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31일 창간호를 낸 '프레시안 books'가 2년 만에 100호를 냅니다. 이번 프레시안 books는 100호 그리고 2주년을 자축하면서 숫자 '100'을 열쇳말로 꾸몄습니다. 또 100호를 내면서 프레시안 books 100년을 상상합니다. 2013년 100주년을 앞둔 일본의 출판사 이와나미쇼텐을 찾아가고, 100년이란 시간을 견딘 서점, 도서관 등을 둘러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열두 명의 필자는 자신의 추억과 '100'을 엮은 글을 선보입니다. 여러분도 프레시안 books가 펼쳐 나갈 100년을 함께 지켜봐 주세요. <편집자> |
모로하시(諸橋) 선생님.
적조했습니다. 10년 전쯤 선생님께 편지를 드렸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1883년에 태어나 1982년에 입적하셨으므로, 당시에도 제 편지를 수신하지 못하셨습니다. 제 편지는 어쩌면 당신의 평생의 업적인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에 전달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의 동양학자들이 웬만하면 다 가지고 있고, 모든 동양학 개념의 출발인 이 사전을 당신 이름을 따서 그냥 '모로하시'라고 부르니까요.
평생을 걸쳐 전 13권 1만40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사전을 거의 혼자서 만드셨습니다. 후에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대만에서 <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을 펴냈지만 오히려 당신만 더 빛나게 하였다 했습니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중국 본토에서 등소평과 주은래가 직접 나서 연인원 1000명을 동원하고 18년에 걸친 작업 끝에 <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을 펴냈지만, 그 책들에 나오지 않는 용례는 아직도 당신의 '모로하시'를 찾는다 하더군요. 따라서 일본은 당신을 국보라 한다지요.
찻잔에 숨결이 일어납니다. 차를 마시는 입술은 고요하고 차분하지만 마음에 격정이 일어나 찻잔 안에서 짧은 탄식이 피어납니다. 저는 지금 일산의 작은 횟집에 앉아 있습니다. 출판계에서 독서 모임 하나 잘 운영해 보자고 출판사 대표 10여 명이 뜻을 모아 만든 독서회에 나왔습니다. 발제자가 행사의 유사를 겸하는 관례에 따라 지호출판사 장인용 사장의 사무실이 있는 일산까지 원족(遠足)을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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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눈으로 읽은 주역 : 역경편>(김상섭 지음, 지호출판사 펴냄). ⓒ지호출판사 |
모로하시 선생님.
제가 10년 전에 선생님께 편지를 썼던 이유는 개인적인 인연이었습니다. 선생님께, 감히 개인적인 인연이라 할 수도 없는 새까맣고 유치한 후학이지만, 맹자에 나오는 '옛 사람의 책을 읽고 벗을 삼아 자신을 다스린다'라는 상우(尙友)의 의미 혹은 선생님께 사숙(私淑)한다는 의미로 겨우 말씀 올립니다.
오늘 한국의 진보적 인터넷 매체인 <프레시안>에 북 리뷰 섹션이 만들어져 100회에 이르렀다 합니다. 인터넷 신문에서 북 리뷰 섹션을 만든 것도 획기적인 일이거니와, 주간 발행으로서 만 2년간 한국 지성계에 큰 역할을 하며 지속해 온 것은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백(百)'이라는 숫자를 듣고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12·3년 전에 저는 인생의 질곡에서 큰 변화가 있어 생각지도 못했던 출판사를 시작했습니다. 단 하루도 출판사에 근무해본 일도 없고 출판에 대한 교육 한번 받지 못한 제가 출판을 잘 할 리가 없지요. 불과 1년 정도에 종잣돈을 다 말아먹고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공자 노자 석가>(모로하시 데쓰지 지음, 심우성 옮김, 동아시아 펴냄)를 펴냈습니다.
선생님은 이 책을 백수(白壽)에 집필하시어 100살이 되는 해 책의 간행과 함께 타계하셨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일본에서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이 책을 통해 보여준 한 인간의 학문에 대한 열정 때문입니다. 이는 세계적 대학자가 백수에 왜 동양학에 대한 교양서를 집필했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합니다.
이미 <대한화사전>으로 학자로서 최고의 영예를 지닌 선생님이, 왜 인생의 끝에서 이 작은 교양서를 집필하셨나요? 대다수의 학자들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권위만 남는 법인데, 또 철저한 유학자인 선생님이 불교 공부를 다시 해가면서까지 일반 대중용 교양서에 집착하셨나요?
