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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자본주의', 그 역습이 시작됐다!

[프레시안 books] 크리스 하먼의 <좀비 자본주의>

마르크스의 현대성과 <좀비 자본주의>

2008년 세계 자본주의가 심각한 체제 붕괴의 위기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그동안 들어왔던 말들이 모두 허구임을 깨달았다.

"시장에 맡기면 자원은 효율적으로 분배되며 경제는 잘 굴러갈 것이다." "정부가 개입하면 경제 질서는 왜곡된다." "세계화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며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보장할 것이다."

이 미사여구에 현혹되었던 사람들은 엄청난 세계 공황을 겪으면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자각한 것이다.

자연스럽게도 사람들은 이제는 영향력이 다했다고 여겼던 이론에 시선을 보냈다. 신자유주의 이전 시대를 풍미했던 케인스주의가 다시 되살아나고, 심지어 케인스주의 이단이라 여겼던 하이먼 민스키의 이론이 각광을 받았다. 공황의 시대에는 큰 정부가 필요하고 정부가 제 구실을 해야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시장이 사라진 자리에 국가가 들어와 다시 세상은 평온해진 듯했다.

그러나 그리스에서 시작된 국가 부채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사람들은 세상이 또 잘못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국가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어디서 해답을 찾아야만 하나? 출구도 없이 세상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사람들은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게 된 것이다.

사실 이 근본 물음은 시장과 국가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본주의가 가진 고유한 특징을 사고하지 않는 한 풀릴 수 없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작동 원리에 대한 냉철한 이해 없이 오늘날 세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크리스 하먼이 쓴 <좀비 자본주의>(이정구·최용찬 옮김, 책갈피 펴냄)는 사람들이 귀에 따갑게 들었던 주류 경제학의 주장에 일침을 가하며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 <좀비 자본주의>(크리스 하먼 지음, 이정구·최용찬 옮김, 책갈피 펴냄). ⓒ책갈피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파산한 주류 경제학 이론과는 달리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기본 관점은 마르크스의 현대성, 다시 말해 마르크스의 이론은 여전히 현대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공황 이론에 바탕을 두고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 장기 호황과 호황의 종말 이후 자본주의의 불안정을 분석하며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기원과 모순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설명에서 핵심은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파괴성의 변증법이다. 이 책에서 하먼은 자본주의에서는 "더 많은 잉여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잉여 가치를 창출하는 끝없는 충동, 즉 축적을 위한 드라이브에는 한계가 없다"(112쪽)고 본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이전 사회들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던 성장 동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눈부신 확장력에도 자본주의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다. 하먼은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마르크스의 모델이 보여주는 체제는 스스로 팽창하는 체제일 뿐 아니라 경제 위기와 이윤율 저하 압력에서 드러나는 모순된 힘의 상호 작용을 바탕으로 팽창하는 체제다. 체제의 팽창과 동시에 생산력(생계 수단을 생산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크게 성장할 뿐 아니라 이런 생산력은 파괴력으로 변모해 사람들의 삶을 파탄내기도 한다." (113쪽)

하먼에 따르면 역동성과 파괴성의 변증법이 자본주의 발전의 핵심이며, 이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본질을 동역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결정적 요인이다. 특히 총 투하 자본(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 대비 잉여 가치의 비율인 이윤율이 저하해 발발하는 경제 공황은 자본주의의 동역학을 이해하는데 가장 핵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먼은 이윤율 이론에 근거를 두고 경제 공황을 강조하며 1929년 대공황과 1950년대 이후 자본주의 장기 호황, 1970년대 초반 장기 호황의 종말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모순과 2008년 세계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을 광범위하게 분석한다.

군비 지출, 전쟁과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하먼이 제시한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역사적 분석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을 전면에 내서우면서도 이를 군비 지출, 전쟁과 연결 짓는다는 점이다.

