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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서울대 출신 남성'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서리풀 논평] 사법부가 시민 건강에 기여하려면

사법부가 시민 건강에 기여하려면

지난 6월 18일에 대법원은 '임의 비급여' 관행을 일부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관련 기사). 일정한 조건을 갖추고 병원 쪽이 이를 증명하면 임의 비급여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이 판결로 정부의 정책, 병원, 환자가 모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환자의 비용 부담이 늘어나지 않을지,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진료가 임의 비급여라는 좋은 피난처를 만든 것은 아닌지, 다들 걱정이 많다.

사법적 판단이 보건의료 정책과 시민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헌법 재판까지 포함하면 굵직굵직한 것만 하더라도 여럿이다. 건강 보험 통합, 당연 지정제, 의약품 가격 인하 등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금방 찾을 수 있다.

게다가 점점 더 많은 정책들이 재판으로 갈 조짐을 보인다. 이해관계가 얽히고 갈등이 커질수록 사법부에 의존하는 경향은 강해질 것이다.

보건의료 정책의 사법적 판단은 개인 간의 분쟁이나 과정의 잘잘못을 따지는 데에 머무르지 않는다. 영리법인 병원이나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범위와 같이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인 가치와 이념까지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언뜻 실무적으로 보이는 것도 가치 판단을 숨길 수 있다.

정치의 사법화라는 최근의 흐름은 이런 조짐의 전주곡이리라. 쉽게 기억할 수 있는 것만 하더라도, 5·18 과거 청산, 대통령 탄핵, 행정수도 건설, 이라크 파병, 존엄사 허용, 양심적 병역 거부 등의 '논쟁적' 사안이 재판을 통해 결정되었다.

정치와 정책의 사법화는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사법적 판단이 시민의 일상을 결정하고 때로 통제한다면, 정당성의 근거와 조건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사법 심사의 정당성을 말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법치'이다. 법치란 사람의 지배, 곧 인치에 대립하는 말로, 몇 사람이 제 멋대로 결정하고 통치하는 인치를 대신한다. 민주적 의사결정의 중요한 요소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법치가 항상 민주주의와 조화로운 것은 아니다. 아담 쉐보르스키와 호세 마리아 마라발 등이 쓴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안규남·송호창·강중기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에 소개된 독일 사례를 보자.

1930년대 독일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법부였다. 바이마르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사법부는 법률적,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중립적이지 않았다.

사법부는 좌파는 억압했고 극우에는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1918~1922년 사이 우익 행동대는 308건의 살인을 저지르고도 11명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비해 좌파 행동대는 21건의 살인 사건으로 37명이 유죄 판결을 받아, 47배나 더 많이 처벌되었다.

이 책에 적힌 대로, 바아마르 공화국의 사법부는 판결을 통해 극우 세력을 격려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배신했다. 반민주주의적 정치인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활용해 민주주의를 파괴할 때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 바로 법원이었던 것이다.

바이마르 사례가 극단적인 예외라고 할 수만은 없다. 어떤 의미에서든 사법적 판단이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은 적지 않다. 힘 있는 자들의 이해와 주류 이데올로기를 충실하게 옹호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렇다고 사법부의 기능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 하기는 이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인권법 학자인 샌드라 프레드먼은 법원이 특히 인권의 보호와 증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법원은 민주적 압력을 위한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반민주적이거나 무능한 정부를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역할을 뜻한다.

법원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정치적 책무성의 강화, 심의 민주주의의 촉진, 평등의 장려 등이 포함된다. 이를 통해 사법부는 평등한 시민들 간의 사회적 대화를 촉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프레드먼(<인권의 대전환>(조효제 옮김, 교양인 펴냄)의 주장이다.

두 주장에서 보듯이, 사법부는 민주주의 파괴에 기여하기도, 반대로 인권을 옹호하고 확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 상황이라면, 대법원이 영업의 자유보다 가난한 사람의 건강권이 더 중요하다고 판결할 수 있다. 반대로, 건강 보험 운영에서 사회적 연대의 원리보다 봉급 생활자의 재산권 보호가 더 우선이라고 판단할지도 모른다.

다시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의 주장을 보자. 사법적 판단의 민주적 정당성을 가르는 기준은 '사회적 통제(societal accountability)'이다. 여기서 사회적 통제란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시민 사회가 일상적으로 벌이는 감시와 요구 활동을 말한다.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가 만나기 위해서는 선거와 제도, 삼권 분립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적 통제가 뒷받침되어야 사법적 판단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사법부가 시민 사회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한 걸음 더. 사회적 통제는 사법적 판단의 주체와 상호작용을 통해 작동한다. 이 때 법관의 법률 해석과 판단에 개입하는 선(先)이해가 중요한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이는 전적으로 어떤 법관이 법원을 구성하는가의 문제이다. 인권의 확장과 민주주의의 발전 측면에서 현재 한국의 법원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는 새삼 따져 묻지 않는다.

7월 10일 퇴임하는 대법관 4인의 후임자가 곧 결정될 모양이다. 6월 5일 후보자가 발표되었고 임명동의안이 국회에 가 있다.

개원이 늦어지면서 표적이 국회로 향했지만, 당초 관심사는 후임 대법관 후보들의 구성이었다. 주류 언론은 "대법원이 변화보다 안정을 택했다"는 밋밋하고 무책임한, 그리고 안심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총평을 내놓았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대로, 이들 후보는 50대 중후반, 서울대 출신, 남성, '정통' 법관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대로 임명된다면, 기존 대법관의 특성을 극단적으로 강화할 뿐이다.

이런 구성으로는 사법적 판단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촉진하는 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대법관의 구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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