저는 그 뜻을 헤아리며 출판을 배웠습니다. 출판을 선생님께 배웠다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이 크게 화제가 되어 지금까지 출판사를 유지하게 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책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배운 것입니다. 저는 책을 만들면서 '심입천출(深入淺出)'이라는 말을 뼈에 새기고 있습니다. 깊게 파헤쳐 쉽게 건져낸다는 이 말은 출판을 통해 지식과 문화를 대중에게 소통하려는 제게 금과옥조였습니다.
세상의 많은 지식을 대중에게 전파하여 우리 삶의 질과 인류의 밝은 미래를 도모하는 것이 출판의 꿈입니다. 저는 이를 '편집자 정신'이라 부르며, 모로하시 선생님께서 인생의 마지막에 교양서를 낸 뜻이라 여깁니다. 따라서 저는 이 책을 통해 위대한 학문의 세계에 대한 겸허한 당신의 인간적 도리를 보았습니다. 동시에 끝없이 자유롭게 도전하는 열정을 보았습니다.
발제자인 지호출판사 장 사장이 맨 마지막에 도착해 발제문을 돌립니다. 모두들 10여 쪽에 빽빽이 박힌 듣도 보도 못한 실증 역학을 빠르게 읽고 있습니다. 도도한 모습으로 발제자가 우리를 굽어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대륙의 문이 채 열리기도 전 타이완대학에서 역사로 석사 학위를 한 사람이니 도도할 만도 하지요.
그러나 지난번 가네코 후미코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정애영 옮김, 이학사 펴냄)를 발제하여 우리에게 아니키즘과 일제 강점기하의 아나키스트를 전해준 이학사 강동권 사장의 눈도 매섭게 움직입니다. 아나키즘학회 차기 회장을 맡을 예정이라니 그 내공은 짐작할 만합니다. 이학사 도서 목록을 봐도 그렇지요.
또 대학 때부터 이유립 선생을 시봉하고 한국단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환단고기(桓檀古記)>를 편저한 창해 전형배 사장의 입술도 실룩거립니다. 역사에 조예가 깊으니 일합을 겨루겠지요.
그런데 선생님.
본말이 전도된 작금의 출판 작태에 저는 화가 많이 나 있습니다. 인생의 끝에서 교양서를 펴낸 선생님처럼 책은 독자와 호흡하며 독자를 위해 존재합니다. 따라서 출판인들은 시대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트렌드를 읽어내고 독자를 위한 책을 만듭니다. 그러나 갈수록 사람들이 책을 멀리하고 출판 산업이 사양 산업으로 전락하다 보니, 이제는 독자의 눈치만 살핍니다.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한 개인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자기 계발서로 전락한 지 오랩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도 이에 편승합니다. 꽤 괜찮은 학자들이 대중과의 소통 운운하며 설익은 대중화를 시도합니다. 책도 팔리고 꽤 인기도 얻으니 쏠쏠하겠지요. 몇몇 교수들이 성공하자 너도나도, 아주 젊은 학자들까지 가세합니다. 별로 다르지 않은 저서가 수십 종입니다.
그들은 선생님을 모르나 봅니다. 교양서 몇 권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고 학문적 업적을 쌓았으며 그러고 나서야 마치 도를 깨친 성자처럼 말씀 하나하나에 혼을 담아 대중에 다가가는지를 모르는 모양입니다. 설익은 학문으로 세상을 현혹하는 위학(僞學)에 대한 경계가 무엇인지 모르는 모양입니다.
학자도 학자지만 이 학자들을 꼬드기는 저를 위시한 출판인들이 반성해야 합니다. 이러다가 독자에게 곧 채입니다. 시쳇말로 곧 까일 것입니다. 그 증거가 중고 서점의 부활입니다. 이는 정말 반겨야 할 일임에도, 독자가 책을 소장하지 않는 증표라 생각할 때, 연인에게 차이는 심정입니다.
지호 장인용 사장 특유의 어눌하지만 힘 있는 발표가 계속됩니다. 발표를 통해 <역경>과 <역전>의 구분이 가능해졌습니다. 흔히 성경현전(聖經賢傳)이라 하여 <역경>에는 수많은 <역전>이 있고 그 가운데 주희의 <역전>이 우리에게는 바이블이 되어 있지요. 이 또한 본말이 전도 되었고 주나라의 점치는 책이자 역사책이, 주희를 통해 동양의 우주관과 세계관, 윤리관을 대표하는 책으로 포장되었다는 정도는 약과입니다.
고대 주나라(서주)와 춘추 시대 제자백가에 이르는 학문과 지성의 발달이 공간을 넘어 그리스로 옮겨지다가, 조선 건국과 사직단이 서주를 이상향으로 삼고 건설된 것이라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훈고학이 나오고 갑골문을 해석하는 의고파학자(疑古派學者)들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훈고학은 청말 민국 초기의 의고파에 의한 실증주의자에 한정합니다.