하먼에 따르면 군비 지출은 비생산적 지출로 낭비다. 따라서 "투자 가능한 잉여 가치의 일부가 군비 지출로 사용된다면, 비용 절감형 기술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신규 자본이 줄어들 것이고 자본 집약적 투자 경향도 완화될 것이다."(172쪽) 이 경우 군비 지출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게다가 전쟁으로 엄청난 사용 가치가 파괴되면, 축적을 늦출 수 있으므로 이윤율 저하를 막을 수 있다.

이 논리에 따라 하먼은 1929년 대공황은 '군사적 국가 자본주의'라는 불황 극복 노선으로 극복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는 1950년대 이후 장기 호황도 막대한 규모의 군비 지출이 추가 축적에 이용할 수 있는 자금을 줄이는 효과를 내서 고용된 노동력 대 투자의 비율(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지는 것을 늦춰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장기 호황과 '황금기'는 모두 군사적 국가 자본주의의 산물"인 것이다(225쪽).

나아가 하먼은 황금기의 종말도 군비 지출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하먼에 따르면 군비 지출이 많았던 미국에 비해 서독과 일본은 군비 지출에 쓰일 잉여 가치를 낭비하지 않고 생산적 투자로 돌렸고, 이에 따라 경쟁력을 확보해 높은 수준의 경제 성장을 달성했다. 그리고 이 성공이 군비 지출 수준이 낮은 경제의 성장 자체가 군비 지출 수준이 높은 경제에 압력을 가해 자원을 군비에서 생산적 투자로 돌리면서 이윤율이 떨어져 황금기 호황이 종말을 고했다. 한마디로 말해, 1970년대 초반에는 시장 경쟁의 동역학이 군사적 경쟁의 동역학을 줄기차게 약화시켜 장기 호황이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러한 하먼의 분석은 기존 현대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이론과는 큰 차이가 난다. 다시 말해 자본과 노동의 타협에 주목한 포드주의를 강조한 '조절 이론', 국제적 노동자 투쟁을 중심으로 한 '이윤 압박설', 자본 간 경쟁을 통해 장기 호황과 장기 불황을 설명한 로버트 브레너의 이론 등 기존의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설명과는 달리, 하먼은 비경제적 요소로만 여겨졌던 군비 지출을 이윤율과 접목해 독특한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을 해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하먼의 설명은 독자들에게 자본주의의 발전이 군사 부문과 밀접한 연관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발전이 군사적 팽창과 뗄 수 없다는 관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윤율의 장기적인 상승과 저하를 군비 지출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하먼이 노동 계급과 관련한 잉여 가치의 착취(착취율)와 자본 간 경쟁의 동학에 따른 변화(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상승)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했다는 약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세계 체제의 관점에서 본 역사적 발전

다른 한편 이러한 군비 지출에 따른 자본주의의 발전은 현실 사회주의 나라들의 역사적 발전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좀비 자본주의>는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과정만을 포착하는 기존의 이론과 달리, 현실의 사회주의 나라들을 포괄하는 세계 체제라는 종합적 시각을 독자들에게 제공해 준다.

