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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의 <배트맨>(1989)과 그 이후의 영화들을 돌이켜보자. <배트맨>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한 조커 이후 어떤 악당들이 배트맨을 사지로 몰아넣었으며 어떤 악당이 그 중 가장 악질이었으며, 어떤 악당이 배트맨을 압도할 만한 카리스마를 뿜어내었는지를 되짚어보자.
<배트맨>(1989)에는 조커 외에 다른 악당은 감히 등장할 수 없었다. 역시 팀 버튼이 감독한, <배트맨>의 후속작 <배트맨 리턴즈>(1992)에는 펭귄(데니 드 비토)과 캣우먼(미셸 파이퍼)가 전작에서 사망한 조커의 뒤를 이었다. 조엘 슈마허 감독 배트맨의 악당들은 다음과 같다. <배트맨 포에버>(1995)에는 투페이스(토미 리 존스)와 리들러(짐 캐리), <배트맨과 로빈>(1997)에는 미스터 프리즈(아놀드 슈워제네거)와 포이즌 아이비(우마 서먼)가 고담시를 엉망으로 뒤집어 놓다가 배트맨에게 제압되었다.
▲ <배트맨 리턴즈>에는 캣우먼과 펭귄이 악당으로 등장한다. |
▲ (왼쪽) <배트맨 포에버>에는 투 페이스와 리들러가, (오른쪽) <배트맨과 로빈>에는 미스터 피리즈와 포이즌 아이비가 각각 악당으로 등장한다. |
21세기의 배트맨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손에 의해 리부트 되었다. <배트맨 비긴즈>(2005)에는 스케어크로우(킬리언 머피)와 라스 알 굴(와타나베 켄, 리암 니슨), 마피아 보스인 카마인 '로마인' 팔코네(톰 윌킨슨) 등의 악당들이 등장했다. 지금은 게리 올드만이 배트맨의 가장 큰 조력자인 제임스 고든 서장 역할인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지만 <배트맨 비긴즈> 개봉 당시에는 <레옹>, <제 5원소>등을 통해 악역의 대명사였던 배우 게리 올드만이 고든 서장을 맡는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다크 나이트>(2008)에는 설명이 필요 없는, 되살아난 조커(히스 레저)와 정의감 넘치는 검사 하비 덴트에서 세상을 모 아니면 도로 판단하는 사이코 악당 투 페이스(아론 에크하트), <배트맨 비긴즈>에서 감옥에 갇힌 '로마인' 팔코네를 이은 마피아 보스 살 마로니(에릭 로버츠) 등이 눈에 띄는 악당들이었다. <배트맨 비긴즈>의 스케어크로우도 초반에 잠깐 등장한다.
▲ (상단 왼쪽) 스케어크로우, (상단 오른쪽) 라스 알 굴, (하단) 카마인 '로마인' 팔코네. |
▲ <다크 나이트 라이즈> 포스터. |
어떤 악당을 조커 다음으로 소개해야 할까 고민을 해본 결과 이번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캐릭터들을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곧 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하고 톰 하디가 연기하는 베인이라는 캐릭터가 다른 악당들에 비해 생소하기는 해도 배트맨 원작 만화에서는 조커도 이루지 못했던 엄청난 과업을 달성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원작 만화에서 드러나는 베인의 면모가 곧 개봉할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베인을 소개한다.
"박쥐를 박살낸 남자" 베인(Bane)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영화 포스터를 통해 베인이라는 캐릭터의 외모를 확인했다. <인셉션>에서는 나름 훈남인 캐릭터 이미스를 연기했던 톰 하디가 완전히 삭발을 하고 기괴한 마스크를 뒤집어 쓴 베인으로 거듭나자, <인셉션>에서 톰 하디를 좋게 본 이들은 걱정을 표하기도 했다. 배우 개인으로서도 쉽지 않은 연기 변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톰 하디로 하여금 베인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도록 만든 것일까?
베인의 겉모습은 영화에서나 만화에서나 마스크를 뒤집어 쓴 근육질의 사내로 제시된다. 베인의 탄생 과정은 조엘 슈마허 감독의 <배트맨과 로빈>에 잘 묘사되어있다. 연쇄살인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혀 있던 비쩍 마른 범죄자 안토니오 디에고는 독극물을 이용한 초인병사 개발 계획의 인간 실험쥐로 선정된다. 안토니오 디에고는 독을 주입받고 근육질의 악당 베인으로 거듭나 우마 서먼이 연기한 포이즌 아이비의 보디가드가 되어 배트맨과 로빈에 맞선 싸움을 벌인다. 당시의 베인은 말도 제대로 못하는, 힘만 센 바보 같은 캐릭터로 곧 개봉할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베인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다. 이런 베인이 어떻게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 중 마지막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주역 악당으로 선정되었을까.
