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실험기기에 연결된 모니터에 뿌려지는 초록색 숫자들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멋진 모습이 화면에 담겨지기 원했지만 촬영 감독은 어처구니없게도 (증류수도 아닌) 수돗물을 담은 삼각 플라스크나 흔들고 있는 한심한 모습을 찍었다. 또 그들은 세포 배양기나 방사능 측정기 같은 비싼 장비보다는 붉고 푸른 액체가 담긴 둥근 플라스크가 빙빙 돌아가는 진공 증류기를 그렇게 좋아했다. 또 굳이 초자 제작실에 내려가 유리 조각으로 (도대체 용도를 알 수 없는) 희한한 모양의 유리 용기를 만드는 모습을 찍어갔다. 허탈해진 우리는 맥줏집에서 뒷담화를 했다.
"이런 무식한 것 같으니라고! 도대체 과학을 몰라!"
지금 생각하면 정작 무식한 것은 우리였다. 그들은 감각이 있었다. 뭐가 아름다운지 알았다. 우리에게는 숫자가 아름다웠지만 그들에게는 색깔과 모양 그리고 노동이 아름다웠던 것이다. 내가 아는 가장 인간적인 화학자 프리모 레비에게도 유리 공작은 예술적 영역이었으며 증류 실험은 연금술에서 비롯된 화학자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유서 깊은 의식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증류 실험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천천히 또 침묵 속에서 진행되므로 철학적으로 사유할 여건이 마련된다. 그러니까 바삐 열중하는 와중에도 생각할 시간이 난다는 이야기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증류 실험에서는 액체가 기체로 변형되고, 기체가 다시 액체로 돌아온다. 위로 갔다가 아래로 내려오는 왕복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그 사이에 깨끗해지며, 아직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더욱 매혹적인 상태가 된다. 여기서부터 화학이 시작되며 아주 멀리까지 진행되는 것이다. 증류 실험 장치를 조립하고 실시하는 순간, 실험자는 수 세기에 걸쳐 봉헌된 의식을 직접 거행하는 고양된 의식을 획득하는 것이다.
'에이! 프리모 레비야 화학자보다는 휴머니스트로 더 알려진 사람 아냐? 그가 이렇게 말하는 건 근사하기는 하지만, 연금술 시대도 아니고 이런 말이 뭔 의미가 있겠어?' 라고 생각한다면 퀴리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마리와 피에르 퀴리 부부는 역청우라늄광에 숨은 어떤 원소를 분리하기 위해 용액에서 생성된 물질을 결정화하고 이를 세척한 다음 다시 용해시키고 결정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들은 우라늄 광산에서 버려진 광물 찌꺼기를 10톤이나 실어왔다. 여기에는 온갖 쓰레기와 나뭇가지도 함께 들어 있었다.
퀴리 부부는 창고를 실험실 삼고 그 어떤 원소를 분리하는 무지막지한 중노동을 시작했다. 류머티즘을 앓고 있던 피에르 대신 마리는 하루 종일 자신의 몸만한 쇠젓가락으로 끓는 용액을 휘저었으며, 엄청난 침전물과 용액과 부산물을 폐기해야 했다. 하지만 결국에 퀴리 부부는 자신들이 과학사를 통틀어 가장 황홀한 실험을 한 것을 깨달았다.
밤중에 작업실에 나가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우리의 결실이 담긴 캡슐과 병이 희미한 발광체가 되어 그 실루엣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처럼 아름다운 광경이 없었습니다. 늘 새롭고 신기했습니다. 실험실 사방이 빛으로 가득했습니다. 빛으로 반짝거리는 유리관은 동화 속 요정의 빛나는 날개 같았습니다. 어둠 가운데 걸려 있는 그 빛을 볼 때마다 우리의 가슴은 쿵쾅거렸습니다. 우리는 홀린 것처럼 넋을 잃곤 했습니다.
퀴리 부부가 4년 동안 10톤의 광물과 사투한 끝에 얻은 것은 0.1그램의 라듐 화합물. 부부는 마침내 라듐이 진실로 새로운 원소임을 입증하는 증거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순수한 금속 원소를 얻기까지는 다시 9년이 걸렸다.
화학은 아름답다. 화학이 아름다운 까닭은 실험을 통해 자연을 명확한 숫자와 구조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필립 볼의 <실험에 미친 화학자들의 무한도전>(정옥희 옮김, 살림출판사 펴냄)은 열 가지 미친 실험들을 보여준다.
