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의 추억,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 말한 사람은?"
중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한다. 도덕 시험에 단답형 주관식 네모 빈 상자 3개를 주고 답을 쓰는 문제였다. 질문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 사람은?" 정답은 블레즈 파스칼.
그런데 시험을 본 다음 시간, 도덕 선생님이자 담임선생님이 한 장의 시험지를 가져와 "아무개" 이름을 가진 학생을 호명했다.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그 학생이 "네" 하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섰다. 그 학생을 보고 선생님은 대뜸 "야!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 사람이 '나'냐"며 "내 이름을 답으로 쓰는 게 말이 되냐!"라고 호통을 치셨다. 우리는 상황을 파악하고 웃고 있는데, 그 학생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렇지만, 제게 말한 사람은 선생님 맞는데요." 가만히 생각하니 맞는 말이다. 이미 죽은 파스칼이 그 학생에게 말하지는 않았으니까!
우리들 대부분은 시험에 얽힌 여러 일화를 알고 있고 직접 경험한 것도 많다. 법대 교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백지를 내고도 F 학점을 받지 않은 학생이 있었단다. 알고 보니 교수님이 학과명, 성명 한 자 한 자에 점수를 주셨단다(그 학생은 1980년대 운동권이었다!). 나이든 학생은 답안지에 심수봉의 "미워요"를 써놓고 나와 학점을 받았다. 한 학생은 커닝(영어로는 cheating이 맞다!) 하는 친구를 골탕 먹이려 오답만 썼다가 나중에 고치지 않고 내서 자신은 0점을 받았단다. 아마도 시험과 관련한 무용담을 말하라고 하면 밤을 새워도 끝이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 시험에 관한 무용담이 많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학교를 들어가 쉼 없이 보는 것이 시험이고 학교를 졸업하고도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시험이다. 사는 일 자체가 시험을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 우리가 사는 사회의 자화상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시험에 대한 무용담이 얼마나 넘쳐 나겠는가!
시험 치는 요령과 시험의 정치경제학
▲ <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버텔 올먼 지음, 김한영 옮김, 모멘토 펴냄). ⓒ모멘토 |
이 의문은 영문 제목을 보며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이 책의 영문 제목은 "How to Take An Exam…& Remake the World"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시험 잘 보며 세상 바꾸기"(이 책의 부제다) 정도가 될 듯하다. 영문 제목을 찾아내 마르크스와 학점의 그로테스크한 조합(출판사의 '재치'에 놀랄 뿐이다)에서 마르크스를 구원해 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무슨 종류의 책이란 말인가?
과거 한 때 유행하던 책 가운데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가(How to Solve it)>라는 책이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인생에서 무지막지하게 중요했던 수학 점수를 올리려 수학적 사고 능력의 함양을 목적으로 읽었던 책이다. 목적 자체가 성적에 있었던 터라 불순한(?) 의도로 읽은 책이지만, 나름 수학적 사고를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준 책이다.
그렇다면 이 책, <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도 시험을 잘 보게 하려 학생들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책인가? 구글에서 검색을 했더니 이 책의 도서 분류가 '교육' 분야다. 교육 도서를 서평을 쓰라고 내게 보낼 리는 없는데.
가시지 않는 의구심을 뒤로 하고 책의 '들어가는 말'을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의 의도를 단번에 파악했다. 이 책에서 오랫동안 정치학과에서 가르친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자 버텔 올먼은 학생들에게 "시험을 잘 보게 해줄 테니, 세상을 이해하고 바꾸는데 나서라" 하고 제안하고 있다.
파우스트 박사와 메피스토펠레스의 거래도 아닌데, 웬 거래? 기실 거래의 목적은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해 이를 비판하는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는 젊은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아는 세상은 문제가 많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 실천을 해야 하오"라는 노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끝까지 책을 읽고 나서도 체제에 순응하는 생각을 바뀌지 않으면 시험 치는 요령이라도 배워가라는 것이다. 상상해 보라 노교수님의 젊은 학생들을 위하는 마음을.