▲ (왼쪽) <인셉션>의 톰 하디, (오른쪽)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베인 역을 맡은 톰 하디. |
▲<배트맨 : 베인의 복수>(Batman : Vengeance of Bane) |
1993년 1월에 출간된 <배트맨 : 베인의 복수>(Batman : Vengeance of Bane) 1호에 첫 등장한 베인은 1940년에 첫 등장한 조커를 비롯해 캣우먼(1940), 펭귄(1941), 투 페이스(1942) 등에 비해서는 한참 '젊은' 악당 축에 속한다. 하지만 베인의 모델이 되는 캐릭터의 역사는 꽤 유구하다.
베인은 1930~40년대를 풍미하던 펄프 소설의 주인공인 닥 새비지(Doc Savage)를 모델로 탄생한 악당이다. 닥 새비지는 악당 베인 이전에 슈퍼맨, 인디아나 존스 등 여러 영웅 캐릭터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 본명이 클라크 새비지 주니어인 그는 외과의와 내과의를 겸한 뛰어난 의사이자 과학자, 발명가이며 모험가이다. 한 번 본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진과도 같은 기억력으로 대표되는 비상한 두뇌 덕분이다. 여기에 태어날 때부터 초인에 가까운 신체능력을 보였으며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만능 초인인 닥 새비지를 모델로 한 악당이 그저 힘만 센 바보일 리 없다.
<배트맨 : 베인의 복수>에는 베인의 탄생 과정이 담겨있다. 카리브 해, 쿠바 근처에 위치한 가상의 나라 산타 프리스카 공화국에서 태어난 베인은 부패한 정부를 전복하려 했던 혁명가 아버지가 도망을 가자, 어린 나이에 아버지 대신 감옥 '뻬냐 두라(Pena Dura, 스페인어로 단단한 돌)'에 갇혀 옥살이를 하게 된다. 친구라고는 오직 곰 인형 오시토(Osito, 스페인어로 작은 곰) 밖에 없는 어린 베인은 성인 수감자들에게 갖은 고난을 겪다가 어느 날 수감자들의 싸움에 휘말려 높은 곳에서 떨어지게 된다.
머리에 외상을 입은 소년 베인은 환상 속에서 건장한 체구의 미래의 자신을 보게 된다. 그 속에서 '네 안에는 아버지의 피, 즉 왕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언젠가는 세상을 지배하는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그러기 위해 소년 베인이 극복해야 할 것은 바로 '박쥐'로 형상화된 공포다. 세상의 왕이 되겠다는 야심과 박쥐에 대한 증오는 후에 배트맨과의 악연으로 이어진다.
▲ 미래의 자신을 보는 소년 베인. |
뛰어난 신체 능력과 두뇌를 타고난 소년 베인은 갖은 고초 속에서도 감옥 안에 책을 몰래 들여와 열심히 읽고 운동을 하면서 자신을 단련한다. 마치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에드몽드 당테스처럼. 장성한 베인은 다른 수감자들을 제압하면서 세력을 키워간다. 그 가운데 베인은 고담시에서 온 재소자 버드로부터 고담시를 지배하는 배트맨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갖게 된다.
베인은 결국 뻬냐 두라 교도소 수감자들 사이에서 '왕'으로 군림하게 되고, 이에 교도소장은 강인한 체력을 지닌 그를 '베놈'이라는 약물의 인체 실험 대상자로 선정한다. 인체 실험에서 사망한 베인은 교도소 바깥 바다에 상어 밥으로 버려지지만, 더 강력한 신체와 함께 교도소로 돌아오게 된다. 베인은 자신의 측근을 모아 함께 탈출한다. 배트맨을 꺾고 고담시를 지배하기 위해.
고담시에서 배트맨과 격돌한 베인은, 배트맨이 죽을 위기에 처한 악당을 살려주는 것을 보고 흥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한다.
"배트맨이 고담이다. 나는 배트맨을 지켜보고 연구할 것이다. 그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사람을 죽이지 않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 도시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고담시는 내 것이 될 것이다!"
