것. '선거의 꽃'을 3개월을 앞둔 시점이지만 그는 "선거는 다수에 호응하려는 정당들의 노력"이라며 선거 그 이상을 바라보는 '소수자'로서의 눈을 주문했다.
점거는 유효했나?
이쯤에서 '점거'가 무엇을 성취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운동이 결국 탐욕스런 금융 자본에 철퇴를 가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이권우가 묻자 고병권은 "만약 이들이 요구한 게 다 성공했다면 그건 세계 혁명"이라며 "그걸 바로 '시도'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점거의 가치나 의의는 그들이 실패한 데에서 봐야 한다는 것.
기본적으로 그는 운동이 정치적 제도화를 이루지 못하면 실패로 여기는 견해에 반기를 든다. 뉴욕 현지에서도 "점거가 정치적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하니까 선거에 개입하지 못하고, 결국 '오바마 아니면 롬니'가 되지 않았느냐"라는 비판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는 한 활동가로부터 들은, "이 운동의 최대 성과는 '사람들의 심성이 변화한 것(mentality shift)'"이라는 말에 더 주목한다. 사람들이 어떤 운동을 겪기 이전과는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혁명은 구경꾼들의 마음 변화에서 온다'는 칸트의 말을 좋아한다. 그가 프랑스 혁명을 지켜보고 한 말이다. 칸트는 혁명이 혁명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걸 지켜봤던 사람들에게서 온다고 봤다. 가령 프랑스 혁명 당시 여전히 중세 봉건 체제가 지배했던 프로이센의 사람들이다. 물론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다른 유럽 국가들은 오히려 더 봉건 체제를 굳히게 되었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은 '내 대에 끝날지, 자식 대에 끝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중세가 끝나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가까운 예로 희망 버스도 있다. 만약에 희망 버스라는 게 아예 없었고, 운이 좋아 2012년에 민주당이 여당이 됐다고 치자. 이때 민주당이 비정규직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정책이 어느 정도일까. 그런데 희망 버스란 게 있었고, 그 이후에 새누리당조차 공약을 내세우는 데 경제 민주화라든지 노동자, 노사 관계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게 된 거다. 뭐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을까?"
ⓒ고병권 |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미국인들이) '2008년 문제'를 넘어선 것"이 '점거'가 일으킨 구체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2008년 문제'란 미국이 금융 위기에 빠졌을 당시, '망하기엔 너무 크다(too big to fail)'며 월스트리트에 공적 자금을 대거 투입한 대처, 그리고 대중들이 그것을 '감내'한 상황을 일컫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후 월스트리트가 '보너스 잔치'를 누리는 것을 목격했고, 정부가 자신들을 구제할 리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도시를 점거했다. 이 경험을 한 이상 사람들의 마음과 '용납'의 수준, 움직임의 크기가 그 이전으로 돌아갈 리 없다는 게 '멘털리티 시프트'의 정체다.
네이션-스테이트를 넘어서
'점거'에 가해진 비난과 관련해, 고병권은 또 "운동은 어떤 책임도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운동이 '정치적 제도화'로 이어져야만 한다는 다수의 생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 "운동을 제도화 되느냐 안 되느냐로 평가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시각"이라며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점거 운동이 일어났을 때 운동은 '지역'으로 뿐만이 아니라 '영역'으로도 퍼져나갔다. '아큐파이 컬처', '아큐파이 랭귀지', '아큐파이 모던아트' 등 각자가 활동하는 영역으로 '번역'되었다는 얘기다. 가령 희망 버스 때 송경동 시인은 자기 언어로 그 운동을 번역해내지 않았나. 또 언젠가 한 병역 거부자는 '2008년 촛불 집회가 병역 거부를 결심하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촛불 집회에 참가하면서 자기에게 든 생각이 '병역 거부'로 나타난(번역된) 거다.
정치는, 특히 제도로서의 정치는 결코 세상의 반이 아니다. 정치적 제도화라는 건 정치인이 그 운동을 번역해 내야 하는 영역인 것이다. 운동은 어떤 책임도 없다. 제도화되지 않은 운동을 비난하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 |
세계를 지배하던 금융 자본주의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는 시대, 앞으로의 세계 질서 전망이라는 다소 거창한 질문이 주어지자 고병권은 체제의 위기 자체보다는 사회의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과 운동 측면에서 나름의 대답을 내놨다. 그는 "위기는 글로벌한데 그걸 다루는 '글로벌 거버넌스'는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 그리고 "개별 국가 수준에서 전통적 의미의 국민주의가 크게 훼손된 상황" 등 이중의 '대응 위기'를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국민 국가 단위에서 민주주의를 정의해 온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세계성(Worldness)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 국가의 틀을 벗어나는 민주화 운동의 방향성은 한쪽에선 '트랜스 내셔널', 즉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점거처럼 초국적 수준에서 드러나고 있고, 한쪽에선 이주 노동자 문제 등 '서브 내셔널'한 영역에서 돌출되고 있다. 그는 "민주주의의 세계성을 한국이라는 특정한 '문제'를 떠나서 사고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여기가 미국이고 이집트이고 그리스이고 스페인이고 또 일본이다. 2001년의 아르헨티나 곁에 2008년의 한국이 섰고, 아랍의 봄 곁에 유럽의 여름, 미국의 가을이 섰다. 이제 모든 지역과 모든 계절이 한곳이고 동시이다. 그들에게 찾아온 때는 우리에게 찾아온 때이며, 그들의 가능성이 우리의 가능성이고, 그들의 위험이 우리의 위험이다."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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