어렵습니다. 본격적으로 역경을 읽으며 점복에 대한 고대 동양인의 생각과 건괘의 원형리정, 준괘, 수괘, 소축괘, 동인괘, 서합계, 무망괘….
선생님. 이 사람들 왜 이럴까요? 책 만들어 장사하는 사람들이 왜 이러는 걸까요? 출판 산업은 다 망했다는데 이 사람들 제정신인가요? 이 사람들은 다양한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출판인들은 책을 펴내며 자신의 소신을 펼치는 한편 다양한 책을 통해 자유를 구가합니다. 한국 사회 변방으로 쫓겨난 실증 역학을 보는 것도, 일제 강점기에 짧은 생을 살다간 '가네코 후미코'의 자서전을 펴내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이 책들 100권도 안 팔립니다. 대충 1000만 원 손해지요. 그럼에도 아파트 저당 잡혀가며, 마누라에게 할퀴어가며 이런 책들을 냅니다. 무식한 관료들이 출판계도 스스로 경쟁력을 가지라고 코웃음을 치지만 이들이 남긴 책은 100년 후에 경쟁력입니다. 이런 다양한 생각과 가치와 이념이 우리 모두를 풍요롭게 합니다.
우리에게 다양한 생각에 대한 존중이 이뤄지면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폐해로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돈이 인생의 목표가 아닌 사람이 더 많아 질 테니까요. 교육 문제도 간단합니다. 성적이나 대학보다도 인생에서 할 일이 많아질 테니까요. 학생들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릴 일이 없습니다. 학교 폭력이요? 모두가 달라 경쟁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는데 왕따가 생길 이유가 없지요. 다문화 사회요? 나와 다른 문화를 더 즐겨야 할걸요?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푸른 눈 갈색 눈>(김희경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이라고요? 같은 눈일 뿐이죠.
출판인들은 이런 생각과 이념과 가치의 다양성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중에서도 대중들이 이름도 모르는 출판사들이 대형 출판사보다 더 기여합니다. 산업보다도 자기 소신으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거든요. 출판을 산업 논리로 재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또 그런 책과 다양한 출판을 국가적 차원에서 육성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선생님. 문화 역시 다양해서 책과 출판만 소중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화 역시 책을 비롯한 '문자 문화'가 근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풍요로운 21세기, 오감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온갖 감각의 시대에, 수용자의 노동에 가까운 해석과 상상을 요구하는 문자 문화는 재미있지도 편리하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자 문화에는 인간의 방대한 경험과 사색이 정밀하게 녹아있어, 표피적인 지식과 감흥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아울러 모든 감각과 경험과 지식을 상상하고 사유하며 체계화 혹은 통합함으로써 모든 정보 세계의 뼈대로서의 지위를 갖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한 상상력이 또 다른 문화로 확대 재생산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독회가 끝나고 연회가 시작됩니다. 모두들 화색이 돕니다. 저는 회원들 하나하나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저들이 제자백가입니다. 인류의 새벽, 혼돈과 어둠의 시기에서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이며, 인류는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던 제자백가입니다. 몇몇만 후대에 전하지만 거의 모두가 잊혀진 제자백가입니다. 토포악발(吐哺握髮)이라 했던가요? 주공이 현인을 만나면 밥 먹다가 세 번 토해내고 머리 감다가 세 번 쥐어짜고 버선발로 뛰어나가 마중한다는…세상의 지식과 문화를 위해 토포악발을 일삼는 제자백가입니다.
발제자가 저녁을 사는 관례이므로 오늘 저녁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근 20년간 정말 좋은 책을 많이 펴낸 지호출판사지만 요즘 출판계가 어려워서 많이 가난하거든요. 그런데 떡 벌어진 회가 준비되었습니다. 모두들 얼마만의 호사냐며 신나게 먹고 떠듭니다. 이틈을 타 지호 사장이 은근하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자기가 명문가 출신이며 재벌가라고 호기를 부립니다. 회 좀 샀다고 위세를 떠는 모양입니다만, 그 모든 게 사실이니 아니꼬워도 참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사랑한 여자가 자기를 따라 대만에 유학까지 따라왔고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좀 심한 너스레를 떱니다. 그것은 뻥입니다. 책 만들다 보면 뻥만 늡니다. 하지만 낼모레 60인 저 화상의 뻥이 오늘은 참 귀엽습니다. 어렵지만 지기를 위해서 거나한 술상을 준비한 마음이 검이불루(儉以不陋)하고, 책 만들다 생긴 저 뻥이 화이불치(華以不侈)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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