▲ 고담시를 차지하겠다는 베인의 선언. |
이후 배트맨과 수시로 격돌하고 제압되어 교도소에 갇혔다가 다시 탈출하면서, 베인은 배트맨에게 승부의식과 동질감 등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된다. 배트맨에게 집착한다는 점에서 베인은 조커와 비슷하지만, 조커의 집착이 밑도 끝도 없는 광기라면 베인의 집착은 승부욕이라는 점이 다르다. 조커는 배트맨을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기에 로빈을 살해하고 배트걸을 하반신 불수로 만들지만, 베인은 오직 배트맨과의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하기에 로빈 등 배트맨 주변인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결국 베인의 승부욕이 조커의 광기보다 더 엄청난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조커가 배트맨을 괴롭히기 위해 로빈을 살해하고 배트걸을 하반신 불수로 만들기는 했지만 배트맨을 육체적으로 굴복시키지는 못했다.
<배트맨 나이트폴>(Batman Knightfall) 시리즈의 한 편인 <배트맨> 497호(1993년 7월 출간)에서 베인은 배트맨을 글자 그대로 즉 물리적으로 '꺾는다'. 그것도 배트맨의 진짜 정체가 브루스 웨인임을 밝혀내어서 말이다. 이는 조커도 해내지 못한 일로 베인의 뛰어난 두뇌에서 비롯한 전략과 배트맨에 대한 집념으로 인해 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 배트맨의 가면을 쓰고 베인과 맞서왔던 브루스 웨인이 가면을 벗은 상태에서 그것도 자신의 은신처에서 베인과 대면한다. 브루스 웨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 찬다. 공포를 걷어낸 뒤 박쥐의 가면을 다시 쓰고 배트맨은 베인과 맞서지만, 이미 베인의 부하들 때문에 기력을 소진한 배트맨은 베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나는 베인이다. 나는 널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음은 너의 고통을 끝내고 너의 불명예를 잠재울 뿐이지. 그래서 그 대신… 널 부숴버리겠다!"
▲ 배트맨의 허리를 꺾는 베인. |
배트맨의 허리를 꺾어버린 베인은, 자신이 배트맨을 부숴버렸기에 배트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고담시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베인 앞에서 허리가 파손된 브루스 웨인은 이제 더 이상 배트맨 역할을 맡을 수 없게 된다. 이후 회복한 브루스 웨인이 1994년 8월경에 복귀할 때까지, '아즈라엘'이라는 히어로 캐릭터가 <배트맨> 498호(1993년 8월)부터 잠시 '대신' 배트맨을 맡기도 한다.
▲ 박살난 배트맨 가면이 등장하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 포스터. |
베인을 연기하는 배우 톰 하디는 인터뷰에서 '<배트맨과 로빈>의 베인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베인이 훨씬 더 위협적'이라고 자신의 배역을 소개한 바 있다.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올해 초 잡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베인은 매우 복잡하고 흥미로운 인물이어서 영화를 다 본 관객들은 특히 베인 때문에 즐거울 것"이라고 베인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이 만화 <배트맨 나이트폴>과 동일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만화에서는 어린 시절에 박쥐로 형상화된 공포에 대한 증오심과 동료 수감자로부터 들은 고담시에 대한 동경, 그리고 고담시를 지키는 배트맨에 대한 호승심으로 배트맨을 공격하지만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베인이 배트맨을 증오하고 공격하는 이유는 예고편만으로는 쉽게 짐작하기 힘들다. 결국 이 부분은 영화를 직접 봐야 확인이 가능할 것 같다. 덧붙여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는 베인 뿐 아니라 다른 악당 캐릭터들도 등장하기에 이들은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캣우먼이다.
"악당과 연인 사이" 캣우먼
1940년 봄 <배트맨> 1호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캣우먼은 배트맨과 조커가 1920~30년대 무성영화의 캐릭터나 배우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조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1930년대의 미녀 영화배우 헤디 라머, 진 할로우 등을 모델로 삼아 창조됐다. 배트맨의 파트너 겸 여성 독자들이 감정이입 할 수 있는 캐릭터로 마련된 캣우먼은, 근본적으로는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이다. 그러나 어둡고 고독한 삶을 이어가는 배트맨에게 종종 친근하게 굴면서 로맨틱한 관계도 이어간다.
▲ 캣우먼의 첫 등장. |
악당이라고는 해도 캣우먼은 다른 악당들처럼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고, 대신 고가의 물건을 훔치는 '괴도'다. <배트맨> 1호에서는 '캣우먼'이 아니라 '캣(Cat)'이라는 별명을 지닌 보석 도둑 셀리나 카일로 첫 등장한다. 이 당시엔 고양이 복장을 하지 않았다. 옷은 3호부터 입게 된다.