①판 헬몬트의 버드나무 실험 ②캐번디시의 물 구성 성분 실험 ③퀴리 부부의 라듐 발견 실험 ④러더퍼드의 알파 입자 실험 ⑤시보그의 인공 원소 합성 실험 ⑥파스퇴르의 타르타르산 거울상분자 분리 실험 ⑦유리와 밀러의 생명의 기원 실험 ⑧바틀릿의 제논 화합물 합성 실험 ⑨우드워드의 비타민 B12 합성 실험 ⑩파케트의 도데카헤드레인 합성 실험.
"오븐에서 말린 200파운드의 흙을 화분에 담아 비에 적신 다음, 무게 5파운드짜리 버드마무 묘목을 심었다."
▲ <실험에 미친 화학자들의 무한도전>(필립 볼 지음, 정옥희 옮김, 살림출판사 펴냄). ⓒ살림출판사 |
버드나무를 심고 5년이 지난 후, 그는 흙에서 나무를 뽑아 흙과 나무의 무게를 쟀다. 그 사이에 흙은 불과 2온스(약 56그램) 줄어들었지만 나무는 원래 무게의 30배로 자라 자그마치 169파운드에 이르렀다. 판 헬몬트는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결론은 내렸다. "164파운드에 이르는 늘어난 나무의 무게는 오로지 물에서 온 것이다."
물론 이 결과가 그다지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그 이전에 이미 많은 학자들이 사고 실험을 통해 똑같은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 헬몬트는 흙, 나무 그리고 저울을 이용하여 실제로 실험을 하였고, 그리하여 지식 획득의 도구로서 과학 실험을 개척한 최초의 화학자가 된 것이다.
에피소드와 함께 그 의미를 알려주는 화학책은 꽤 있다. <실험에 미친 화학자들의 무한도전>의 미덕은 우리가 (아니, 아는 사람은) 알고 있던 개별적인 사건의 구슬을 하나의 줄에 꿰어 사슬을 만들어준다는데 있다.
①판 헬몬트의 실험이 네 개의 원소 가운데 '물'에 관심을 두고 '수량화'라는 아름다움을 기초로 화학의 시대를 열었다면, 이어지는 ②헨리 캐번디시의 실험은 물의 구성 성분을 밝히면서 실험에 '섬세함'이라는 아름다움을 더 하였다. 이제 네 개의 원소가 아닌 우리가 아는 원소들이 밝혀지는 것이다.
이어지는 ③퀴리 부부의 실험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원소를 찾아주었는데 '인내'라는 아름다움이 화학에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④어니스트 러더퍼드는 (물리학자들은 그가 왜 화학자냐고 따지고 싶겠지만 그는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원자의 중심에 핵이 있다는 것을 밝히는 과정에 '우아함'이라는 아름다움을 추가했다.
이런 식으로 열 개의 실험이 아름다움을 하나씩 추가하면서 하나의 사슬에 꿰어진다. 열 개의 아름다움이 모이니 하나의 아름다움이 되었다. 그것은 바로 '단순함'이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네이처>의 물리화학 분야 편집위원으로 10년간 활동한 후 현재 같은 잡지의 편집고문인 저자 필립 볼은 화학의 역사를 한 줄에 꿰기 위해 사건을 단순화하지 않는다. 그는 동시대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을 빼놓지 않고 친절하게 거론한다. 이 책이 2005년에 리처드 도킨스 등의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대중과 사회에 공헌한 과학기술 관련 서적에 수여하는 '아벤티스 과학도서상'을 수상한 이유가 분명하다.
나는 '프레시안 books'에 <사라진 스푼>(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펴냄)의 서평을 쓰면서 원소에 관한 중요한 책으로 <원소의 왕국>(피터 앳킨스 지음, 김동광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주기율표>(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돌베개 펴냄), <세상을 바꾼 독약 한 방울 : 죽음을 부르는 독극물의 화학사>(전2권, 존 엠슬리 지음,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를 언급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주기율표의 추억, "닥치고 암기!")
필립 볼의 새 책을 읽으면서 당시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엉클 텅스텐 : 꼬마 올리버의 과학 성장기>(올리버 섹스 지음, 이은선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를 빠뜨린 것이다. 올리버 섹스에게 심심한 사과를 올리면서 동시에 이 사실을 일깨운 필립 볼에게 감사한다.
필립 볼의 <실험에 미친 화학자들의 무한도전>은 사실 만만한 책이 아니다. 최소한 고등학교 때 화학 수업은 들어봤어야 알 수 있는 내용이 절반은 된다. 하지만 화학적인 내용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과학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올림픽을 보면서 "운동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는데, 과학도 그렇다.
과학, 특히 화학은 몸으로 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단순하고,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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