하먼의 주장에서 현실 사회주의 나라들은 세계 자본주의와 밀접한 연관 속에서 작동한다. 한편으로 군비 지출이라는 측면에서 현실 사회주의 나라들은 세력권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나라들과의 군비 경쟁을 통해 자본주의 나라들의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점에서 현실 사회주의 나라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에서 뗄 수 없는 관계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현실 사회주의 나라들은 자본주의 나라들의 동역학과 동일한 원리에 따라 발전했다. 하먼은 서방과의 군사적 경쟁이 심화하면서 현실 사회주의 발전의 동역학은 축적을 위한 축적의 논리에 사로잡혔고, 존재하지 않는 자본가들을 대신해 관료들이 스스로 축적의 과제를 떠맡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현실 사회주의 경제는 세계 체제와 완전히 단절되지 않고 "소련 내에서 생산은 세계 수준에서 작용하는 가치법칙에 종속되어 있었다"고 본다(232쪽). 따라서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은 현실 사회주의의 발전을 규정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하먼의 주장은 자본주의와 현실 사회주의가 서로 밀접한 연관 속에서 발전해 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세계 경제의 발전을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세계 자본주의 분석에서 현실 사회주의가 어떤 기능을 수행했고, 세계 자본주의가 현실 사회주의에 어떤 규정력을 행사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 나라들을 자본주의와 같은 원리로 작동했다고 보는 견해는 논쟁을 불러 올 수 있다. 이론적으로 자본주의는 자본-임노동 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체제이며, 자본은 노동이 생산한 잉여 가치를 착취해 축적을 지속한다. 따라서 계획을 통한 사회주의의 발전이 자본가가 없이 관료의 축적의 논리를 따랐다는 것과 자본주의적 착취 관계 속에서 사회주의가 발전했다는 것은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모순된 체제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하먼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세계자본주의의 발전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해 분석한다. 하먼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를 '착각의 시대'로 규정한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주장한 것과는 달리, 이 시기는 이윤율이 장기 저하하면서 세계 자본주의가 저성장을 한 시기이며, 자본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공세로 실질 임금이 줄고 노동 시간이 늘어났고, 사회적 임금마저 공격받았다. 또한 자본의 초국적화로 국경이 무너져 국가 없는 기업이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신화에 지나지 않으며, 금융의 성장은 부채와 거품을 양산했다.

이 시기가 착각의 시대라는 점은 무엇보다도 2008년 세계 대공황이 발발하면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2008년 세계 대공황은 금융의 문제로 발발한 것이 아니라 지난 100년 동안 관철되었던 자본주의 동역학의 모순이 다시 폭발한 것이다. 하먼은 이와 관련해 이렇게 주장한다.

"오늘날의 위기가 과거의 위기와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거의 없는 듯하다. 위기의 형태는 매번 달라질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처럼 파괴적일 것이다. 금융 규제만으로 위기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막을 수 없을 것이고, 자본주의 국가가 위기를 막기 위해 쏟아 붓는 비용은 거의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392쪽)

한마디로 21세기 자본주의 체제는 '좀비 체제'가 되어 버렸다. 나아가 세계 자본주의는 새로운 한계, 자본의 축적이 만들어낸 기후 변화와 석유 생산 정점(Peak Oil) 문제, 식량 위기를 겪고 있다. 하먼은 세계 대공황으로 드러난 경제적 문제와 함께 이러한 새로운 한계가 상승 작용하면서, "세계는 점점 더 무질서하고 잠재적으로 폭력적인 세계가 될 것이며"(430쪽), "매우 심각한 사회적, 정치적 위기를 거듭거듭 만들어 낼 것이고 그런 위기는 세계적 재앙이냐 혁명적 변화냐 하는 선택을 앞당길 것"(424쪽)이라 주장한다.

하먼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대중이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받아야 하고, 은행가들의 모가지가 날아갔으므로 평범한 사람도 일자리를 잃어야 하고, 늙어서도 고단한 일을 하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채권 추심업자들에게 집을 넘겨주고, 농민은 금융 업자나 비료 업체에 돈을 내기 위해 자기 땅에서 굶주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좀비 자본주의>에서 하먼은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출발해 주류 경제학의 이론이 가진 허점을 폭로하고 마르크스의 이론을 현대화해 대공황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에 분석한다. 그리고 이 광범위한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가 가진 모순과 한계를 명쾌하게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자본주의를 탐구하고 그 모순과 한계를 이해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먼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자본주의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벌이는 운동의 필수적 일부가 돼야 한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운동이 없다면 이번 세기가 끝날 때가지도 다수의 사람들은 이 참을 수 없는 세계에서 계속 살아가야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자본주의를 탐구했다면 현실을 바꾸는데 나서라고 하먼은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참을 수 없는 세계에서 계속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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