캣우먼의 정확한 탄생 배경은 1950년에 출간된 <배트맨> 62호에서 드러난다. 원래 비행기 승무원이었던 여성이 비행기 추락 사고를 겪고 생존은 했지만 머리에 큰 상처를 입어 기억상실증에 걸린 뒤 범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이 사연은 곧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로 밝혀진다. 또 다른 사연은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으로부터 도망칠 때 남편이 개인금고에 숨긴 보석을 훔쳐내었는데 그 때의 경험이 너무 즐거워 괴도가 되었다는 것. 이렇게 탄생한 캣우먼은 1950~60년대 내내, 배트맨을 돕는 동료이자 애인이면서도 이내 다시 범죄자로 돌아가는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 다양한 캣우먼들. |
▲ <배트맨 : 이어 원>(프랭크 밀러·데이비드 마추켈리 지음, 리치먼드 루이스 그림, 곽경신 옮김, 세미콜론 펴냄). ⓒ세미콜론 |
캣우먼의 탄생 기원은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배트맨 리턴즈>(1992)에서 또 달라진다. 미셸 파이퍼가 연기한 캣우먼, 셀리나 카일은 부패한 재벌 맥스 슈렉(크리스토퍼 월켄 분)의 소심한 비서로, 맥스의 범죄 계획을 우연히 알게 된 탓에 그의 손에 의해 고층 건물에서 떠밀려 추락하게 된다. 하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되고, 고양이들의 신비스러운 힘을 통해 캣우먼으로 거듭난다.
이처럼 <배트맨 리턴즈>의 캣우먼은 기존 만화 속 캣우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고양이의 목숨은 아홉 개'라는 서양 속담처럼 보통 사람이라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살아나는 능력은 만화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새로운 능력이었다. 셀리나가 브루스 웨인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만화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캣우먼이 배트맨을 죽이려고 펭귄의 계획에 가담한다는 설정은 만화와 다르다. 물론 최후에 가서는 배트맨을 죽이려는 마음을 바꾸어 고양이다운 변덕스러움을 보여주지만, 만화 속 캣우먼에 비해 훨씬 잔인하고 냉혹하다.
▲ 만화 속 캣우먼보다 잔인하고 냉혹한 미셸 파이퍼의 캣우먼. |
팀 버튼이 창조한 캣우먼을 먼저 접하고 나서 배트맨 그래픽노블 작품 속의 캣우먼들을 보면 이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배트맨에게 캣우먼은 잡아야 할 범죄자이지만, 가면을 쓴 두 사람의 관계는 미묘한 '밀당(밀고 당기기)'으로 가득하다. <배트맨 : 이어 원>에서는 마피아들에게 둘러싸여 위기에 처한 캣우먼을 귀찮다는 듯 도와주고 사라지는 배트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배트맨 : 이어 원>과 연속되는 이야기를 갖고 있는 <배트맨 롱 할로윈>(제프 로브 지음, 팀 세일 그림, 박중서 옮김, 세미콜론 펴냄)에서는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셀리나 카일과 브루스 웨인이 연인으로 등장한다. 서로가 브루스 웨인인지 셀리나 카일인지 모르는 배트맨과 캣우먼은 공통의 적을 두고 서로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동료에 가까운 관계다.
▲ <배트맨 : 허쉬>(밥 케인 지음, 제프 로브 글, 스콧 윌리암스&짐 리 그림, 박중서 옮김, 세미콜론 펴냄). ⓒ세미콜론 |
"난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소. 셀리나. 당신이 어디 사는지 낮에는 뭘 하는지. 나 역시 이중적 삶을 산다오. 이제 당신이 그 양쪽의 일부가 되었으면 하오."