사실 내 처지에는 이 책에 있는 시험 치는 요령은 별로 감흥이 없다. 나는 이제 시험을 치는 처지가 아니라 시험을 내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시험의 비법을 전수하는 이 책은 '천기누설'로 보일 뿐이다. 같은 동업자끼리 어쩌자는 것이야! 그럼에도 이 책 곳곳에 실린 수십 년간의 경험이 녹아 있는 시험의 비법 자체는 좋은 학점을 받으려는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생생하다(예를 들어 "논술 시험에서 글씨를 너무 크게 쓰지 않도록 주의하라"(127쪽). 이 세심함을 보라!).
이보다 나는 올먼이 내놓는 시험의 정치경제학적 해석에 더 마음이 끌린다. 올먼의 말을 들어보시라.
"성적은 단순한 통제 수단을 넘어, 학업의 예속화 과정이 완료되었다는 표시다." (184쪽)
"(시험이) 우리의 지배 계급에게 해주는 봉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사회 환경의 불리함을 개인적 결함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일이다" (226쪽)
"시험은 과제 해결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시간과 형식을 규정해 노동 규율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킨다. (…) 시험은 학생들에게 빨리 생각하고 쓰도록 강요하여, 직장에서 맞닥뜨리는 속도전에 적응시킨다. (…) 시험 공부를 하며 습득하는 자제력은 직장에서 인신 공격을 참고 견디게 한다. (…) 시험은 이의 제기를 허락하지 않는 명령인 만큼 미래의 고용주가 내리는 명령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할 습관을 길러준다." (230~231쪽)
한마디로 시험은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기제다. 다시 말해 시험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 장치인 것이다. 결국 시험의 본질은 이렇다.
"시험은 학생들을 책상 앞에, 그리고 현 상태에 묶어 놓는 사슬이고, 앞으로 닥쳐올 더 큰 무한경쟁에 준비시키는 러닝머신이며, 벗어나려 들면 발사하겠다고 위협하는 머리 옆의 권총이고, 무엇보다도 끔찍하게는, 학생들의 생각을 몽롱하게 만들어 이 미친 상황을 정상으로 여기도록 하는 마약이다." (232쪽)
이 무지막지한 비판 앞에 일상적으로 시험을 내는 처지에 있는 사람으로서 마치 죽비로 한 대 맞은 느낌이 든다. 우리 모두 시험을 잘 볼 수는 없다. 왜? 상대 평가니까. 따라서 올먼의 비법을 모두 똑같이 전수 받았다면, 모든 학생이 비법에 따라 답안을 잘 쓸 터이지만, 1등과 꼴등은 정해질 수밖에 없다. 시험은 영원히 차등과 차별을 낳는 장치가 아니겠는가?
이것을 알면서도 중간 고사, 기말 고사마다 시험 문제를 내고 답안을 채점하고 상대 평가로 학점을 주고 있으니, 나도 어쩌면 체제 순응 교육에 공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시험과 자본주의 비판의 관계
그렇지만 이 책은 시험의 정치경제학적 함의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현실에 맞게 적용해 행동하라고 권한다. 올먼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마르크스주의가 여러분의 시험에 도움이 될까?"
그 답은 애매하다.