이렇게 원작 만화에서는 아예 연인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된 배트맨과 캣우먼의 관계. 그런데 곧 개봉을 앞둔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어떻게 그려질까? 일단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앤 해서웨이가 연기하는 셀리나 카일은 상류층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사기꾼으로, 베인과 협력한다는 것 외에는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있다. 하지만 베인과 협력한다 해서 배트맨의 적대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베인이 획책하는 다른 범죄에 협력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배트맨을 부숴버린다는 베인의 목적까지 공유하는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트레일러를 통해서는, 배트맨과 셀리나 카일이 협력하는 듯한 장면도 볼 수 있기에 결국 만화의 캣우먼과 비슷한 행적을 보이리라 추측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앤 해서웨이는
▲ 앤 해서웨이의 캣우먼.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스크린에 나타날까. |
"배트맨의 스승? 불사의 악당" 라스 알 굴
▲ 라스 알 굴. |
타락한 도시인 고담시를 완전히 파괴하려는 라스 알 굴의 계획을 간신히 저지한 배트맨은, 아무리 악당이어도 죽이지 않는다는 철칙을 살짝 어기고 라스 알 굴을 죽도록 방치한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라스 알 굴은 확실히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라스 알 굴은 다시 등장한다. 이번에는 리암 니슨뿐 아니라 조시 펜스라는 배우가 젊은 시절의 라스 알 굴을 연기한다고 알려졌다. 소문에는 카메오 출연 정도의 비중으로 이야기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두고 볼 일이다. 브루스 웨인의 회상 장면에만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렇다면 젊은 시절의 라스 알 굴을 연기할 배우가 왜 필요한지 설명이 어렵다. <배트맨 비긴즈>의 죽음으로부터 살아왔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원작 만화에서 라스 알 굴은 불사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 <배트맨> 232호의 라스 알 굴. |
아랍어로 '악마의 머리'라는 의미를 가진 라스 알 굴은 캣우먼처럼 여러 스토리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다양한 탄생 배경을 갖고 있다. 그 중 공통적인 것만을 추려보면, 대략 600여 년 전 아라비아 사막의 유목민으로 태어나 세계를 여행하면서 의술을 비롯한 여러 지식을 쌓았다는 것. 그 지식을 바탕으로 술탄의 주치의가 된 라스 알 굴은 우연히 '라자러스의 구덩이(Lazarus Pit)'라는 것을 발견하여 죽어가는 술탄의 아들을 되살린다.
이 라자러스의 구덩이는 특정한 지역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여러 화학약품을 채워 만드는 인공적인 것으로, 그 이름은 예수가 죽음에서 되살린 나사로(Lazarus)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라자러스의 구덩이는 600여 년 전에 탄생한 라스 알 굴이 현대에도 활동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장치이자 이미 죽었다고 생각되었던 많은 인물들의 부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확실히 죽었다고 생각되었던 라스 알 굴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면, 역시 라자러스의 구덩이 덕분일 것이다. <배트맨 : 패밀리의 죽음>(1988)에서 조커에게 살해되었던 제이슨 토드가 <배트맨 : 허쉬>(2003)에서 부활이 암시된 것도 라스 알 굴의 라자러스의 구덩이 덕분이다. 하지만 라자러스의 구덩이를 통해 부활한 인물들은 잠시 동안 광기에 휩싸이는 부작용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라자러스의 구덩이에서 부활했던 조커가 한동안 '제정신'이었던 적도 있었다!
▲ 라자러스 구덩이에서 되살아나는 라스 알 굴. |
<배트맨 비긴즈>에는 라스 알 굴이 자신이 가르친 브루스 웨인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기 위해 회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인류를 모두 없애서 지구를 정화하겠다며 고담시를 파괴하려는 라스 알 굴의 제안을, 배트맨이 된 브루스 웨인은 단호히 거부한다. 이 내용은 라스 알 굴이 원작 만화에 등장했을 때부터 마련된 내용이지만, <배트맨 비긴즈>에서는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인물이 한 명 빠져있다. 바로 라스 알 굴의 딸 탈리아 알 굴이다.
▲ 탈리아 알 굴과 배트맨의 만남. |
1971년 출간된 <디텍티브 코믹스> 411호에서 배트맨은 탈리아 알 굴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라스 알 굴은 자신의 딸과 배트맨을 결혼시켜 영화 <배트맨 비긴즈>에서처럼 배트맨을 자신이 이끄는 암살단 그림자 연맹의 차기 지도자로 삼으려 한다. 배트맨은 자신을 사위로 삼기 위한 라스 알 굴의 테스트를 통과하지만, 그가 진짜 목적하는 바를 듣고는 후계자 되기를 거부한다. 동시에 탈리아 알 굴과의 관계도 끝을 맺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도 탈리아 알 굴과 배트맨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이 계속 남게 된다. 배트맨 그래픽노블 작품 <배트맨 : 선 오브 디먼>(Batman: Son of the Demon, 1987)에서는 탈리아 알 굴이 배트맨의 아들을 낳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아들이 다섯 번째 로빈이 되는 데미언 웨인이다.
하지만 탈리아 알 굴이 배트맨의 아들을 직접 낳았다는 이 내용은 다른 스토리 작가들에게 뒤집히게 되고, 결국 데미언은 배트맨과 탈리아 알 굴의 유전자를 바탕으로 인공자궁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된다. <배트맨 : 허쉬>에서 캣우먼과의 연인관계를 공개한 배트맨에게 씁쓸한 반응을 보이는 탈리아 알 굴을 볼 수 있다.
▲ 배트맨과 캣우먼을 바라보는 탈리아 알 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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