"시험 제도 자체를 사회적 맥락에서 파악하고 누가 진정 여러분의 편인지 알게 해주는 한 마르크스주의는 더 사려 깊고 더 나은 학생으로 만들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용어를 사용하면서 대부분 시험의 피상적인 성격에 짜증스러워하고 시험들이 걸핏 드러내는 편향에 분노하는 한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여러분을 곤란하게 만들고 성적을 끌어내릴 것이다." (267쪽)
이 말은 시험을 치르는 학생뿐 아니라 시험 문제를 내는 내게도 마찬가지 조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이 질문이 사실 올먼이 시험의 비법과 자본주의의 실체를 거래하자고 한 핵심 이유다. 자본주의의 실체를 알면 시험의 정치경제학적 함의를 깨달을 수 있고 이 깨달음에다 시험의 비법까지 전수받는다면 "영혼을 잃지 않고 시험에서 A학점을 따내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시험 치는 요령은 단순히 자본주의의 실체를 이해하는 것과 등가로 맞바꾸는 교환물이 아니다. 시험 요령만 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자본주의의 실체를 파악해서만도 안 되는 것, 이 두 관계는 묘하게 변증법적으로 묶여 있다. 이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야 말로 이 책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진짜 핵심 내용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자본주의의 실체를 파헤치는 중요한 내용들이 수많은 사례들과 함께 끝도 없이 펼쳐지는 것은 당연하다. 시험 요령과 자본주의 분석이 경합하고 있어 책의 구성이 혼란스러운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의 분석 자체가 가진 힘은 무척 강렬한 메시지로 이 책에 자리 잡고 있다. 시스템 전체로서 이해해야 하는 자본주의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 대립하는 사회이며, 이 사회에서는 자본가가 노동자의 잉여 노동을 착취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하고 수많은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이 작동한다.
나아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계급 이해는 다르며 이는 두 집단 사이에 계급 투쟁의 토대를 이룬다. 그리고 "인민의 지배가 사회의 모든 분야에 확장되는 사회주의는 소수를 위한 이윤의 극대화가 목표가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의 기여라는 인간적 목표로 모든 곳에서 대체될 것이다"(235쪽). 결국 우리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야만성, 공해나 핵 재앙으로 거주할 수 없게 된 지구, 그리고 사회주의 가운데 역사적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을 맞이할 것이다.
자본주의 분석과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의 문제는 시험이라는 학생들의 현실적으로 당면한 과제를 풀어 가는데 큰 구실을 한다. 올먼의 말을 다시 경청해 보자.
"이 감옥을 탈출하려면 그게 무엇으로 지어졌는지를 좀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감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누가 그것을 지었고 왜 지었는지도 알 필요가 있다. 세계 자본주의라는 가장 크고 가장 위험한 동네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거리의 물정에 빠삭해야, 즉 '거리의 지혜'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상황에 적절한 거리의 지혜가 있어야만 학생들은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자유를 되찾기 위한 전략을 짤 수 있다. 그런 기본적인 사항들을 파악하지 못하면 반항은 자유로운 행동이 아니라 고집스러운 행동이 되고, 반항이랍시고 하는 행위는 종종 자기 파괴로 흐른다." (246쪽)
다시, 시험의 추억
다시 글의 첫 머리 이야기로 돌아가자. 학생의 대답에 우리 담임선생님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한참을 웃으신 후 담임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러니 내 답도 정답이다!"
담임선생님의 반응을 떠올리며 벌써 20년이 훌쩍 넘은 이야기에 시험이 가진 반전의 매력이 숨겨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이런 반전의 사례는 시험의 추억에서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어떤 선생이 철학과 시험에 "용기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냈다고 한다. 그런데 한 학생이 뭔가를 쓰더니 바로 나가버렸단다. 그 학생 답안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바로 이런 것!" 또 다른 일화도 있다. 기말 고사 시험에 모 교수가 이렇게 시험 문제를 냈단다. "문제는 중간고사 때와 같음." 이 문제에 한 학생의 답은 다음과 같다. "답은 중간고사 때와 같음!" 상상해 보시라. 정답을 강요하는 시험이라는 제도에도 이런 반전의 매력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할 능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분과 학문의 체계화된 지식을 암기하느라 바뿐 우리의 대학의 모습을 보며 회의를 갖는 사람들에게 이 책, <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은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또한 시험의 추억으로만 펼쳐졌던 무용담과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반전의 매력이 우리 사회에 더 확대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성적을 잘 받고 싶은 학생들에게도 이 책은 시험을 정복하는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이 모두를 충족해 주는 이 책, 긴 추석 연휴에 일독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